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의학적 검사 대신 핏 속 단백질로 종합적인 ‘액체 건강 검진(liquid health check)’을 제공하는 시대가 곧 도래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과 미국 연구진은 의학저널 ‘네이처 메디신’(Nature Medicine) 2일 자에 발표한 개념 증명 논문에서, 이 간편한 방법으로 앞으로 개인의 건강 평가와 다양한 질병 발생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영국 국민건강 서비스의 건강 검진 및 건강 증진 프로그램(UK National Health Service's Health Check and Healthier You programmes)과 같은 예방 의학 프로그램은 국민의 건강을 개선하고 질병 발생 위험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보건 전략은 저렴하고 비용 대비 효과가 높은 데다 확장 가능하지만, 각 개인의 건강과 질병 위험 정보를 활용하면 한층 더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다.
건강관리에 ‘빅데이터’ 기법을 도입해 응용하면 세부적이고 대규모의 데이터세트를 평가하고 분석할 수 있게 됨으로써 건강과 질병 발생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예방과 임상 관리에 대한 계층화된 접근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핏 속으로 분비되거나 누출된 단백질 포착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미국 캘리포니아대(샌프란시스코) 및 미국의 생명공학 회사 소마로직(SomaLogic)사가 참여한 국제공동연구팀은 이번 연구에서, 단일 혈액검사로 채취한 핏 속의 단백질을 대규모로 측정하면 개인 건강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다양한 여러 질병 및 위험 요인을 예측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우리 몸에는 서로 다른 약 3만 개의 단백질이 포함돼 있고, 이 단백질들은 DNA에 의해 암호화돼 생물학적 과정을 조절한다.
이 단백질 가운데 일부, 예를 들면 호르몬이나 면역반응 강도 및 지속기간을 조절하는 사이토카인 및 성장 인자들은 의도적으로 분비돼 혈류로 유입된 뒤 건강한 상태 혹은 질병 상태에서의 생물학적 과정을 조율한다.
또 다른 단백질들은 세포 손상이나 세포 사망에 의해 혈류로 누출된다. 이렇게 분비되거나 혹은 누출된 단백질들은 모두 신체 건강 상태와 질병 위험 정보를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표적 단백질과 결합하는 DNA 단편 활용
연구팀은 약 1만 7000명이 참여한 5개의 관찰 집단(코호트)을 기반으로 한 개념 증명(proof-of-concept) 연구에서 참가자들로부터 채취한 혈장(plasma) 속의 단백질 5000개를 분석했다.
혈장은 혈액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성분으로, 적혈구와 백혈구 및 혈소판을 제거한 뒤에 남아있는 투명한 액체다. 분석 결과 약 8500만 개의 단백질이 측정됐다.
연구팀이 사용한 기술에는 표적 단백질과 결합하는 앱타머(aptamers )로 알려진 DNA 단편(fragments)을 활용하는 방법이 포함돼 있다. 일반적으로 특정 DNA 단편들만이 특정 단백질들과 결합하는데, 이는 특정한 열쇠만이 특정 자물쇠에 맞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연구팀은 기존의 유전자 시퀀싱 기술을 사용해 앱타머를 검색하고 어떤 단백질이 얼마만큼의 농도로 존재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어 통계적 방법과 기계학습 기술을 사용해 결과를 분석하고 예측 모델을 개발했다. 이 예측 모델은 예를 들면 피에 어떤 패턴의 단백질이 포함돼 있으면 당뇨병 발병 위험이 높다고 예상하는 방식이다.
이 예측 모델은 간 지방과 신장 기능, 내장 지방 수준, 알코올 소비, 신체활동과 흡연 그리고 2형 당뇨병과 심혈관질환 위험을 포함한 수많은 건강 상태를 나타낼 수 있다.
예측 모델의 정확도는 다양했다. 체지방률 같은 경우는 높은 예측력을 보여준 반면, 심혈관 질환 위험 같은 것은 보통 수준의 예측력만을 나타냈다.
연구팀은 자신들이 개발한 단백질-기반 모델들이 모두 전통적인 위험 요인에 기초한 모델들보다 더 나은 예측자이거나, 전통적인 테스트에 비해 더욱 편리하고 저렴한 대안을 구축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진단되지 않은 질병 징후도 포착”
많은 단백질들은 여러 가지 건강 상태나 조건과 관련돼 있다. 예를 들면 식욕과 신진대사를 조절하는 렙틴은 체지방과 내장 지방, 신체 활동 및 체력의 비율을 나타내는 예측 모델로서 유익하다.
게놈 시퀀싱과 개체의 단백질을 깊이 연구하는 이른바 ‘단백질체학(proteomics)’의 차이점은, 게놈은 고정된 반면 단백질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개인이 더 비만해지거나 신체적으로 덜 활동적이 되거나 흡연을 하게 되면 그에 따라 단백질체가 변화되므로, 단백질을 통해 개인의 건강 상태 변화를 평생 동안 추적할 수 있는 것이다.
케임브리지대 MRC 역학 분과의 클라우디아 랑겐버그(Claudia Langenberg) 박사는 “핏 속을 순환하는 단백질들은 우리의 유전자 구성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아직 진단되지 않은 질병의 존재나 작용 같은 다른 많은 요인들의 징후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단백질이 현재와 미래의 건강 상태를 나타내는 좋은 지표이자, 상이하고 다양한 질병에 대한 임상적 예측을 증진시킬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라고 덧붙였다.
‘개인화 건강검진의 새로운 패러다임’
연구를 이끈 소마로직 사의 최고 의학책임자인 스티븐 윌리엄스(Stephen Williams) 박사는 “혈장 단백질 패턴만으로도 광범위하고 다양한 일상적이고 중요한 건강 문제를 충실하게 나타낼 수 있다는 점이 놀랍지만 우리는 이를 빙산의 일각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윌리엄스 박사는 “우리는 실험 시설인 소마시그널(SomaSignal) 파이프라인에서 수백 건 이상의 테스트를 수행했다”며, “대규모 단백질 스캐닝은 개인화 건강 평가를 위한 유일한 정보 출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원리-증명 단계를 보여주고 있으나, 앞으로 건강 서비스 기관이 단일 혈액 표본으로부터 추출한 일련의 단백질 모델을 사용해 일상적인 종합 건강 평가를 제공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공동으로 연구를 이끈 캘리포니아대(샌프란시스코) 피커 갠츠(Peter Ganz) 석학교수는 “이번의 개념 증명 연구는 혈액 단백질 측정이 수많은 의료 전문 영역을 포괄하며 환자와 의료 서비스 제공자들에게 실행 가능한 건강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준다”고 강조했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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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9-12-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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