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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권예슬 리포터
2024-10-07

가장 무거운 반(反)물질, 13년 만에 기록 갱신 ‘스타(STAR)’ 국제 공동연구팀, 초기 우주의 비밀에 한 발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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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 국제공동연구팀이 인류 역사상 발견된 가장 무거운 반물질인 ‘반하이퍼수소-4’의 핵을 발견했다. ⒸInstitution of Modern Physics, China

실수로 양말을 짝짝이로 신은 날엔 하루가 영 찜찜하다. 짝 맞는 양말을 신어야 마음이 편해지는 것처럼, 대칭은 ‘완벽’으로 여겨진다. 오래전부터 대칭은 ‘아름다움’의 대명사였다. 나비의 날개처럼 거의 모든 생물체는 한 개 이상의 대칭을 가진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대칭을 잃으며 만들어졌다. 빅뱅 직후 우주에는 같은 양의 물질과 반(反)물질이 만들어졌다. 물질과 반물질은 무게, 모양 등 다른 성질은 모두 같은데 전기적 성질만 다르다. 물질과 반물질이 만나면 즉시 빛을 내며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반물질이 사라지고 물질만 남게 되고, 우리의 우주가 만들어졌다. 인류는 세상이 생겨날 수 있었던 원동력, 즉 우주 기원의 비밀을 아직 모른다. 비밀의 풀 열쇠는 반물질에 있다.

 

찰나의 순간 머무르다 사라지는 반물질

1931년은 물리학 역사에서 기념비적인 해다. 1931년, 영국 최고의 이론물리학자로 꼽히던 폴 디랙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반물질의 존재를 처음 예측했다. 같은 해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 대학원생이던 칼 앤더슨은 우주선(cosmic ray)의 궤적을 추적하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존 물리학 지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데이터가 나왔다. 검출기의 자기장으로 인해 음(-)의 전하를 띠는 전자는 특정 방향으로만 휘어져야 한다. 그런데, 정반대로 휘어지는 입자도 함께 검출된 것이다. 이듬해 앤더슨은 국제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전자와 질량은 같지만 전하는 반대인 입자가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제시하며, 이 입자를 ‘양전자’라고 정의했다.

▲ 국제공동연구팀은 미국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BNL)의 중이온가속기(RHIC)로 입자를 충돌시키고, 이를 ‘스타(STAR)’라 이름 붙인 검출기를 통해 검출했다. ⒸBNL

양전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우주선 입자가 대기 중의 입자와 부딪치면 그 충돌 에너지가 전자와 양전자 쌍을 만들어낸다. 같은 논리로 더 큰 에너지를 갖는 두 입자를 충돌시키면 입자-반입자 쌍을 만들어낼 수 있다. 입자를 만들어낸 실험 결과는 20여 년이 흘러서야 나왔다. 1955년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LBNL)에서 양성자의 반입자인 반양성자가 발견됐고, 이듬해 같은 연구진이 반중성자도 발견했다.

1995년, 과학자들은 마침내 반물질을 관측했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 연구진은 아테나(ATHENA) 검출기를 이용해 수소의 반물질 원자인 반수소를 발견했다. 반수소는 우리가 아는 수소와 전기적 성질이 정반대다. 음(-)전하인 반양성자 1개 주위에, 양(+)전하인 양전자가 1개가 분포하는 구조다. 2002년 CERN 연구진은 반수소 원자 수천 개를 한꺼번에 만들어내는 데도 성공했다.

첫 반물질 관측 다음 단계는 더 무거운 반물질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2011년 미국 브룩헤이븐국립연구소(BNL)의 ‘스타(STAR)’ 국제 공동연구팀은 헬륨 원자핵(알파입자)의 반입자인 ‘반알파입자’를 발견했다. 반양성자 2개, 반중성자 2개로 이뤄진 원자핵이다. 연구진은 BNL의 중이온가속기(RHIC)에서 금 원자핵 두 개를 빛의 속도로 약 10억 번 충돌시키는 실험을 진행했다. 가속기 안에 수조℃에 달하는 고열이 발생하면서 원자핵이 모두 녹아 엄청난 에너지로 바뀌는 현상이 일어난다. 가속기 안에서 우주의 빅뱅을 작게 재현한 셈이다. 이후, 반알파입자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무거운 반물질의 입지를 10년 넘게 유지해왔다.

▲ 2011년 스타 국제공동연구팀이 발견한 반알파입자는 발견 이후 현재까지 가장 무거운 반물질 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 ⒸBNL

 

13년 만의 가장 무거운 반물질 기록 경신

지난달 8월 21일 가장 무거운 반물질 기록을 경신한 새로운 연구가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실렸다. 지구상에 등장한 10번째 반입자로, 스타 연구진이 기록을 자체 경신했다. 연구진은 더 무거운 반물질 발견을 위해 60억 개가 넘는 원자를 빛의 99.96%의 속도로 충돌시켰다.

연구진은 충돌 과정에서 나오는 입자들의 경로를 분석하여 22개의 후보 사건을 찾아냈고, 배경 잡음으로 인한 신호는 배제하고 최종적으로 16개의 반하이퍼수소(AHH)-4의 핵을 찾아냈다. AHH-4는 반양성자 1개, 반중성자 2개 그리고 특이한 반하이페론 1개로 구성된다.

▲ 오른쪽 그림은 금 원자끼리 충돌시키는 과정에서 탐지기에 포착되는 입자의 궤적을 보여준다. ⒸBNL

중이온가속기에서의 충돌은 초기 우주와 마찬가지로 물질과 반물질을 거의 같은 양으로 생성한다. 이 충돌에서 생성된 물질과 반물질의 특징을 비교하면, 우주가 물질로만 존재하게 된 비대칭성에 대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이에 착안, 연구진은 하이퍼수소와 반하이퍼수소의 수명을 비교하는 추가 실험도 진행했다. 하이퍼수소는 188피코초 후에 붕괴됐고, 반하이퍼수소는 170피코 초 후에 붕괴됐다. 하지만 오차 범위가 30피코초가 넘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두 반물질 사이의 비대칭성을 찾지는 못한 셈이다.

에밀 덕워스 미국 켄트주립대 박사과정생은 “어떤 의미에서는 대칭성이 여전히 작용한다는 점에 다소 안심이 됐다”며 “대칭성이 깨진 것을 본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의 많은 부분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후속 연구로 하이퍼수소-4 핵과 반하이퍼수소-4 핵의 질량 차이를 측정해 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권예슬 리포터
저작권자 2024-10-0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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