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학생들이 과학과 공학을 혼동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 두 학문은 엄연히 다르다고 볼 수 있어요. 과학이 자연의 원리를 이해하는 학문이라면 공학은 과학에서 얻은 원리를 인류를 위해 응용하는 학문이죠. 예를 들어 자동차를 만든다든지, 집을 만든다든지 혹은 원자력 발전을 이용해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입니다. 즉, 공학을 통해 우리 인류의 삶이 보다 풍성해진다고 말할 수 있겠죠.”
과학과 공학의 차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우리 주위에 많다. 때문에 기계공학과에 들어온 신입생이 “미래 노벨상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서 이 학과를 선택했다”고 포부를 밝히는 사례도 종종 있다. 노벨상은 공학자에게 주는 상이 아닌, 과학자에게 주는 상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스갯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화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카이스트 교수 19명이 공학을 소개하는 책을 집필해 주목을 받고 있다. 성풍현 원자력및양자공학 교수와 한순흥 해양시스템공학 교수, 심현철 항공우주공학 교수, 배중명 기계공학 교수 등 카이스트에 설립된 공학과 교수들이 ‘공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펴낸 것이다.
‘진짜’ 공학에 대한 이야기
“저 역시 대학교에 진학할 때 공학과 과학의 차이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대학교에 가보니 공학과 과학의 차이가 정말 크다는 것을 알았죠. 제가 MIT에서 유학을 할 당시, 학교 도서관에 가니까 공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영상을 만들어놨더군요. 입학한 후 그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정말 유용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긴 유학생활의 방향키로 느껴졌다고나 할까요. 우리 카이스트에서도 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공학을 소개하는 ‘자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이 책을 집필하게 됐습니다.”
사실 공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책들은 이전에도 많이 출판됐다. 하지만 이러한 책들을 접한 독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 아직 공학을 제대로 배우지 않은 학생들이 읽기에는 전문용어가 너무 많이 사용될 뿐 아니라 학술적으로 집필된 경우가 많아 심리적으로 거리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때문에 성풍현 교수는 공저로 참여한 교수들에게 쉽게 책을 써줄 것을 당부했다. “무엇보다 책을 쉽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기존의 책들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죠. 공저로 참여하는 교수님들에게도 아직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은 청소년들이 이해하기 쉬울 정도의 수준으로 집필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교수님들의 협조로 이번 작업이 수월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책 집필의 진두지휘를 맡은 성 교수는 지난 4월까지 카이스트의 입학처장을 역임했다. 지난해부터 맡게 된 ‘입학처장’이라는 직함이 스스로에게 많은 고민을 안겨줬다고 이야기하는 성 교수는 “그 때문에 책까지 기획하게 됐다”고 운을 뗐다.
“학생들에게 공학이 우리 생활과 동떨어진 게 아닌, 오히려 우리 생활과 굉장히 밀접한 학문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공학이 무엇인지 알아야 우수한 예비 대학생들이 학교를 선택할 때 공대를 지원할 수 있지 않겠어요?”
학생들에게 보다 생생한 공학의 세계를 알려주기 위해 집필에 참여할 교수들을 선정할 때도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이미 학계에서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베테랑 교수부터 새롭게 떠오르는 젊은 교수까지, 연령과 스타일을 다양화해 어린 학생들이 책을 읽기에 최대한 부담을 덜 느끼도록 했다.
“집필에 참여한 교수님들에게는 딱 다섯 가지를 요구했어요. 먼저 우수한 학생들이 이공계를 선택할 수 있도록 진학 유도에 일조하자는 것과 책을 읽고 난 후 소개하고 있는 전공이 과연 어떤 분야인지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하자는 게 그것입니다. 더불어 공학의 역사를 다뤄 줄 것과 관련 공학 분야의 큰 업적을 남긴 인물을 소개할 것, 그리고 해당 분야에서 계속 거론되는 거대 프로젝트를 이야기 해달라고 했죠. 공학에 대한 설명이 보다 상세하고 구체적일수록 학생들이 받는 동기부여의 강도 역시 높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더욱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겠죠?”
