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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용 기자
2009-03-04

극지 얼음물 누비는 초인의 비밀 남극바다에서 30분 수영한 아이스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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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극기 훈련 하면 떠오르는 게 뭐가 있을까? 꽁꽁 언 강물에 구멍을 내고 그 안으로 몸을 풍덩 하고 담그는 것일 게다. 매서운 추위에 가만 있어도 온몸이 떨리는데 맨몸으로 물속으로 들어간다니, 정말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이런 극기 훈련을 해본 사람조차도 눈이 휘둥그레지고 입이 딱 벌어지게 할 만한 사람이 있다. 루이스 고든 퍼그라는 영국인으로, 2005년 그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추운 남극과 북극에서 팬티수영복과 수영모자만을 몸에 걸치고 잠깐 동안이 아니라 최대 30분이나 되는 오랜 시간 동안 얼음바다를 누비며 헤엄을 쳤다.

뿐만 아니라 2007년에는 지질학적 북극점의 온도가 -1.7∼0도밖에 안 되는 물에서 18분 50초 동안 수영했다. 이런 초인적 기록에 그 외에는 세상 누구도 감히 도전할 자가 없다.그렇다면 퍼그 씨의 이런 초인적 능력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최근 그에 관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그에 대한 비밀을 파헤쳐보자.
 

우리나라 해녀보다 월등

남극과 북극의 바닷물은 온도가 고작 0도 정도 밖에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0도의 대기에서는 살 수 있지만 이런 차가운 물에서는 우리 몸이 견디지 못한다. 우리 몸은 27도 이하의 물속에서도 아무리 몸을 떨어도 체온을 유지할 수 없어 결국 저체온증에 빠질 정도로 물에 약하다.

그러니 0도의 물은 그야말로 치명적이다. 이런 물에 들어가면 호흡곤란(hyperventilate)이 일어나 숨을 정상적으로 쉴 수도 없어 수영을 해보기는커녕 의식을 제대로 차리지 못해 결국 몇 분도 안 돼 익사하고 만다. 그래서 극지방의 얼음바다에 뛰어드는 건 도전이 아니라 무모한 일인 것이다. 그러니 우리가 퍼그 씨를 초인이라고 부른다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퍼그 씨와 조금이라도 비교할 만한 사람을 대라면 우리나라의 해녀들이 있다. 1970년대 이전 우리나라 해녀들은 한 겹의 면잠수복만 입고 사시사철 잠수작업에 종사했다. 겨울철 물의 온도는 10도 정도로 차가운 데도 30분 정도까지 물에서 작업하는 우리나라의 해녀들은 전 세계적으로 놀라움의 대상이었다.

이들에 대한 연구 결과, 해녀들은 30분간의 작업을 하면 심부온도가 약 35℃까지 떨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심부온도가 35℃ 이하가 되면 더 이상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어떤 일을 해낼 수 없는 저체온증에 이른다.

그래서 해녀들은 저체온증에 빠지긴 전까지 잠수를 했던 것이다. 이들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학계에서는 안전한 수중활동을 위한 심부온도의 하한선을 35℃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퍼그 씨도 해녀처럼 저체온증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만 체온을 유지하는 걸까? 퍼그 씨가 수영하는 동안 그의 몸을 연구해온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 대학의 저명한 스포츠과학자 티모시 노아키스 교수에 따르면 해녀보다 훨씬 더 차가운 극지 바다에서 30분 이상 수영한 그의 경우는 달랐다. 그의 심부온도는 해녀보다 높은 36도로 유지됐다. 어떻게 그는 이럴 수 있을까?

<비법 1> 정신일도 하사불성

퍼그 씨가 수영을 하기 시작한 건 영국에서 살다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이사한 지 얼마 안 된 17세부터였다. 한 달 동안 정규 수영 수업을 들은 후 그는 넬슨 만델라가 18년 동안 갇혀 있었던 로벤섬까지 7킬로미터 거리의 수영대회에 참가했다. 그곳 물의 온도는 오싹할 정도로 차가운 12도 정도였다. 이후 그는 장거리 수영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되었고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물의 세계를 탐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선 지난 20여 년 동안 그는 영국해협을 비롯해 전 세계 여러 곳에서 17번의 장거리 수영에 도전했다. 그러던 중에 기후변화로 인해 빙하가 후퇴하고 얼음이 녹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 후 이제보다 더 극한 상황으로까지 끌어올려, 즉 남극과 북극에서의 장거리 수영을 하는 자신의 도전을 통해 사람들에게 기후변화를 알리기로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얼음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퍼그 씨는 이전보다 준비가 철저해야 했다. 우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다. 자신의 성공을 집중적인 정신훈련으로 돌릴 정도로 말이다. 도전을 하기 수 주 동안 그는 하루에 4시간씩 정신훈련 담당 코치와 함께 마음을 가라앉히고 정신을 집중시키는 훈련을 지속했다.

이때 그는 오로지 도전에만 마음을 집중했다. 퍼그 씨는 “물에서 팔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피부를 통해 얼음을 느낀다”면서 “어떻게 시작하고 끝날지 수영하는 매 순간에 대해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정신훈련을 통해 그는 물에 들어가기 수 분 전에 어떤 육체 활동을 하지 않고도 몸의 심부온도를 38.4도까지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을 ‘선행 열발생’(anticipatory thermogenesis)이라고 하는데 노아키스 교수는 이전에도 이런 게 나타나긴 했지만 퍼그 씨처럼 이렇게 체온이 높이 올라간 적은 없었다고 말한다.

