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뇌에 기억이 어떻게 축적되고 강화돼 머릿속에 오랫동안 남는가는 과학자들의 오랜 의문이었다.
독일의 동물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리하트트 지몬(Richard Semon)은 115년 전에 기억의 신경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엔그램(engram)’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하였다.
이후 정교한 기술과 방법이 활용 가능해짐에 따라 최근 들어 엔그램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축적되기 시작했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학습과 기억 피카워 연구소’ 수스무 도네가와(Susumu Tonegawa) 교수와 시크 어린이병원(SickKids) 및 토론토대의 쉬나 조슬린(Sheena Josselyn) 교수는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 3일 자에 발표한 새로운 리뷰에서, 자신과 동료 과학자들이 최근 십수 년 동안 엔그램을 식별하고 특성화하며 나아가 조작까지 할 수 있는 급속한 발전을 이룬 데 대한 설명과 함께, 이 분야에 대한 주요 의문들에 대해 기술했다.
뉴런의 멀티스케일 네트워크
엔그램이란 기억의 흔적이나 잠재 기억, 잠재적 기억상(記憶像)으로서, 뇌 안의 인지 정보를 구성하는 단위다.
과학자들은 외부 자극에 반응해 뇌나 다른 신경조직에 생물물리학적 혹은 생물화학적 변화가 일어날 때 그 기억이 저장되는 수단으로 생각해, 엔그램의 정확한 메커니즘과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연구를 지속해 왔다.
이 과정에서 설치류에 대한 실험을 통해 엔그램이 뉴런의 멀티스케일 네트워크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우리가 접하는 경험은 해마나 편도체 같은 뇌 영역의 흥분된 뉴런들이 모여들어 국소적인 군집(ensemble)을 이룰 때 뇌에 검색 가능한 기억으로 저장된다. 이 앙상블들은 뇌 피질 같은 다른 영역의 앙상블과 함께 ‘엔그램 복합체(engram complex)’로 결합된다.
엔그램 세포들을 연결하는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시냅스 가소성(synaptic plasticity)’과 ‘수상돌기 가지 형성(dendritic spine formation)’으로 알려진 과정을 통해 뉴런들이 새로운 회로 연결을 구축하는 능력이다.
실험에 따르면 엔그램 복합체에 초기 저장된 기억은 복합체의 재활성화에 의해 검색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초기 알츠하이머병 같은 기억 손상 연구에 사용되는 쥐 실험에서 볼 때 저장된 기억이 자연적으로 떠오르지 않을 때라도 엔그램 복합체에 저장된 초기 기억은 ‘조용히(silently)’ 유지된다는 점이다.
해결되지 않은 의문과 잠재 응용분야 많아
캐나다 고등기술연구원(CIFAR) ‘뇌와 마음, 의식 프로그램’ 시니어 펠로우이기도 한 조슬린 교수와 하워드 휴즈 의학연구소 연구원을 겸하고 있는 도네가와 교수는 “리하르트 지몬은 100여 년 전에 엔그래피의 법칙(a law of engraphy)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도네가와 교수는 “연구자들이 이런 이론적 아이디어와 새로운 도구를 결합해 세포 앙상블 수준에서 엔그램을 영상화하고 조작한다면 기억의 기능에 대한 많은 중요한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많은 증거들을 살펴볼 때 고유의 흥분성 증가와 시냅스 가소성 모두 다 같이 엔그램을 형성하며, 이런 과정들은 또한 기억 연결과 검색 그리고 기억을 강화하는데 중요하다는 것.
조슬린과 도네가와 교수는, 이 분야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의문과 손대지 않은 잠재적인 응용영역이 있다고 기술했다.
즉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엔그램은 어떻게 변하는가 △인간을 대상으로 엔그램과 기억을 더욱 직접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리고 생물학적인 엔그램에 대한 지식을 응용해 인공지능 발전에 도움을 주고, 여기서 되돌아오는 피드백으로 엔그램의 작동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가 하는 점들이 그것이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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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0-01-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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