“공대 나와도 돈 잘 벌 수 있어요”
알 만한 사람은 알겠지만 공대생 사이에서 사용되는 은어는 매우 다양하다. 또한 외부에서도 ‘공돌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이공계 학생들에 대한 은근한 편견을 고수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는 왜 이공계 전공자들에 대해 이러한 고정관념을 갖게 됐을까.
“제가 학교에 진학할 때만 해도, 이공계통 학과의 인기는 정말 높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산업발전을 이뤄가면서 이공계생들의 인력이 많이 필요했기 때문이죠. 원자력공학과가 새로 생겼을 때는 전국 수석이 해당 학과를 지원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의대와 법대로 그 흐름이 옮겨갔죠. 아마도 산업이 어느 정도 발전하면서 생기게 된 현상이 아닌가 싶어요. 더 이상 공학이 할 역할은 모두 소진됐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때문에 공대를 졸업하면 직업이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인식을 갖게 됐고, 이에 따라 이공계 기피현상이 심화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사실 이공계통을 전공할 경우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기회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이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외국의 유명 포털사이트인 야후와 구글, 더불어 세계 시장에 혁신적인 바람을 일으킨 애플사 등의 많은 중역들이 이공계 전공자임을 강조한 성 교수는 “공학적 마인드를 기초로 한 후 타 학문과의 융합을 시도해 많은 변신을 꾀할 수 있는 것 역시 공학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이야기했다.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는 게 공학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과 매우 밀접한 것이 공학이에요. 이공계통을 전공할 경우 직장에서 일찍 옷을 벗게 된다는 고정관념이 아닌, 경제적으로도 윤택할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역사적으로도 우리나라가 다른 민족들로부터 외침(外侵)을 많이 받은 이유 중 하나는 공학 발전이 늦었기 때문입니다. 타 민족들이 총으로 공격할 때 우리는 창과 칼로 대응하니 역부족이었던 것이죠. 즉, 부국강병을 이루는 길목에는 공학이 있다고 볼 수 있는 셈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학생들에게 알려서 애국심을 갖게 하고 공학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제2의 공학 전성시대가 다시 열릴 것인가. 이에 대해 성 교수는 “그렇다”고 이야기했다. “현재 중국이나 베트남이 산업화되는 과정에서 공대에 대한 관심이 정말 높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됐죠.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창조경제죠.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창출하고 벤처가 일어나는 과정 속에서 공학의 제2 전성기는 반드시 찾아오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공학’이라는 단어가 주는 의미에서 ‘유연성’이라는 이미지를 연상하지 못한다. 하지만 공학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얼굴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그야말로 유연성을 내포한 대표적인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 토목사업이 발달했을 때는 ‘토목공학’이 등장했고, 바이오‧의료 기술이 개발되는 현재 ‘의료공학’이라는 용어가 나오고 있다. 또한 로봇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로봇공학’ 이 학생들의 관심을 받고 있으며, 뇌 연구에 대한 이슈가 가중되면서 ‘뇌공학’ 역시 뜨거운 이슈를 끌고 다닌다.
성 교수는 이처럼 유연성이 높은 공학이라는 학문에 대해 우수한 학생들이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했다.
“앞으로 이 책은 계속 보완되고 편집을 거쳐 더욱 온전한 모습을 이뤄갈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공학이란 무엇인가'가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으면 좋겠어요. 더불어 해외 출판도 꾀해 외국 학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더욱 의미가 있겠죠.”
성 교수는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는 학생과 현재 이공계통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당부의 말을 이어갔다.
“공학은 우리의 삶을 직접적으로 바꾸는 학문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의 삶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바꿀 수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런 만큼 공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본인이 꾸준히 노력하면 부와 명예를 모두 가질 수 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깨닫길 바랍니다.”
- 황정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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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3-09-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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