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4월 1일 우리나라는 역사적인 고속열차의 시대를 열었다. 고속열차 KTX는 서울-부산 간을 2시간40분에 주파할 수 있는 속도로 전국을 일일생활권에서 반나절 생활권으로 변모시켰다. KTX는 최고 속도 350km을 자랑하며 빠른 열차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400km속도를 내는 자기부상열차의 도입 전까지는 KTX의 속도 아성은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모든 선로구간에서도 KTX가 왕좌를 유지할 수 있을까? 실제로, KTX는 빠른 속력 때문에 곡선구간이나 험난한 지형에서 자신의 최고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차량최고속도, 선로최고속도, 곡선(커브)속도, 선로전환기 통과속도 등에 의해 결정되는 열차운행속도는 험준한 지형에서 달라진다.
따라서 곡선이 많고 험준한 구간에서는 KTX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내 선로의 경우, 서울 청량리역에서 경주역까지를 잇는 중앙선과 충북 제천과 강원도 태백시를 연결하는 태백선 등은 험준한 지형이라서 곡선구간이 많아 KTX에 불리한 구간으로 알려져 있다.
최고 속력 300km이상의 속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달리려면 곡선구간의 선로를 직선에 가깝게 길게 늘이면 된다. 그러나 선로가 대폭적으로 늘어나야 하므로 여기에는 엄청난 공사비용이 따르는 단점이 있다.
그렇다면 곡선구간에서도 그대로 KTX의 속력을 유지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러한 문제점의 대안이 바로 틸팅열차(TTX)다. 틸팅열차는 곡선구간에서도 차체를 내부로 기울여 원심력을 흡수하는 기능을 갖추어 곡선통과 속도를 20~30% 높일 수 있다.
커브길 원심 가속도를 잡아라
양궁과 더불어 쇼트트랙은 한국이 세계에 자랑하는 스포츠다. 지난해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한국 여자팀은 쇼트트랙에서 동계올림픽 4연패를 이끌어내면서 다시 한 번 영광을 재현했다.
한국 팀이 쇼트트랙에 강한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코너링 기술이다. 단거리 스케이트 경기인 쇼트트랙은 무엇보다도 커브에 그 묘미가 있으며 코너링에서 승부가 결정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동성, 안현수 등 우리나라 금메달 선수들의 코너링 모습은 거의 서커스에 가까운 묘기로 보일 정도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묘기가 아니다. 쇼트트랙 선수들의 코너링에는 과학의 원리가 숨어있는 것이다. 묘기처럼 몸을 안쪽으로 기울이는 쇼트트랙 선수들의 코너링 묘기는 사실, 최대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커브를 돌기 위해서다. 이러한 기울임의 원리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마법을 갖고 있다.
오토바이 경주대회에서 선수들은 거의 바닥에 닿을 정도로 오토바이를 눕혀서 돌지만 절대로 넘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바로 중력가속도에 의한 원심가속도의 상쇄 때문이다.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도 마찬가지다. 곡선구간에서 트랙 바깥으로 튀어나올 것같이 아슬아슬하지만 절대로 튀어나오지 않는다.
롤러코스터와 같이 열차에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되면 어떨까? 원심력은 궁극적으로 도는 방향 바깥으로 튀어나가려는 힘을 갖는다. 또 원심력은 속도의 제곱에 비례해 커지고 커브의 반경이 작으면 작을수록, 또 중량에 비례해서 커진다. 반면에 제일 느림보 기차인 통일호도 시속 120km를 낼 정도로 커브구간서의 원심력 현상은 중량이 크고 속도가 빠른 열차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다.
틸팅열차(TTX)가 바로 그 대안이다. 틸팅(tilting)이란 말 자체가 기울어지다란 뜻이다. 쇼트트랙 선수나 오토바이 선수와 같이 차체를 기울여 속도를 줄이지 않고 선로를 늘리지 않고도 그대로 달릴 수가 있다. 이는 곡선궤도 주행 시 차체를 곡선의 내측으로 기울여 원심가속도의 횡방향 성분을 중력가속도의 횡방향 성분으로 감쇄시키는 원리다.
2011년 한국형 틸팅열차가 달린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KRRI)은 지난 1월 16일 경남 창원에 있는 로템 공장에서 한국형 틸팅열차를 최초로 선보였다. 이 열차는 지난 2001년부터 연구개발에 착수, 제작 완료한 것으로 올 3월부터 충북선에서 시운전을 시작으로 빠르면 2010년 영업 노선에 본격 투입될 예정이다.
한국형 틸팅열차는 기존 선로에서 최고속도 200km/h로 주행할 수 있는 전기식 준고속열차로, 제작 완료된 시제차량은 6량 1편성의 동력분산방식이다. 동력분산식 열차는 동력을 내는 차량이 열차 편성의 중간에 있어서 중량을 분산시킨다. 이는 선로 유지보수 비용을 절감시키고 열차의 가속 및 감속을 신속하게 해준다. 참고로 현재 새마을호나 무궁화호는 디젤기관차로 추진되는 동력집중식이며 KTX도 앞뒤의 동력차로 추진되는 동력집중식이다.
또 속도 향상을 위해 차체를 일체형 성형기법을 적용한 복합소재로 제작해 차체 무게를 40% 이상 감소시켰다. 일체형 성형기법은 차체 전체를 탄소섬유 복합소재를 이용해 한꺼번에 제작한 후 대형성형기에 넣고 고온·고압을 가하여 구워내는 방식이다. 이는 제작 효율과 차체의 강도를 향상시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틸팅열차의 가장 핵심은 곡선부 주행 능력. 한국형 틸팅열차는 곡선부에서 바퀴가 스스로 정렬되는 조향기능을 위해 틸팅대차를 적용했다. 이 조향대차 기능은 KRRI에서 개발, 특허를 받은 것이다. 이 일체형 복합소재차체 제작 기술과 틸팅 조향대차기술은 각각 지난해 6월과 12월에 신기술 인증(NET)을 획득했다.
틸팅조향대차란 곡선부에서 차체를 기울이면서 대차의 바퀴 부분이 선로를 따라 진행각도가 변동되는 대차이다. 이 장치는 탈선의 위험을 감소시켜 곡선 구간에서의 안정성을 확보하는데 유리하다.
이번에 특허 받은 조향대차는 링크방식의 틸팅기술로서 구조가 간단하면서 정비성이 우수하고, 견인·제동시 토션바에 의해 길이방향의 변위가 억제되어 곡선 추종성이 향상된 효과가 있어서 특허성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런 모든 기능들이 열차의 기울어짐에도 불구, 안정적인 운행과 승차감을 유지시켜주는 것이다. 물론, 속도 향상의 효과도 얻을 수 있다.
총 470억 원이 투자된 한국형 틸팅열차는 현재 경부선 호남선, 전라선, 경전선, 중앙선, 충북선 등의 운행에 적합한 것으로 거론되고 있으며 새마을호, 무궁화호 등 노후 차량의 대체열차가 될 가능성도 있다.
또 향후 건설되는 최고속도 200km/h의 1급 선로에서는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디젤기관차 견인방식의 열차 대신에 친환경적인 전기추진 방식을 채택한 틸팅열차가 다닐 수도 있다.
- 조행만 객원기자
- 저작권자 2007-03-04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