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추 디스크는 현대인에게서 가장 많이 발생하는 질환 중 하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에 의하면 최근 1년간 허리 디스크로 병원 진료를 받은 환자 수는 약 193만 명, 목 디스크 환자는 95만 명에 달한다.
매년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척추 디스크는 척추뼈와 뼈 사이의 구조물인 추간판(디스크)이 탈출된 증상으로, 특히 노령이 되어 탄력성이 없어지면 일어나기 쉽다. 척추뼈를 연결해 움직이게 하는 추간판은 연골성 섬유 고리와 완충제 역할을 하는 젤라틴성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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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간판은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만이 가지고 있다는 게 이때까지의 정설이다. 현대의 뱀이나 파충류들은 추간판이 없다. 대신 그들의 척추뼈는 ‘절굿공이 관절(ball-and-socket joint)’로 연결되어 있다.
절굿공이 관절이란 공 모양의 한쪽 부분이 오목한 면에 들어가 회전하는 식으로 된 관절이다. 대표적인 것이 인간의 고관절인데, 여기서 공 모양의 척추 끝은 컵 모양의 움푹팬 곳에 꼭 들어맞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관절의 이동성을 유지해 주는 연골과 윤활액이 들어 있다.
이 같은 구조 덕분에 현대의 파충류들은 추간판의 일부가 척추관 밖으로 빠져나가면서 생기는 추간판 탈출증, 즉 척추 디스크로부터 자유롭다.
공룡의 척추뼈는 인간과 비슷해
그런데 지구상에 살았던 육식 공룡 중 가장 무섭고 사나운 티라노사우루스도 추간판이 있어서 척추 디스크로 고생했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독일 본대학의 탄자 빈트리히 박사팀을 비롯해 캐나다, 러시아 등의 국제 공동연구팀이 발표한 이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게재됐다.
본대학 지질학연구소의 고생물학자인 빈트리히 박사는 고대 파충류들이 추간판을 지니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그런데 빈트리히 박사는 대부분의 공룡과 고대 해양 파충류의 척추뼈가 인간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는 것을 발견했다.
즉, 공룡과 고대 해양 파충류들은 현대의 파충류들이 지닌 절굿공이 관절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다. 이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빈트리히 박사가 이끄는 연구팀은 쾰른대학, 프라이베르그대학, 그리고 캐나다 및 러시아 연구진과 함께 총 19종의 공룡, 멸종된 파충류, 현대 동물을 조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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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연구진은 추간판이 포유류에서만 생긴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를 위해 연구진은 관련된 척추뼈를 고생물학, 해부학, 발달생물학, 동물학 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분석했다.
분석 결과 연골의 잔해와 심지어 추간판의 일부까지 고대 표본에 거의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냈다. 그 표본들에는 익룡과 같은 고대 해양 파충류를 비롯해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공룡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어 연구진은 3억 1000만년 전의 포유류와 공룡, 조류로 갈라진 육지동물의 가계도를 따라 척추뼈 사이에 있는 연조직의 진화 과정을 추적했다. 그 결과 추간판은 육지동물의 진화 과정에서 여러 번 나타난 것으로 밝혀졌다.
현대 파충류들은 절굿공이 관절로 대체돼
즉, 추간판은 이런 동물에서 진화하는 동안 여러 번 변화했으며, 결국 현대의 파충류들에서는 절굿공이 관절로 대체되었다. 연구진은 파충류의 추간판이 사라진 이유는 절굿공이 관절보다 쉽게 손상되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하지만 포유류들은 항상 추간판을 유지함으로써 진화적 유연성이 다소 제한되는 익숙한 패턴을 반복해왔다.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본대학의 마틴 샌더 박사는 “이번 연구 결과는 인간에 대한 의학적 이해로서의 의미가 크다”며 “인간의 몸은 완벽하지 않고, 디스크 같은 질병은 우리의 오랜 진화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추간판이 진화 역사에서 매우 오래된 특징이라는 사실은 이전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빈트리히 박사는 “티라노사우루스조차도 척추 디스크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6700만 년 전에서 6500만 년 전의 후기 백악기에 살았던 티라노사우루스는 길고 잘 발달된 뒷다리와 강한 근육으로 포식자 중에서도 최고의 포식자로 군림했다. 정확한 이름은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로서 티라노는 폭군, 사우루스는 도마뱀, 렉스는 왕이라는 뜻이다. 보통 줄여서 ‘티렉스’라고 부른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본대학의 칼 실링 박사는 “진화생물학자들이 해부학이나 발생학 등과 관련된 의학 연구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아지는 추세인데, 이는 급변하는 의학 연구 환경에서 점점 중요해지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이성규 객원기자
- yess01@hanmail.net
- 저작권자 2020-08-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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