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미 대선에서 민주당의 마이클 듀카키스(Micheal Dukakis)는 강력한 당선 후보였다. 당시 상대였던 공화당의 조지 부시(George Bush)와 비교할 때 듀카키스의 지지율은 상당히 높았고 당선이 유력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부시 진영의 네거티브 전략(상대방의 약점을 공격하거나 폭로하여 자신에 대한 지지를 높이려는 움직임)은 이 판도를 뒤집었다.
부시는 방송 매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그 중 하나가 듀카키스가 미국의 국방정책을 지지하지 않는다고 주장한 광고 영상이다. 영상 말미에 ‘미국은 이런 위험을 감수할 수 없다(America can’t afford that risk)’라고 강력하게 말하는 이 광고로 듀카키스의 지지율은 크게 떨어진다.
하지만 문제는 부시 측이 내보낸 광고 내용에 전혀 근거가 없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방송사 ABC(American Broadcasting Company)는 대선 직전에 해당 광고를 중지하고 사실관계 확인에 나섰지만 이미 전세는 뒤집힌 후였다.
팩트체크 왜 중요한가
24일 오후, 대전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동에서 JTBC 김필규 기자가 ‘팩트체크로 세상읽기’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김 기자는 앞서 소개한 미 대선 사례로 이야기를 시작하며 정확하지 않은 정보가 ‘팩트’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갔을 때 생기는 파급력은 실로 강력하다고 강조한다.
김필규 기자는 대선과 같은 커다란 사건들을 거치며 미국 언론의 팩트체크가 정교해졌다고 말하며, 미국의 3대 펙트체커인 팩트체크.org(FactCheck.org), 폴리티팩트(PolitiFact), 워싱턴 포스트의 팩트체커(The Washington Post Fact Checker)를 소개했다.
팩트체크.org는 2003년 펜실베니아 대학에서 만든 비영리 웹사이트이며 퓰리처상을 받은 폴리티팩트는 2007년 미국 신문사 탐파 베이 타임즈(Tampa Bay Times)의 프로젝트로 시작되었다. 워싱턴 포스트의 팩트체커 역시 워싱턴 포스트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7년 만들어졌으며 2008년 미국 대선에서 팩트체크 기능을 했다.
김 기자는 “폴리티팩트는 정치인 발언의 참과 거짓을 측정하여 게이지 형태로 시각화해 제시하며 워싱턴 포스트의 팩트체커는 피노키오 그림을 통해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지를 표현한다”고 설명하며 “워싱턴 포스트는 거짓의 정도에 따라 한 개에서 네 개까지 피노키오 마크를 부여하는데, 피노키오가 많아질수록 거짓 발언에 해당한다. 드물게 진실인 경우 제페토(피노키오의 할아버지)가 주어진다”라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팩트체크 저널리즘 구현하기
김필규 기자는 JTBC 뉴스룸이 시작된 2014년 9월부터 2016년 7월까지 뉴스룸 내의 ‘팩트체크’ 코너를 단독으로 맡아 진행했고, 현재는 JTBC 오대영 기자가 김 기자의 뒤를 이어 팩트체커 역할을 하고 있다.
김 기자는 “대한민국에서 팩트체크를 위해 전문가나 유명인의 주장에 반기를 드는 것이 가능할지가 의문이었다”라며 코너를 처음 시작할 때를 회상했다.
이어 그는 “분량과 방식은 자유롭게 하고 매일 한 꼭지씩 내보낼 것을 기본 원칙으로 두고 시작했다”라고 밝히며 “진행 방식은 손석희 앵커와 함께 대화형으로 구성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용이한 구성과 탄력적 시간 활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월요일에서 목요일까지 진행되는 JTBC 뉴스룸의 평일 뉴스에서 김필규 기자는 약 2년 동안 346회의 팩트체크를 진행했다. 그는 “매일 한 꼭지씩 방송이 나가다 보니 시청자들에게 ‘팩트체크’라는 이름이 각인될 수 있었고, 자료 또한 모여서 아카이브가 됐다”라고 말했다. 그리하여 김 기자가 진행한 팩트체크는 책 시리즈로도 발간됐다.
이어 그는 팩트체크 코너에서 지적한 사례를 소개했다.
그 중 하나는 2014년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다. 그는 ‘35세 비정규직 노동자의 경우 현재 2년인 계약 기간을 4년으로 연장할 수 있다’라는 항목이 논란이 됐던 상황에 대해 “당시 고용노동부 장관은 ‘기간제 근로자의 82% 이상이 계약 기간 연장을 요구했다’고 밝혔다”고 지적했다.
김 기자는 정말 ‘기간제 근로자들이 4년 동안 계약직으로 머물기를 원했는지’에 대한 팩트체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해당 조항이 ‘장그래 방지법’으로 불리는 것이 옳은 것인가 대한 논의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계약직 근로자들이 계약 기간 연장을 원한다고 응답한 설문지를 받아보니 문구 자체에 정규직 전환에 대한 선택은 전혀 없었다”며 “정규직으로의 전환 가능성이 없는 계약직 근로자들에게 계약기간 연장에 대한 답변은 당연하게 찬성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설문조사에서의 팩트체크는 어떤 문항이 제시되었는지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기자는 계약직 직장인의 설움을 그린 만화 <미생>을 그린 윤태호 작가도 인터뷰했다.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가 ‘장그래 방지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는 김 기자는 “윤태호 작가로부터 ‘그들이 장그래를 이해했다고 보기 힘들다. 고통을 연장하는 것을 기회의 연장이라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라는 답변을 얻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필규 기자에게 팩트체크란
김필규 기자는 뉴스룸에서 팩트체크 코너를 진행하면서 했던 고민으로 ‘균형’에 대한 문제를 언급했다. 그는 1988년 미국 대선에서 ‘팩트체크’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한 것에 대한 원인 중 하나는 기자들이 팩트체크에 있어 기계적인 균형을 맞추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김 기자는 “특정 후보가 거짓말을 굉장히 많이 하는 상황에서도 팩트체크는 균형을 맞추어 이뤄져야 한다는 사고는 팩트체크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게 만든다”며 “우리나라도 저널리즘의 잣대로 집중적인 팩트체크를 할 수 있는 환경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팩트체크는 보통 생각하는 기자들이 하는 일과는 조금 다를 수 있다”라고 말하며 “단독이나 특종을 쫓아 발로 뛰기보다는 주로 책상에 앉아 일을 하기 때문에 어쩌면 한 걸음 뒤쳐진 뉴스라고 보여질 수 있지만 그만큼 한 걸음 더 들어가는 매력이 있다”고 덧붙였다.
- 최혜원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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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5-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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