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에나방이나 집시나방의 수컷은 멀리 떨어져 있는 암컷을 향해 모여드는데, 이 때 신호작용을 하는 것이 페로몬(pheromones)이다. 암컷의 외분비선에서 미량이 방출되지만 분자가 매우 작은 데다 넓은 공간으로 퍼져나가 수컷들에게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사람에게도 이런 페로몬 효과가 일어나고 있느냐는 것이다. 뷰티 관련 제품 광고를 보면 “당신 피부에 페로몬을 뿌려 보세요, 그러면 틀림없이 데이트에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와 같은 문구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확인이 되지 않은 내용이다.
아직까지 이 비밀스러운 화학물질이 사람에게 행동 변화를 유발할 수 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최근 과학자들에 의해 이 페로몬의 비밀이 밝혀지고 있다. 알려진 페로몬 효과에 찬물을 끼얹는 연구 결과들이다.
AND, EST 사용해도 이성에 대한 매력 못 느껴
8일 ‘사이언스’, ‘ABC', '이코노미스트' 등 주요 언론에 따르면 서호주대 연구팀은 이성애자들게 페로몬으로 알려진 2종의 스테로이드를 뿌린 후 이성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관찰했다. 스테로이드란 스테로이드 핵을 지닌 화합물군을 총칭하는 말이다.
스테롤, 담즙산, 성호르몬, 부신피질호르몬, 곤충변태호르몬 등 생물학적으로 중요한 물질들이 다수 포함돼 있는데, 연구진이 사용한 스테로이드는 페로몬을 알려진 ‘안드로스타디에논(androstadienone)’과 ‘에스트라테트라에놀(estratetraenol)’이다.
AND로 표기하는 안드로스타디에논은 남성의 땀과 정액에서 발견되는 성분으로 여성을 성적으로 흥분하게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ST로 표기되는 에스트라테트라에놀은 여성의 소변에 있는 성분으로 남성 자율신경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자들은 남성의 몸에 EST를, 여성의 몸에 AND 성분을 뿌렸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모습을 혼합한 성적으로 애매한 얼굴 모습을 보게 한 다음 그 얼굴이 남성인지, 아니면 여성인지 판단하도록 요구했다.
연구자들은 AND와 EST가 정말 페로몬이라면 AND를 뿌린 여성은 이 중성화된 얼굴 모습에 매력을 느낀 후 남성으로 여길 것이라고 추론했다. 마찬가지로 EST를 뿌린 남성도 중성화된 얼굴 모습에 매력을 느끼고 여성으로 여길 것으로 추론했다.
페로몬에 접촉한 이성이 다른 이성을 보았을 때 매력을 느끼게 된다는 이전 주장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연구팀은 82명의 참여자를 대상으로 같은 실험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최종적으ㄹ AND, EST 두 성분이 인간 페로몬일 가능성이 없다는 결론을 맺었다. 서호주대 진화생물학자인 리 시몬스(Leigh Simmons) 교수는 “페로몬으로 알려진 AND와 EST를 통해 이성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하는 어떤 징후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또 “시중에서 상업적으로 광고되고 있는 AND, EST에 대한 문안을 떼어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논문 작성에 참여한 리 시몬스 교수는 이 연구를 하기 전까지 인간 페로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측에 가담해 있었다.
반대 측 “매우 미묘한 변화가 있는 것 분명하다”
다른 과학자들도 인간 페로몬의 존재 가능성을 입증하지 않고 있는데 대해 의문을 품어왔다. 본인 스스로 인간 페로몬 확인 연구에 나서게 됐는데 부정적인 연구 결과가 나옴에 따라 인간 페로몬 존재를 부정하는 반대 진영에 서게 됐다.
논문 제목은 ‘Putative sex-specific human pheromones do not affect gender perception, attractiveness ratings or unfaithfulness judgements of opposite sex faces’으로 8일 ‘영국왕립오픈사이언스’(Royal Society Open Science) 저널에 게재됐다.
그동안 다수의 과학자들이 인간 페로몬의 존재를 주장해왔다. 중국 학술원의 원 저우(Wen Zhou) 박사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는 스테로이드인 AND와 EST가 인간 페로몬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해왔다.
행동심리학자인 그녀는 지난 2014년 발표한 논문에서 AND와 EST가 뿌려졌을 때 실험 참가자들이 성적으로 특징이 없는 걸음걸이를 보고 남성인지, 여성인지 판단할 수 있도록 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녀는 또 ‘사이언스’ 지에 보낸 이메일을 통해 서호주대 연구팀이 사용한 얼굴 모습이 실제로 성 중립적(gender neutral)인지 의심이 간다고 주장했다. 실험에 사용한 테이프에서 연구 목적과는 관계없는 화학물질이 배출됐을 가능성도 지적했다.
서호주대 연구팀은 스테로이드 성분을 분사하기 위해 AND, EST 액체가 적셔진 목화송이를 사용했는데 이를 실험 참가자 신체에 부착하기 위해 테이프를 사용하고 있었다. 시카고대 뇌과학자 마사 매클린톡(Martha McClintock) 교수도 반박 대열에 합류했다.
그녀는 인간 페로몬이 여성들의 생리주기를 조절한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서호주대 연구 결과가 기존의 연구 결과를 무효화하고 있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그녀는 “페로몬 성분이 신비한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화학복합체가 극히 미량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뇌에 매우 미묘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인간 페로몬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일축했다. 인간 페로몬의 존재 여부를 놓고 과학자들 간에 논란이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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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3-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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