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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권예슬 리포터
2024-10-25

원자도 편집하는 시대 열렸다 원자 하나만 콕 집어 원하는 원자로 바꾸는 ‘단일 원자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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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자 가위를 이용해 분자 속 원자 하나를 다른 원자로 바꾸는 ‘단일 원자 편집’ 기술이 개발됐다. ©KAIST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남’이 된다. 고작 점 하나지만 ‘님’과 ‘남’은 천지 차이다. 분자도 마찬가지다. 단 하나의 원자지만 산소(O)냐 질소(N)냐에 따라 발암물질이 되기도, 의약품의 주요 골격이 되기도 한다. 천지 차이를 손쉽게 넘어설 기술이 개발됐다. 박윤수 KAIST 교수팀은 원자 하나만 골라 원하는 원자로 바꾸는 ‘단일 원자 편집(Single Atom Editing)’ 기술을 개발하고, 그 연구 결과를 3일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했다.

 

분자의 핵심 원자 바꾸는 ‘골격 편집’

많은 의약품은 복잡한 화학 구조를 갖지만, 정작 효능은 단 하나의 핵심 원자에 의해 결정되기도 한다. 복잡한 구조의 핵심인 골격에 특정 원자를 도입했을 때 나타나는 효능을 ‘단일 원자 효과(Single Atom Effect)’라고 한다. 하지만 분자 골격에서 특정 원자를 빼거나 도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레고 블록을 이용해 집을 만드는 과정에 비유해 보면 알 수 있다. 외부 블록 조각 하나를 바꾸는 것은 쉽지만, 뼈대를 이룬 조각을 바꾸려면 집 전체를 분해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 분자의 핵심 구조에서 특정 원자를 편집하는 ‘골격 편집’은 신약 개발 프로세스를 단축할 수 있는 혁명적 기술로 꼽힌다. ©Nature

 

분자 골격에서 특정 원자를 빼거나, 넣거나, 바꾸는 ‘골격 편집(skeletal editing)’ 반응은 최근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네이처(Nature)’의 통계에 따르면 2021년 5월부터 2년간 100여 편의 관련 논문이 쏟아질 정도로 관심이 높다. 높은 관심의 이유는 골격 편집의 신약 개발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약리 효과가 유망한 분자를 찾으면 과학자들은 효능을 개선하거나,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수백 가지의 유사한 구조를 만든다. 주변 원자를 변형하는 것은 비교적 쉽지만, 골격 원자를 편집하려면 합성의 시작 단계로 돌아가서 수정된 골격을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했다. 그만큼 개발 프로세스가 길어지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골격 편집을 이용해 원자를 편집하게 되면 이 과정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지금까지 분자에 탄소(C)나 질소를 도입‧삭제하거나 탄소 원자를 산소 원자로 바꾸는 등 몇 가지 반응이 개발됐다. ‘화이자’나 ‘머크’ 등 글로벌 제약사에서는 골격 편집을 신약 개발에 도입하려는 연구도 이미 시작했다. 하지만 기존 개발된 반응은 원치 않은 부산물이 생성되거나 고온이나 고에너지 자외선이 필요하고, 효율성(수율)이 떨어져 실용성이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었다.

▲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의 분석에 따르면 첫 논문이 나온 이후 2년간 100여 편의 논문이 나올 정도로 골격 편집 분야는 학계의 화두다. ©Nature

 

빛으로 ‘촉매 가위’ 활성화해 원자 싹둑

박윤수 교수팀은 ‘단일 원자 편집’이라고 이름 붙인 새로운 골격 편집 전략을 제시했다. 단일 원자 편집 기술은 유전병을 치료하는 유전자 편집처럼 특정 원자를 잘라내고, 그 자리에 다른 원자를 도입하는 화학반응이다. 우선, 연구진은 분자의 골격에서 특정 원자를 잘라낼 수 있는 ‘분자 가위’를 개발했다. 개발된 분자 가위는 아크리디늄(acridinium) 기반 광(光)촉매로 가시광선을 받으면 활성화된다.

이후 커피 추출물인 카페스톨과 질소 유기 화합물(-NH2), 분자 가위를 함께 두고 상온‧상압 조건에서 가시광선을 조사했다. 카페스톨 속 퓨란(탄소 원자 4개와 산소 원자 1개로 구성된 오각형 고리 구조 화합물)이 피롤(탄소 원자 4개와 질소 원자 1개로 구성된 오각형 고리 구조 화합물)로 변했다. 분자 가위 촉매가 퓨란 속 산소만 골라 질소로 바꾼 덕분이다. 퓨란 구조를 가진 60가지 이상의 화합물을 대상으로 실험을 반복했을 때도, 목표 화합물인 피롤이 높은 수율로 생성됐다.

▲ 연구진이 개발한 광촉매는 가시광선을 받으면 퓨란(위)을 산화하고, 아민과의 상호작용을 거쳐 피롤(아래)을 생성한다. ©Science

 

기존에는 새로 발견된 약물 후보가 유망한 생물학적 활성을 보일 경우, 핵심 구조가 수정된 유사체의 특성을 탐구하기 위해 각각의 후보를 여러 단계에 걸쳐 합성해야만 했다. 하지만 연구진이 제시한 단일 원자 편집 반응을 이용하면 한 종류의 원자를 다른 원자로 치환하면서도 분자의 전체 구조를 유지할 수 있다. 다단계 합성 대신, 약물 후보 간의 직접적인 전환이라는 새롭고 간결한 선택지가 제시된 것이다.

박윤수 교수는 “가시광선을 조사하는 온화한 반응 조건 덕분에 분자가 파괴되거나 변형되지 않아 높은 범용성과 실용성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다”며 “제약 분야의 중요한 숙제였던 의약품 후보 물질의 라이브러리 구축에 새로운 장을 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권예슬 리포터
yskwon0417@gmail.com
저작권자 2024-10-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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