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뇌의 모세혈관에서 스며 나온 피는 다른 인체 조직과 달리 뇌세포와 직접 접촉할 수 없도록 돼 있다.
뇌동맥을 통해 뇌로 흐르는 피가 뇌척수액으로 바뀌어 뇌와 척수의 신경세포에 선택적으로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한다.
핏 속의 세균이나 병원균 같은 이물질이 뇌로 유입되는 것을 차단하는 이 ‘혈액-뇌장벽(Blood-Brain-Barrier, BBB)’은 뇌를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질병 치료를 위한 약물 주입도 막는다.
이 때문에 과학자들은 어떻게 이 장벽을 뚫고 약물을 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해 오랫동안 숙고해 왔다.
최근 미국 웨스트버지니아대(WVU) 연구팀은 제105차 북미방사선학회(RSNA) 연례학술대회에서 집중 초음파(focused ultrasound)가 이 혈액-뇌장벽을 여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방법으로서, 알츠하이머병 치료에 활용될 수 있다는 선도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저강도 집중 초음파가 뇌장벽 열어
알츠하이머병은 치매를 일으키는 가장 흔한 원인으로서 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효과적인 치료법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동물 대상 연구에 따르면 MRI의 유도 아래 전달된 저강도 집중 초음파(LIFU) 펄스가 혈액-뇌장벽을 가역적으로 열어 표적 약물과 줄기세포 전달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연구팀은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WVU 록펠러 신경과학연구소 알리 레자이(Ali Rezai) 소장이 이끄는 임상시험에서 1년 이상 인체 대상 LIFU 효과를 연구해 왔다.
이들은 새로운 연구를 위해 61세와 72세, 73세 등 여성 환자 세 명을 대상으로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특정 뇌 부위에 LIFU를 방사했다. 이 환자들은 알츠하이머병 초기 단계로, 뇌에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된 비정상적인 단백질 덩어리인 아밀로이드-플라크가 쌓여있었다.
대상 환자들은 2주 간격으로 3회 연속 치료를 받았다. 연구팀은 환자들에게서 출혈이나 감염, 부종 혹은 체액이 축적되는지를 살펴보았다.
치료 뒤의 뇌 MRI 촬영 결과, 치료 직후 목표 영역 안에 있는 혈액-뇌장벽이 개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장벽은 각 표적에서 24시간 안에 다시 폐쇄되었다.

“어떤 부작용 없이 성공적으로 재현”
논문 공저자로 WVU 부교수 겸 ‘임상 및 중개 과학 연구소’ 연구원인 라시 메타(Rashi Mehta) 교수는 “시험 치료 결과가 유망하다”고 말하고, “우리는 매우 정밀한 방법으로 혈액-뇌장벽을 열고 24시간 안에 장벽이 닫히는 것을 기록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 방법을 어떤 부작용도 없이 환자들에게 성공적으로 재현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MRI-유도 LIFU는 환자가 MRI 스캐너에 자리 잡게 한 뒤 머리에 헬멧을 씌우고 집중 초음파를 방사하게 된다.
헬멧에는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는 1000개 이상의 초음파 변환기가 장착돼 있으며, 각 변환기는 뇌의 특정 영역을 대상으로 초음파를 전달한다.
환자들에게는 미세 기포로 구성된 조영제를 주입해, 초음파가 목표 영역에 도달하면 미세 기포가 진동하거나 크기와 모양이 바뀌게 된다.
메타 교수는 “헬멧의 변환기가 뇌의 특정 위치에 초점을 맞춘 에너지를 전달한다”며, “미세 기포의 진동이 표적 부위의 모세혈관에 기계적 효과를 일으켜 혈액-뇌장벽을 일시적으로 느슨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뇌에는 신경세포 사이에서 그물 구조를 이루고 있는 신경아교세포(glia cell)가 모세혈관을 조밀하게 둘러싸고 있어 혈액 등이 통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장벽 역할을 한다.

“안전성 확보 뒤 치료 약물 주입 예정”
이번 실험 연구에 따르면 LIFU는 치료약을 뇌로 전달해 치료 효과를 향상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메타 교수는 동물에서의 혈액-뇌장벽 개방은 약물 없이도 긍정적인 효과를 보였다고 말했다. 이 효과는 뇌에서 독성물질을 씻어내는 뇌척수액의 흐름을 증가시키거나 개방에 의한 면역반응 촉진 혹은 이 두 가지의 조합에 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연구팀은 지금까지 기술의 안전성에 중점을 두었으나, 앞으로는 LIFU의 치료 효과에 대해 더욱 깊이 연구할 계획이다.
메타 교수는 “알츠하이머병과 관련해 기억력과 증상 개선이 되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더 많은 환자를 치료하고 장기적인 효과를 살펴보고 싶다”며, “안전성이 더욱 명확해지면 이 방법을 활용해 치료 약물을 주입해 보겠다”고 밝혔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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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9-12-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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