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길고 무더웠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시작됐다. 높고 파란 하늘과 맑은 날씨 그리고 곧 가로수와 산을 울긋불긋 물들일 단풍까지 이 계절이 반가운 이유는 많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봄과 가을의 길이가 짧아진 탓에 가을 정취를 오래 만끽하기를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가을이 서둘러 가기 전에 멋진 가을을 충분히 즐기는 방법으로 ‘과학적 시선’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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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하늘 공활하니 높고 구름 없어
파랗고 높은 하늘은 ‘가을’의 상징이다. 불청객인 안개와 미세먼지가 방해하지 않는다면 가을에는 가시거리가 20㎞ 이상 되는 날도 많다.
가을이면 유독 진한 파란하늘을 볼 수 있는 것은 습도가 낮아지면서 빛이 잘 산란되기 때문이다. 산란(scattering)은 직진하는 성질을 가진 빛이나 소리가 중간에 어떤 매질을 만나 여러 방향으로 퍼지는 현상을 말한다. 햇빛은 태양으로부터 지구 대기를 통과할 때 여러 작은 입자와 만나 상호작용을 한다. 습한 여름에는 대기 중에 수증기 입자 많아 태양빛을 흡수하고 빛의 산란을 방해한다. 반면 수증기 입자가 현저히 적어지는 가을에는 빨간·노란빛보다 파장이 짧은 파란빛이 더 잘 산란돼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
또한 가을하늘이 높아 보이는 이유는 기압의 영향 때문이다. 이 계절에 우리나라는 보통 건조한 이동성 고기압의 영향을 받는다. 고기압은 하강 기류를 발생시켜 더운 공기를 대기권 상층부로 밀어 올리고 무거운 찬공기가 내려와 안정적인 대기구조를 만든다. 이렇게 되면 수증기와 먼지 등 입자가 떠오르기 어렵고, 구름이 덜 만들어져 높은 가을하늘과 청명한 가을 풍경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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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이슬이 맺히는 ‘한로(寒露)’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은 1년을 태양의 황경(黃經)에 따라 24등분하여 계절을 구분해 왔다. 황경은 황도(黃道, 지구에서 보았을 때 태양이 1년 동안 하늘을 한 바퀴 도는 길)에 따라 움직인 각도를 말한다. 태양이 황도를 지나면서 일평균 황경은 0.9856° 가량 벌어지는데, 0° 시작점인 춘분을 기준으로 15° 간격으로 총 24개의 절기를 나눈다.
가을은 입추,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 등 6개 절기가 포함돼 있다. 이미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면서 입추부터 절기를 지났고, 오는 10월 8일은 이슬이 차가워진다는 ‘한로(寒露)’다.
태양이 황경 195도에 위치하는 이 시기는 낮과 밤의 온도차가 크고 공기가 서늘해지기 시작한다. 때문에 농경사회였던 예부터 이슬이 찬 공기와 만나 서리가 내리기 전 추수를 끝내려고 아주 분주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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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 단풍 들것네.” 단풍 보며 지구 환경도 생각해야
산림청이 ‘2023년도 가을 단풍 예측지도’를 발표했다. 예측지도에 따르면 올해 단풍 절정 시기는 10월 하순부터 11월 초로 예상된다. 지역과 수종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당단풍나무는 설악산(10월 23일)을 시작으로 10월 26일에 가장 붉은빛을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이어 신갈나무와 은행나무는 각각 26일과 28일에 절정에 이를 것으로 조사됐다.
한편 2009년부터 식물계절 현상을 관측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당단풍나무의 단풍 드는 시기가 매년 약 0.33일씩 늦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올해 역시 전년 대비 2일 정도 늦어진다고 예측됐는데, 이런 현상의 원인은 7월~9월의 평균기온 상승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지각 단풍’뿐만 아니라 단풍의 색이 탁해지는 현상도 지구온난화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해 강수량이 많아지고 일조량이 낮아지면서 나뭇잎을 물들이는 안토시아닌(붉은색), 카로티노이드(노란색), 타닌(갈색)이 충분히 생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단풍이 늦어지면서 나무의 휴면 기간이 짧아지는 것도 문제다. 나무는 단풍으로 물들었던 잎들을 모두 떨어뜨리고 추운 겨울 동안 긴 잠을 자면서 에너지를 비축한다. 그래야 새롭게 맞는 봄부터 활기찬 식생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을·겨울이 짧아지고 봄이 빨리 되돌아오면 나무는 충분한 휴면기를 가질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순환이 계속되면 결국 싱싱한 초록잎과 화려한 단풍을 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탄소 흡수 및 산소 배출 순환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해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어려워진다.
올해 단풍 나들이 계획이 있다면 오색 찬연한 단풍 속에 담긴 위기의 신호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 김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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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3-10-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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