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학습과 기억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또다른 새 연구가 발표됐다.
미국 존스홉킨스의대 연구진은 쥐 연구를 통해 잠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학습과 기억을 담당하는 뇌세포를 재보정함으로써 학습한 내용을 더욱 ‘공고하게 하고’ 이튿날 깨어났을 때 이를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이론을 더욱 굳히는 증거를 찾아냈다.
이들 연구진은 또한 재보정(recalibration) 과정을 관장하는 몇 가지 중요한 분자들뿐 아니라 수면 부족과 수면 장애 및 수면제가 이 재보정 과정을 방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연구를 주도한 그레이엄 디어링(Graham Diering) 박사 후 과정 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실험용 쥐와 인간의 뇌가 보정 전의 수많은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층 진전시켰다”며, “잠을 자지 않거나 잠 자는 동안의 보정이 없다면 기억은 손실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 3일자 온라인판에 발표됐다.
뉴런, 최대부하 상태 되면 학습과 기억력 손상
디어링 박사는 현재 과학계에서는 학습과 관련한 정보가 뇌 속 뉴런 사이의 연결 조직인 신경 접합부(시냅스)에 ‘들어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시냅스의 송신부 쪽에서 볼 때 신경전달물질로 불리는 신호 분자는 뇌 세포가 활성화될 때 분비되고, 분비된 신호분자들은 수신부 쪽의 수용체 단백질에 의해 포착돼 ‘메시지’를 전달한다. 동물실험 결과를 보면 정보수신 뉴런의 시냅스들은 수용체 단백질을 보태거나 제거함으로써 신호를 전환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수용체 단백질을 강화하거나 약화시킴으로써 수신 뉴런들이 가까이에 있는 뉴런들의 신호를 더 많이 받거나 덜 받게 된다.
과학자들은 기억들이 이 시냅스 변화를 통해 부호화된다고 믿고 있다. 디어링 박사는 쥐나 다른 동물들이 깨어있을 때 뇌 전체의 시냅스들은 더욱 강화되고 시스템 가동을 최대로 끌어올리려 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에는 걸림돌이 있다고 지적한다. 뉴런들이 최대 부하상태로 끊임 없이 가동되면 정보 전달능력을 잃고 학습과 기억도 손상을 받게 된다는 것.
살아있는 동물에서의 ‘스케일링 다운’ 최초 증거
뉴런들이 통상 최대로 가동되지 않는 한 가지 이유는 실험실에서 성장시킨 뉴런을 통한 연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는 항상성(恒常性) 규모의 축소(scaling down)로 알려진, 신경세포 네트워크의 시냅스들을 균등하게 조금 약화시킨 과정으로서 상대적인 힘은 그대로 남겨두고 학습과 기억 형성을 지속되게 한다.
디어링 박사는 이 과정이 잠자는 포유류에서 일어나는지의 여부를 알기 위해 학습과 기억을 관장하는 쥐의 해마와 대뇌피질 영역에 주목했다. 잠을 자거나 깨어있는 쥐의 수신 시냅스에서 채취한 단백질을 정제해 실험실에서 키운 세포에서 스케일링 다운이 진행되는 동안 같은 변화가 나타나는지를 관찰했다.
그 결과 잠 자는 쥐에서의 수용체 단백질 수치가 깨어있던 쥐들에 비해 20% 정도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논문 제1저자의 한 사람인 리처드 휴거니어(Richard Huganir) 신경과학과 교수는 “이는 살아있는 동물에서의 스케일링 다운에 대한 최초의 증거”라며, “시냅스들이 매 12시간 정도마다 쥐의 뇌 전체에서 재구성된다는 점을 시사하는 매우 놀라운 일”이라고 말했다.
