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공포’라는 말이 있다. 자신이 무언가에 실패하거나 패배할 가능성에 대해 극도의 공포를 느끼는 증상으로, 실패가 부정적 정서를 유발함으로써 생기는 일종의 외상성(traumatic) 효과다.
대학생의 실패에 대한 반응성을 연구한 국내 논문이 인용한 자료에 따르면 “실패공포는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자신을 평가절하하게 되는 경향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실패공포는 실패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라기보다는 실패 결과에 대한 평가, 사회적 시선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패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반응은 실패 이후 더 크게 성장하게 되는 ‘실패의 역설’을 간과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최근 심리학자들은 회복탄력성, 즉 실패나 역경에서 다시 일어나는 마음의 근력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대표적으로 ‘위대한 발명가’로 불리는 토마스 에디슨의 삶이 그랬듯이 실패는 또 다른 도전의 기회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많은 실패를 한, 하지만 혁신을 이끌어낸 그의 삶은 1847년 2월 11일에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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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두 번째 불을 발견하다
에디슨의 수많은 발명품 중 백열등은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꼽힌다. 알려진 대로 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발명품을 남긴 사람이다. 1,093개의 미국 특허가 에디슨의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비공식적으로는 2,332개를 발명했다고도 전해진다. 그런데도 백열등이 에디슨의 최고 업적으로 꼽히는 이유는 이것을 시작으로 전기에 필요한 모든 시스템을 구축해 ‘전기의 시대’를 열었기 때문이다.
에디슨이 필라멘트가 들어있는 백열등을 발명한 해는 1879년이다. 하지만 이에 앞서 영국의 과학자 험프리 데이비(Humphry Davy)는 1801년에 아크를 구현한 실험을 논문으로 발표하고, 1802년 왕립협회에서 시연했다. 아크등은 탄소 전극 두 개를 접촉시킨 상태로 전류를 흘려보내면 두 전극을 잇는 아크 플라즈마에서 일종의 인공번개와 같은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원리다. 촛불 4천여 개 정도의 밝은 빛을 내지만, 가정에서 사용하기에 너무 크고 설치가 복잡했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아크등은 상용화되었고, 이후 아크등을 뛰어넘는 백열등을 개발하려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대표적으로 헤르타 에어튼(Hertha Ayrton)은 아크등에서 발생하는 소음의 원인을 밝혔고, 다른 연구에 의해 아크의 발생 부위에 탄소 전극 소모를 줄이는 아크등이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크등은 실내용 전등으로 사용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 필요에 착안한 에디슨은 가장 효율적인 백열등과 가장 안정적인 백열등 작동 환경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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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의 시대를 열다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잘되지 않는 1만 가지 방법을 발견했을 뿐이다.”
에디슨이 남긴 어록 중 하나다. 실제로 백열등의 핵심 재료를 찾기 위해 에디슨은 13개월 동안 6천여 가지가 넘는 재료로 실험과 실패를 거듭한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에디슨은 진공구 안에서 45시간 가량 빛을 발하는 탄화 대나무 섬유를 발견했고, 1879년에 미국 뉴저지주 멘로 공원 연구실에서 대중적인 시연에도 성공했다. 이후 텅스텐 필라멘트가 개발되기 전까지 10여 년 동안 전 세계의 밤을 밝혔다.
또한, 에디슨은 지금의 전기 에너지 발전·송전·배전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고안했다. 백열등이 지속적으로 빛을 내기 위해서는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발전기의 개발이 필수 전제인 것을 포착한 선구안 덕이다. 백열등을 전기 시스템적인 차원에서 개발하고, 이것을 상업화하기 위해 효율성과 경제성 차원에서 접근한 선구안 역시 그를 위대한 발명가, 기업가로 부르는 이유다.
하지만 에디슨이 고안한 직렬방식의 전기 송전이 중앙에서 전기를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병렬 시스템을 개발한 웨스팅하우스(테슬라와 합병)에 밀렸다. 이때 그의 생애 흑역사라고 할만한 치졸한 방법까지 동원했지만,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 전력 공급회사 공개입찰에서 결국 웨스팅하우스에 패배하고 말았다. 오히려 이 박람회를 통해 교류전기의 안전성과 실용성이 더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에디슨발(發) 전기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이후에도 에디슨은 발명가로서 기업가로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고, 후대로부터 다양한 측면의 평가를 받는 삶을 살았다. 그럼에도 더 나은 세상을 열었던 그의 ‘빛나는 삶’이 끝난 1937년 10월 18일, 미국 전역에서 일제히 1분 동안 전깃불을 끄고 그를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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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의 업적, 새로운 시대에 맞춰 변하기 시작하다
한편, 19세기 최고의 발명품인 백열등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전기 사용량 가운데 5%만 빛을 내는 데 쓰고, 나머지 95%를 열에너지로 소모하는 백열등의 비효율성으로 인해 호주와 한국은 2013년까지, 유럽연합은 2012년까지 백열전구를 시장에서 퇴출시키기로 공식 선언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014년 1월부터 효율이 낮은 백열전구의 생산과 수입 및 판매를 전면 금지함으로써 한국의 등불을 밝혀온 지 127년 만에 완전히 퇴출됐다.
이어 에디슨의 나라 미국도 지난해 8월부터 백열전구의 생산·유통·수입을 금지하는 새로운 규칙을 시행하기 시작했다고 AP통신 보도했다. 외신 보도가 인용한 미국 에너지정보관리청(EIA)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0년 사이 조명의 대부분 또는 전부를 LED 전구로 사용한다고 답한 미국 가구의 비율은 4%에서 47%로 10배 이상 증가했다. 미국 에너지부는 LED는 전력 사용량이 적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데에 기여하고, 연간 약 30억 달러의 공공요금을 절약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처럼 에디슨의 도전과 실패가 연 전기의 시대는 새로운 시대를 만나 변하기 시작했다.
- 김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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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4-02-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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