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학자는 지구의 지난 시간을 번역한다.
빙하학자로 살아가는 것 중 가장 큰 혜택은 인간의 접근이 제한된 곳까지 무한히 들어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빙하는 눈이 녹지 않고 연속적으로 쌓일 수 있는 그린란드, 남극 그리고 고산에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연구라는 이유로 사람의 접근이 제한된 곳까지 정부 기관의 허가를 받아 가볼 수 있다. 나는 2023년 6월 한국 대표로 12개국이 참여하는 그린란드 심부 빙하 시추 현장(The East Greenland Ice-core Project, 이하 EGRIP)에 4주간 다녀왔다.
나는 지구의 과거를 연구하는 빙하학자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했지만,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극 지역 빙하나 고산 빙하를 이용하면 지난 100만 년 동안의 대기 중 온실기체 농도, 물 동위원소 그리고 먼지양의 변화와 같은 다양한 기후와 환경 자료를 복원할 수 있다. 빙하학자는 빙하에 기록된 자료들을 읽으며 과거 기후와 환경을 추측한다. 일종의 지구 언어 번역가인 셈인 것이다.
그린란드의 빙하
그린란드는 북극권에 위치한 지구에서 가장 큰 섬이다. 이 섬의 크기는 216만 ㎢로 한반도와 비교하자면 약 10배 정도 크다.
‘빙하’란 수백 년, 수천 년 이상 눈이 연속적으로 쌓여 형성된 얼음이 중력으로 지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을 일컫는다. 빙하는 그린란드 중앙부에서 가장자리로 흐르다가 가장자리에서 녹고 깨져 없어진다. 그래서 빙하는 무한히 자라는 것이 아니라 기후 조건이 유사하다면 빙하의 두께가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다.
그린란드의 80%는 빙하로 덮여 있는데 해안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빙하로 덮여 있다. 그린란드 빙하는 약 300만 년 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린란드 내부의 빙하 두께는 3,000m 이상이다. 이번 프로젝트의 최종목표는 그린란드 빙하 중 빠르게 흐르는 지역 중 하나인 북동 지역에서 2,670m 길이의 심부 빙하를 시추하는 것이다. 이 빙하를 이용해 지난 12만 년 동안의 과거 기후와 환경 데이터를 복원할 예정이다.
그린란드 빙하와 기후변화
우리가 시추 현장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그린란드 칸게를루수악(Kangerlussuaq)에서 미군 공군기 C-130을 타는 것이다. 그린란드는 기상이 안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모든 참가자가 시추 현장에 들어가기 최소 이틀 전 칸게를루수악에 도착해 대기하며 연구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여야 한다.
전 세계 시추 캠프 참여자들이 칸게를루수악에 모두 모였다. 참가자들은 시추 캠프에 입소하기 전 칸게를루수악의 대표 관광지인 러셀 빙하(Russell Glacier)에 갔다. 우리는 그린란드 빙하 끝자락인 러셀 빙하에 도착해 빙하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내 기준으로는 빙하로 들어가는 입구에 선 것이지만 빙하의 입장에서는 생을 마감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빙하를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빙하 조각을 손으로 만져보았다. 다시는 오지 못할 이 공간을 온몸으로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갑자기 천둥소리가 들리더니 빙하의 일부가 쾅 하고 떨어졌다. 깨어져 나오는 빙하를 직접 보자 EGRIP 사무실 앞에 붙여진 사진 한 장이 생각났다. 2003년에 촬영된 러셀 빙하의 모습이었다. 20년 전에는 이 곳의 대부분이 빙하로 덮여 있었는데 지금은 그때와 확연하게 달랐다. 지금은 20년 전에 비해 빙하의 많은 부분이 사라져있었다.
이는 기후 변화의 흔적이었다. 2022년 하와이 마우나로아에서 측정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 평균 농도는 약 418.56ppm으로 대기 중 이산화탄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0.0418% 밖에 되지 않았다. 이는 매우 작은 수치처럼 보이지만 이산화탄소는 온실가스로 적은 양으로도 지구 평균 온도를 높일 수 있다. 지난 약 65년 동안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100ppm 이상 상승했고 그 결과 세계기상기구(WMO) 발표(`23. 1월) 12.)에 따르면, 2022년 지구 평균 온도는 산업화 이전(1850~1900년)에 비해 1.15°C 도 상승했다고 한다. 이렇게 기후 변화는 지구 곳곳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중 하나가 바로 그린란드 빙하의 후퇴이다. 그린란드 빙하 후퇴 속도는 20년 전에 비해 5배 이상 증가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린란드 빙하가 모두 녹는다면 지구 평균 해수면이 지금에 비해 6~7m 가량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
나는 그린란드 빙하의 중심으로 들어가기 전, 생을 마감하는 빙하를 직접 보고야 말았다. 만약 우리가 지금처럼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한다면, 지구 평균 온도를 더욱 높여 그린란드 빙하 후퇴를 가속할 것이다. 외면하지 않아야 할 현실을 내 눈으로 직접 보고야 말았다.
- 극지연구소 신진화 연구원
- 저작권자 2023-12-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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