차가운 물에서 수영하는 러시아인을 대상으로 한 이전의 실험에서는 아드레날린 호르몬을 주사했을 때 이런 효과가 나타난 적이 있었다. 노아키스 교수는 퍼그 씨의 경우 사전 준비 기간 동안 몸에서 아드레날린 호르몬을 분비하는 기작을 활용하는 능력이 생겨 체온을 높이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비법 2> 냉 쇼크에 대한 강한 내성

한편 퍼그 씨는 여러 놀라운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예를 들면 얼음물에 천천히 들어가는 게 아니라 곧바로 점프해 들어가는 것이다. 이럴 경우 보통 사람은 얼음물에서 일반적인 사인이 되는 냉 쇼크에 빠진다.

또한 갑자기 얼음물에 들어가면 피부 표면에 있는 신경에서 기온이 갑자기 확 떨어진다고 느끼는데, 이럴 경우 무의식적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호흡곤란이 일어난다. 이때 물을 들이키게 되면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익사하고 만다.

뿐만 아니라 우리 몸의 중요한 기관을 보호하기 위해 혈액이 사지로 흐르는 것을 최대로 줄이면서 혈관이 극도로 좁아지는데 이로 인해 혈압이 갑자기 상승하면서 심장마비가 일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퍼그 씨는 이 같은 초기 냉 쇼크를 어떻게 극복하는 것일까? 추위에 익숙해짐으로써 초기 냉 쇼크의 반응이 급작스럽게 나타나지 않도록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그도 “나도 확실히 추위를 느낀다. 그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다”고 할 정도로 얼음물에 들어간 초기 몇 분 동안은 숨 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렇지만 그는 확실히 냉 쇼크에 대한 강한 내성을 갖고 있다.

<비법 3> 과학적 설명 안 되는 떨기 반사 차단

얼음물에 들어가자마자 겪는 냉 쇼크를 극복했다고 해서 얘기가 끝나는 건 아니다. 그 다음에 또 다른 문제와 직면해야 한다. 우리의 사지와 근육은 점점 차가워지는데 이때 우리 몸의 운동을 관할하는 신경도 함께 영향을 받는다. 그렇게 되면 근육들이 우리 몸의 움직임을 조화롭게 할 수 없다. 점점 몸이 말을 듣지 않아 수영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퍼그 씨는 바깥쪽 근육에는 혈액의 흐름을 차단하는 반면 안쪽 근육에는 혈액을 공급해 따뜻하게 유지하는 능력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오랫동안 수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외에도 더 놀라운 점은 퍼그 씨가 이제까지의 과학적 설명을 무시하는 또 다른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수영을 할 때 그는 스스로 몸이 떨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상적으로 우리 몸은 심부온도가 36.6도 이하로 떨어지거나 피부온도가 28도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적으로 떨기를 시작한다. 이런 자동 반사는 근육수축을 통해 열을 발생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는 체온유지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차가운 물에서 떨면 몸이 식는 속도만 더 높아진다. 이는 심부에서부터 사지로 혈액 공급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퍼그 씨는 심부온도는 36.6도 이하로 떨어지고 피부 온도가 5도밖에 안될 때조차도 떨기를 스스로 멈출 수 있다.

그래도 초인은 추위가 가장 두렵다

이렇게 초인적 능력을 가진 그라도 차가운 물은 두렵다. 이전에 영국의 국영방송 BBC와의 인터뷰에서 수영할 때 무엇이 가장 두렵냐고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북극곰, 상어, 바다표범, 해파리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가장 두려운 건 추위다. 북극에서 수영하기 전 우리 팀은 호흡곤란을 걱정했다. 그 누구도 이전에 이렇게 차가운 물에서 장거리 수영을 시도한 적이 없었다. 로버트 피어리 경은 북극을 걷기만 했는데도 8개의 발가락을 잃었고, 현재 생존해 있는 가장 위대한 탐험가로 불리는 래널드 피엔은 북극해 물에 수 분간 노출되기만 했는데도 여러 개의 손가락을 잃었다. 나는 이런 사실들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실제로 그는 한계에 부딪친 적이 있다. 2005년 남극 디셉션 섬에서 수영도전을 할 때 그에게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30분 동안 수영했을 때 그의 심부온도는 갑자기 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몸은 수 분 만에 33.6도까지 떨어졌었다. 만약 2-3분 더 물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면 의식을 잃었을 것이라고 노아키스 교수는 말한다.

퍼그 씨는 남극과 북극에서의 수영 도전을 하고 난 후에는 타월에 몸을 감싸고 오랜 기간 동안의 회복기를 갖는다. 0도 이하의 온도에서는 손가락이 얼기 시작하는데 손가락들이 다시 감각을 찾는 데는 4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아무리 그가 아이스맨이라고 불릴 정도로 차가운 물에 강하다지만 그의 몸은 여느 사람과 같은 것이다.

박미용 기자
pmiyong@gmail.com
저작권자 2009-03-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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