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타임즈 로고

생명과학·의학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2015-09-16

청결한 환경이 알레르기 유발? 벨기에 연구진, '위생가설' 실험으로 뒷받침

  • 콘텐츠 폰트 사이즈 조절

    글자크기 설정

  • 프린트출력하기

비염을 앓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알레르기성 비염의 진료인원이 가장 많은 달이 9월인 것으로 밝혀졌다. 비염 진료인원은 2010년의 약 560만명에서 2014년에는 약 635만명으로 5년 전에 비해 13.2% 증가했으며 진료비 역시 5년 전보다 3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위생가설’을 뒷받침하는 연구결과들이 속속 발표되고 있어 주목을 끈다. 위생가설이란 알레르기 질환의 증가 원인이 너무 청결한 위생 상태에서 생활하는 현대적인 도시 환경 탓이라고 보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소나 돼지 등과 함께 생활하는 후진국 농촌 아이들은 선진국에 사는 도시 아이들보다 알레르기 질환에 덜 걸린다. 또 집에서 애완동물을 기르는 아이들일수록 알레르기 발생률이 낮다.

서독과 동독이 통일된 후 독일의 에리카 무티스라는 의사는 깨끗한 환경에서 자란 서독 어린이와 상대적으로 지저분한 환경에서 자란 동독 어린이들의 알레르기 질환 발생 빈도를 비교했다. 그 결과 예상과는 달리 서독의 어린이들이 천식이나 알레르기 비염, 아토피 피부염 등의 질환에 훨씬 더 많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나 돼지 등을 키우는 농장의 더러운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일수록 알레르기 질환에 덜 걸리는 메커니즘이 벨기에 연구진에 의해 밝혀졌다. ⓒ morgueFile free photo
소나 돼지 등을 키우는 농장의 더러운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일수록 알레르기 질환에 덜 걸리는 메커니즘이 벨기에 연구진에 의해 밝혀졌다. ⓒ morgueFile free photo

예전에 비해 기생충에 감염된 사람들이 훨씬 적은 것도 위생가설을 설명하는 요인 중 하나다. 실제로 에콰도르나 베네수엘라처럼 기생충이 많은 국가에서는 알레르기 환자가 적은 반면 기생충이 박멸된 선진국일수록 알레르기 질환이 많다.

브라질 해안의 어촌 마을인 ‘콘데(Conde)’에서 행해진 존스홉킨스 대학 연구진의 실험결과는 위생가설을 설명하는 좋은 예다. 그 마을은 주민들의 약 85%가 ‘만손주혈흡충’이라는 기생충에 감염되어 있을 만큼 기생충이 만연한 곳이다. 그런데 연구진이 콘데 주민들에게 기생충약을 투여하여 기생충을 제거하자 천식과 알레르기 증상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

국가에 따라 진단율 다르다는 반대 의견 있어

알레르기 질환뿐만 아니라 알츠하이머병, 우울증, 제1형 당뇨병이나 크론병 같은 자가면역질환도 위생가설의 영향을 받는다. 알츠하이머병은 위생, 전염성 질병, 도시화 수치 등의 요인에 따라 발병률이 국가 간에 40% 이상 차이가 나며, 우울증의 경우 토양 속에서 서식하는 한 박테리아 종류가 치유 기능을 가지고 있다. 소아당뇨병으로 불렸던 제1형 당뇨병이나 크론병 같은 자가면역질환은 기생충의 감염이 발병률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위생가설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도 만만찮다. 알레르기 질환의 진단율이 문화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 좋은 예다. 예를 들어 인도의 의사들은 미국의 대형병원 의사들보다 천식 진단을 내리는 비율이 낮으므로, 개발도상국의 천식 유병률이 선진국보다 낮다는 현상을 설명하는 위생가설의 무의미하다는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언스’지 9월 5일자에 발표된 벨기에 연구진의 연구결과는 위생가설 이면에 존재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겐트대학과 플랑드르생명공학연구소 소속의 연구진이 발표한 이 연구결과에 의하면, 소의 비료나 사료 등에서 나오는 죽은 박테리아의 파편이 사이토카인이라는 염증유발성 입자를 만들어 폐의 상피세포를 안정시킴으로써 천식에 대한 면역력이 높아진다는 것. 즉, 폐의 상피세포에 의해 만들어지는 효소가 천식의 염증 반응을 줄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주장이다.

