한국 최초의 우주인 탄생, 천리안 발사 등으로 항공우주과학이 전국의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항공우주과학에 대한 이해를 돕고, 관심을 고취시키고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발행중인 웹진 카리스쿨의 콘텐츠를 주 1회 제공한다.
“사람이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세상 끝까지 가고 싶다” 영국의 탐험가 제임스 쿡의 말이다. 이 말처럼 그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지구의 곳곳을 탐험해 새로운 지도를 그렸다. 1777년 1월 북미 서부해안에서 발견했던 하와이도 이중 하나다. 당시 쿡이 타고 있던 배의 이름은 ‘디스커버리(Discovery)’였다.
제임스 쿡의 정신을 이어받은 이름, ‘디스커버리’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우주왕복선에게도 붙여졌다. ‘발견하다’, ‘밝혀내다’라는 의미와 제임스 쿡이 탔던 배의 이름이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합쳐져서인지는 몰라도 ‘디스커버리호’에 얽힌 중요한 사건이 유독 많다. 39번째 우주비행을 앞두고 있는 ‘디스커버리호’를 기념하며, 이 우주왕복선이 우주개발역사에서 가지는 의미를 살펴보자.
안전이 최우선이었던 ‘디스커버리호’
우주왕복선은 한 번 발사되면 없어져 버리고 마는 로켓 대신 몇 번이고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는 우주발사체를 만들자는 아이디어에서 탄생했다.
1970년대부터 개발을 시작해 1981년 첫 우주왕복선이 성공했고, 이후 ‘챌린저호’와 ‘컬럼비아호’, ‘디스커버리호’, ‘엔데버호’, ‘애틀란티스호’까지 총 5대의 우주왕복선이 개발됐다. 이들은 돌아가며 우주 비행을 했는데 이중에서 2대가 폭발사고로 사라져 현재는 ‘디스커버리호’가 가장 오래된 우주왕복선이다.
‘디스커버리호’의 첫 비행은 1984년 8월 30일이었다. 당시 ‘디스커버리호’는 국제우주정거장과 도킹해 물자를 보급하고 우주유영으로 국제우주정거장을 보수하기도 했다. 이후에 주로 통신위성이나 군사위성의 발사를 맡았고, 외국 우주비행사를 우주로 태워보내는 일을 했다.
1990년 4월 24일, 드디어 ‘디스커버리호’는 우주개발 역사에 남을 중대한 임무를 수행하게 됐다. 허블우주망원경을 지구 상공 610km 궤도에 올린 것이다. 당시 발사장 주변에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우주망원경의 탄생을 기뻐했다. 발사는 성공적으로 진행됐고, 몇 달 후, 허블우주망원경은 첫 번째 관측 사진을 지구로 보내왔다.
이 사진을 본 과학자들은 허블우주망원경의 부품인 지름 2.4m짜리 반사경에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이후 3년간 NASA는 반사경 보정장치를 만들어 우주왕복선 ‘인데버호’를 발사했고, 허블우주망원경 수리를 성공적으로 끝냈다. 이후 허블우주망원경은 이전까지 지상 망원경으로는 얻을 수 없었던 관측 자료를 생산하고 있다.
‘디스커버리호’는 2003년 있었던 ‘컬럼비아호 폭발사고’ 후 처음으로 발사된 우주왕복선으로도 유명하다. ‘컬럼비아호’는 2003년 1월 16일, 7명의 우주비행사를 태워 임무를 마치고 지구로 돌아오던 중 폭발사고를 당했다. 우주선 연료 탱크 상층부에서 떨어져 나온 얼음덩어리가 우주선 왼쪽 날개를 쳐서 외벽에 구멍을 냈고, 지구로 돌아올 때 이 부분에서 폭발이 일어난 것이다.
이 사건이 일어나자 우주왕복선의 안전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됐고, NASA는 한동안 우주왕복선 발사를 중단했다. 이후 2년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우주왕복선 발사가 진행됐는데, 이때 발사된 우주왕복선이 바로 ‘디스커버리호’다. 그 때 당시, 발사 예정일은 2005년 7월 13일이었다.
그런데 NASA는 ‘디스커버리호’의 발사를 2시간 30분도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발사 취소’ 결정을 내리게 됐다. 최종 점검 과정에서 발사를 앞둔 ‘디스커버리호’의 연료탱크에 분명 연료가 가득한데, 4개의 연료 센서중 하나가 ‘연료 없음’을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컬럼비아호’ 폭발 이후 처음 진행되는 우주왕복선 발사인 만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발사는 중단됐다.
39번 임무 수행 후 어느덧 마지막 여행
약 2주일 정도 걸려 문제를 해결한 ‘디스커버리호’는 2005년 7월 26일 발사에 들어갔다. 연료탱크가 차례로 분리됐고, 목표한 우주궤도에 올라가는 순간 NASA 본부에서 환호했다. 30개월간 중단됐던 우주왕복선 계획이 다시 시작되는 순간이었기에 기쁨은 더 클 수밖에 없었다.
당시 ‘디스커버리호’의 선장이었던 아일린 콜린스를 비롯한 우주비행사 7명은 국제우주정거장(ISS)과 도킹해 물자를 전달하고, 우주유영을 통해 ‘디스커버리호’의 개선된 안전장치들을 점검했다. 또 인간의 우주탐사 역사상 처음으로 시도한 우주에서의 선체 수리에 성공했다. 이렇게 디스커버리호의 31번째 우주 비행은 유인 우주왕복선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2009년 3월 15일 ‘디스커버리호’의 발사도 큰 의미를 갖는다. 이 비행에서 ‘디스커버리호’의 가장 큰 임무는 우주정거장에 전력의 공급을 늘리기 위한 태양전지판 설치였다. 여기서 만들어내는 전기는 지구에서 40가구가 사용할 수 있는 양에 버금간다. 2009년부터 ISS 탑승 우주인이 3명에서 6명으로 늘었기 때문에 태양전지판을 추가로 설치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사람이 많아지는 만큼 ISS에서 필요한 전기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러차례에 걸쳐 주요한 임무를 완수한 ‘디스커버리호’는 이제 마지막 비행을 앞두고 있다. 이번 임무에서 수행할 역할도 그 동안의 임무 만큼이나 중요한데, 바로 최초의 로봇우주인 ‘로보노트2’와 ISS에 설치할 마지막 모듈, ‘레오나르도(Leonardo)’를 실어 나르는 것이다. 특히 ‘로보노트2’는 미래에 사람을 대신해 위험한 우주 임무를 맡을 예정인데, 이번 비행을 통해 첫 시험 작동하게 될 예정이다.
39번이나 우주와 지구를 넘나들며 우주개척의 공을 세운 ‘디스커버리호’. 첫 비행 이후 27년간 부지런히 일한 우주왕복선은 마지막 비행에서 돌아오면 박물관으로 옮겨질 예정이다. 비록 ‘디스커버리호’의 활동은 끝나더라도 이 우주왕복선이 했던 일과 함께 했던 사람들, 그리고 우주를 향한 꿈은 계속되지 않을까?
- 글: 박태진 과학칼럼니스트
- 저작권자 2010-11-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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