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년 전 한 국회의원이 대화 도중 쓰러져 반신불수가 된 적이 있다. 뇌졸중(stroke) 때문이다. 뇌졸중은 무서운 병이다. 갑자기 뇌혈관에 순환장애가 일어나 의식이 사라지고 신체가 마비되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가능한 빨리 큰 병원으로 이동해 뇌 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응급 치료를 받아야 한다. 빠른 시간 내에 치료를 받을 경우 뇌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을 지체할 경우 심각한 뇌손상이 일어난다.
통계에 의하면 시간을 지체할 경우 3분의 1이 사망하고, 설사 살아난다 하더라도 치명적인 뇌 손상이 발생한다. 그동안 의료계는 이런 뇌손상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해왔다.
그러나 마땅한 치료제 하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최근 과학자들이 뇌손상을 막을 수 있는 의약품을 개발했다. 뇌손상을 막을 수 있는 최초의 본격적인 의약품으로 많은 사람들이 뇌졸중 치료에 희망을 갖게 됐다.

깔때기그물거미 독에서 유효 성분 발견
21일 ‘가디언’ 지에 따르면 호주 퀸스랜드 대학의 통증의학 센터의 글렌 킹(Glenn King) 교수 연구팀은 깔때기그물거미(funnel web spider)의 독(毒) 에서 뇌졸중 치료 성분을 추출하는데 성공했다. 이 거미의 독은 매우 강력하다.
물리면 15분 만에 즉사하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독 안에는 인체에 무해한 성분이 들어있다. 연구팀 관계자는 "이 성분을 뇌졸중 환자의 뇌에 투입해 신경세포(neuron)가 파괴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실험이 성공할 경우 최초의 뇌졸중 치료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깔때기 그물거미(Darling Downs funnel web spider)의 독 유전자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이 성분이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실험에 투입된 거미는 세 마리로 브리즈번 시에서 400km 떨어진 오키드 비치에서 채취했다. 이들 거미의 독 DNA를 분석한 결과 그 안에서 새로운 분자 성분이 발견됐다. 연구팀은 이 성분에 ‘힐라(Hilla)'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연구자들은 이 특이한 모양의 분자에 주목한 후 그 성분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복합체가 뇌손상을 막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뇌졸중이 발생하면 뇌혈관이 멈추고 뇌세포에 산소 공급이 차단된다.
약 85%의 뇌졸중이 이 뇌혈관 사고로 발생하고 있다. 나머지 경우는 뇌혈관이 파괴되는 더 심각한 경우다. 뇌졸중이 발생하면 병원 응급실로 옮겨 차단된 산소를 다시 공급해야 한다. 산소가 공급돼야 뇌를 다시 움직이게 할 수 있다.
안전성 입증되면 뇌졸중 치료 가능해져
우리가 음식을 먹으면 위장은 그 내용물을 분석해 글루코제(Glucose)로 변환시킨다. 포도당이라고 하는 클루코제는 뇌의 연료다. 그리고 이 연료를 태워 에너지를 발생시키기 위해서는 충분한 산소가 공급돼야 한다.
산소의 공급이 충분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무산소성 해당작용(anaerobic glycolysis)이 발생하게 되고, 뇌의 정상적인 활동을 대신하게 된다. 그러나 이 단계에서 산(acid)이 발생하게 된다. 뇌세포가 파괴되는 원인이다.
킹 교수 연구팀은 이 과정에서 깔때기그물거미 독 성분이 활용될 수 있음을 발견했다. 쥐의 뇌 안에 산이 발생하는 상황에서 독에서 채취한 분자 ‘힐라’를 투입한 결과 이온 통로(ion channel)을 통해 세포 속으로 산이 유입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이온 통로란 세포막에 존재하면서 세포의 안과 밖으로 이온을 통과시키는 막 단백질이다. 연구팀은 수 차례 쥐 실험을 통해 이 분자가 뇌손상을 막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자세한 내용은 국립과학원회보(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에 실렸다.
킹 교수는 “뇌졸증이 발생한 쥐를 대상으로 2시간 동안 ‘힐라’를 투입한 결과 80%의 뇌손상을 막을 수 있었다”면서 “치료를 하지 않은 쥐와 비교했을 때 65%의 뇌세포를 더 보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새로 발견한 이 성분을 사람의 뇌졸중 치료에 사용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람 뇌에 ‘힐라’를 투입할 경우 안전성이 보장돼야 하며, 또한 쥐 실험에서처럼 혈관 내에서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을지 확인해야 한다.
이 임상실험에서 약효가 확인될 경우 기존 뇌졸중 치료에 큰 변화가 일어날 전망이다. 과학자들이 지금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지만 뇌졸중에 의한 뇌손상을 막을 수 있는 뚜렷한 의약품도 개발돼 있지 않은 상황이다.
일부 병원에서 피가 엉기는 것을 늦추는 의약품이나 혈관내 혈전절제술(endovascular thrombectomy)과 같은 치료법을 시도하고 있지만 부분적인 치료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한 ‘힐라’는 뇌손상 자체를 막는 기능을 갖고 있다.
킹 교수는 “뇌졸증 환자들이 응급 상황에서 이 성분을 투입할 경우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뇌손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매년 600만 명에 달하는 뇌졸중 환자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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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3-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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