연구진은 소의 비료나 사료에서 나오는 죽은 박테리아의 파편을 실험쥐의 코에 2주에 한 번씩 넣은 결과 천식이 줄어든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효모균이나 농장의 먼지를 실험쥐에게 반복적으로 노출시켰을 때도 유사한 연구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이 연구결과는 농장의 죽은 박테리아 파편이나 먼지 등이 면역체계의 T세포에 직접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폐나 기도의 상피세포의 차원에서 면역체계를 발동시킨다는 새로운 사실을 밝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위생가설 이용한 치료약 시판

지난해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진이 애완동물을 기르는 가정의 아이들일수록 알레르기 질환에 덜 걸리는 이유를 알아냈다. 연구진이 애완견을 키우는 집에서 채취한 먼지 섞인 물과 애완견을 키우지 않는 집에서 채취한 먼지 섞인 물을 각각 실험쥐들에게 먹인 결과, 애완견 먼지를 마신 실험쥐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

연구진은 뒤 실험쥐 그룹 간의 차이를 조사했으며, 그 결과 애완견의 집먼지를 먹은 쥐들은 위장관에서 ‘L. johnsonii’라는 세균이 다량으로 검출됐다. 이 세균을 다른 실험쥐들에게 먹였더니 알레르기 반응이 감소하며, 천식을 유발하는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천식이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위생가설을 이용해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하는 약도 시판되고 있다. 크론병 환자들을 위해 미국의 ‘코로나도’ 사와 독일의 ‘닥터팔크’ 사에서 만든 돼지 편충 알이 바로 그것. 환자는 2500~6500개의 돼지 편충알을 넣은 약을 2주마다 한 번씩 10회 복용하면 된다.

크론병은 자신의 면역계가 자기 몸의 장 세포를 공격해 끊임없이 염증을 만들어내는 질환으로서, 수술이나 스테로이드로 염증을 완화시키는 방법 외에 별다른 완치 방법이 없다. 그러나 돼지 편충 알이 몸속에서 부화하면 면역계가 이를 공격하는 데 역량을 집중함으로써 크론병이 낫게 된다.

기생충을 일부러 몸속에 삽입한다고 해서 염려할 필요는 없다. 돼지에서 번식하는 돼지 편충은 인체에 들어올 경우 잘 적응하지 못하고 2주 이내에 죽어서 몸 밖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돼지 편충이 사라져도 길들여진 면역계는 다시 장 세포를 공격하지 않아 크론병이 완치되는 원리다.

이외에도 기생충을 이용해 알레르기 질환이나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앞으로 위생가설의 정확한 메커니즘을 밝히는 연구결과가 더 많이 쌓일수록 이 같은 치료약 개발도 더욱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성규 객원편집위원
yess01@hanmail.net
저작권자 2015-09-16 ⓒ ScienceTimes

태그(Tag)

관련기사

목록으로
연재 보러가기 사이언스 타임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확인해보세요!

인기 뉴스 TOP 10

속보 뉴스

ADD : 06130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7길 22, 4~5층(역삼동, 과학기술회관 2관) 한국과학창의재단
TEL : (02)555 - 0701 / 시스템 문의 : (02) 6671 - 9304 / FAX : (02)555 - 235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아00340 / 등록일 : 2007년 3월 26일 / 발행인 : 정우성 / 편집인 : 윤승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승재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모든 사이트의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가치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