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은 살아가면서 환경에 적응하고 발전해나간다.
이 과정을 진화(evolution)라고 하는데 그동안 다윈을 비롯한 과학자들은 이 진화 과정이 이미 정해져 있어 예정된 수순에 따라 생물이 진화하고 있다고 판단해왔다.
이에 따라 박물관에서 배포하고 있는 인류의 진화과정과 관련된 그림들을 보면 침팬지가 침팬지와 사람의 중간 단계인 호미니드(hominids)로 발전하고, 호미니드는 다시 현생 인류(homo sapience)로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고대 철학이 21세기에 영향
그리고 이런 그림과 삽화들이 박물관은 물론 광고판, 사람들의 티셔츠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인쇄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과학자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불만을 제기한 사람들은 스페인 마드리드 국립과학박물관(MNCN)의 안토니오 가르시아-발데카사스(Antonio García-Valdecasas) 교수 등 3명의 생물학자들이다.
이들은 5일 비영리 연구 매체인 ‘더 컨버세이션’ 지를 통해 인류를 비롯 생물 진화를 도식적으로 보여주는 이런 그림들이 진화론을 잘못 표현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대중의 심각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배포를 중지해줄 것을 촉구했다.
이들 설명에 의하면 진화론에 대한 오해의 역사는 찰스 다윈이 처음으로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을 출간한 185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1월 24일 대중에게 유가로 배포된 이 저서는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통한 진화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생명과 종의 기원은 물론 생물 진화에 대한 당시 인류의 사고를 혁명적으로 바꾸어놓았다.
또한 생물에게 있어 단순함이 어떻게 복잡함으로 바뀔 수 있는지, 무질서한 원자들이 서로 결합해 더욱 복잡한 형태로 바뀌고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는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3명의 생물학자들은 다윈의 이론에 ‘프로그레스 인 퍼펙션(progression in perfection)’ 개념이 포함돼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전에 미리 설정된 완벽한 질서 속에서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개념이 탄생한 것은 우주에 있는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존재의 거대한 고리(great chain of being)’란 우주관에 기인한 것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 주창했지만 플로티노스(Plotinos)가 체계화한 것으로 저급한 존재에서 고귀한 존재로 변화하고 있다는 개념이다.
다윈도 진화의 ‘다양성’ 인정해
가르시아 발데카사스 교수 등 3명의 생물학자들은 고대 철학자들로부터 비롯된 이런 견해가 진화론에 대한 세 가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첫 번째 오류는 모든 생명체의 구조를 계급‧서열에 준해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식세포 형성 과정(감수분열)에 있어 모든 염색체가 특별한 쌍을 형성하지 않고 무작위로 분리되고 있다는 유전자의 임의배열(random assortment)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오류는 생물이 단순한(simple) 존재로부터 완벽한(perfect) 존재로, 원시적(primitive) 존재에서 현대적(modern) 존재로 변화하고 있다는 기준이다. 그러나 다수의 연구 결과에서 이 원칙을 벗어나는 사례들이 발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 번째 오류는 진화론에서 설정해놓은 계급‧서열 구조 간에 중간기(intermediary stages)가 빠져 있다는 점이다. 다윈 이론에 의하면 유사한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산호나 따개비의 진화가 매우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중간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윈 이후 진화론에 심취한 과학자들은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전이(transitions)에 의해 진화했다고 설명하기 시작했다.
무생물 분자에서 살아있는 분자로, 그래서 탄생한 초기 유기체에서 다양한 종류의 동물과 식물로 발전해나갔다는 것.
이런 변신(transformation) 과정에서 자연계 형성 초기 무생물(inanimate)에서 생물(animate)로의 진화 과정, 신생대 이후 원숭이(monkey)에서 인간(human species)으로의 진화 과정을 설명할 수 있었다.
특히 인류의 진화 과정에 있어 ‘프로그레스 인 퍼펙션(progression in perfection)’ 개념이 그대로 적용됐다.
이에 따라 일부 교과서 등에 게재된 인간 진화에 대한 그림이나 삽화를 보면 질서정연하게 침팬지에서 어정쩡한 직립보행을 하고 있는 호미니드, 그리고 책상에 않아서 책을 보고 있는 현생인류 모습이 당연하게 등장하고 있다.
사람이 아니라 다른 생물에게도 유사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사람이든 불가사리든 모든 생물이 끊임없는 진화 과정에 참여하고 있으며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5억 8000만 년 전 공통 조상에 이른다는 것.
가르시아 발데카사스 교수 등 3명의 생물학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다윈이 설명하고 있는 진화 과정을 편파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다윈 이론에 ‘존재의 거대한 고리’ 개념이 포함됐지만 또한 점진적인 변화(gradual change)와 다양성(diversification) 이론을 내포하고 있었다는 것.
그러나 지난 수 세기 동안 등장한 진화론과 관련된 그림과 삽화들이 일방적으로 계단을 밟아 올라가듯이 점진적으로 발전해나가는 퍼펙션(perfection)으로의 진화만을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금처럼 ‘프로그레스 인 퍼펙션’에 준한 삽화 사용이 확산될 경우 진화론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발생하고, 진화론 전반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며, 이런 사실을 대중에 고지하고, 지나친 과장을 금지해줄 것을 촉구했다.
- 이강봉 객원기자
- aacc409@naver.com
- 저작권자 2019-09-05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