수용체 단백질 수치, 깨어있는 쥐에서 250% 더 높아
연구팀은 어떤 분자가 이런 현상을 일으키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Homer1a라는 단백질에 관심을 돌렸다. 이 단백질은 연구팀의 일원인 신경과학과 폴 월리(Paul Worley) 교수가 1997년에 발견한 것이다. 연구 결과 Homer1a는 잠과 각성을 조절하는 한편, 실험실에서 키운 뉴런의 스케일링 다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디어링 박사는 시냅스 단백질에 대한 이전의 분석을 다시 반복해 Homer1a의 수치가 깨어있는 쥐에서보다 잠 자는 쥐의 시냅스에서 무려 250%나 더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아울러 Homer1a가 결여된 유전자 조작 쥐에서는 이전과 같이 잠과 관련된 시냅스 수용체 단백질 감소 현상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Homer1a가 현재 쥐가 잠을 자고 있는지 깨어있는지를 어떻게 감지하는가를 분류하기 위해 뇌를 자극하고 각성시키는 신경전달물질인 노르아드레날린을 관찰했다. 그 결과 노르아드레날린 수치가 높으면 Homer1a가 시냅스로부터 떨어져 있고, 반면 수치가 낮으면 시냅스로 모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카페인은 잠 유발하는 아데노신 활동 직접 방해
또 Homer1a의 위치가 잠과 관계가 있는지를 테스트하기 위해 쥐들을 낯선 우리 안에 네 시간 동안 더 넣어두고 깨어있게 했다. 그러자 몇몇 쥐들은 2시간반 동안 ‘복구 수면(recovery sleep)’을 취했다. 예상했던 대로 수신 시냅스에서의 Homer1a 수치는 복구 수면을 취한 쥐들보다 잠을 빼앗긴 쥐들에게서 훨씬 높았다. 이것은 Homer1a가 시간대가 아닌 동물들의 ‘수면 요구(sleep need)’에 민감하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게 디어링 박사의 설명이다.
수면 요구는 동물이 깨어있을 때 잠을 유발하는 뇌 속 화학물질인 아데노신에 의해 조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페인은 아데노신의 활동을 직접 방해한다. 수면을 빼앗긴 쥐에게 아데노신을 차단하는 약을 투여하면 Homer1a 수치가 시냅스에서 더 이상 증가하지 않았다.
휴거니어 교수는 “우리는 Homer1a가 일종의 교통경찰 같다고 생각한다”며, “Homer1a는 노르아드레날린과 아데노신 수치를 평가해 뇌가 스케일링 다운에 들어갈 만큼 충분히 고요해 졌는지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잠을 자야만 생각 명확해져”
연구팀은 잠 자는 동안의 스케일링 다운이 학습과 기억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가정에 대한 최종 테스트로서 스케일링 다운이 없는 상태에서 쥐의 학습 능력을 시험해 봤다. 각각의 쥐들은 낯선 장소에 놓여지고 잠에서 깨었을 때와 잠 자기 바로 전에 중간 정도의 전기 자극을 주었다. 이어 몇몇 쥐들에게는 스케일링 다운을 방해하는 약을 투여했다.
디어링 박사는 “충격에 대한 기억은 시냅스 스케일링 다운이 되지 않은 약 먹은 쥐들에게서 더 강할 것으로 생각했으나 쥐들에게 다른 모든 종류의 기억들이 강하게 남아있어서 혼란스러워 하고 그들이 놓였던 두 영역을 쉽게 구별하지 못 했다”며, “이것은 ‘잠을 자는 것’(sleeping on it)이 실제로 생각을 명확하게 해준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고 말했다.
그는 “최종적인 결론은 잠은 실제로 뇌가 작동하지 않는 쉬는 시간이 아니라 잠을 잘 때 오히려뇌가 해야 하는 일이 많으며, 선진국에 산다는 우리는 그런 사실을 알지 못 하고 자신을 속이고 있다”고 말했다.
“수면제류, 학습과 기억력 방해”
휴거니어 교수는 잠은 여전히 큰 미스터리라며, “이번 연구에서 우리는 잠을 자는 동안 뇌의 두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을 조사했으나 몸 전체의 다른 영역들에서도 똑같이 중요한 과정들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수면 장애 혹은 알츠하이머 치매와 자폐증 같이 잠을 방해하는 다른 질환들이 학습과 기억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더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휴거니어 교수는 진정제와 근육이완제, 수면보조제로 처방되는 벤조디아자핀이나 다른 약들은 스케일링 다운을 막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비록 실험은 아직 안됐지만 학습과 기억력을 방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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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2-0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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