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있는 달력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큰 글씨의 날짜 아래 조그만 글씨로 몇 월 몇 일이 표기돼 있다. 또한 ‘우수’니 ‘경칩’이니 ‘춘분’이니 하는 글씨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2004년 3월의 달력을 보자. 1일 아래에 ‘2월 11일’이라고 조그맣게 표시되어 있고, 5일 아래에는 ‘2월 15일’, 20일에는 ‘춘분’, 21일에는 ‘윤2월 1일’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큰 글씨의 숫자는 양력 날짜이고 조그만 글씨의 2월 11일, 2월 15일, 윤2월 1일 등은 음력 날짜이다.
‘윤2월 1일’이라는 날짜는 무엇인가? 이것을 알려면 양력과 음력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양력과 음력은 날짜 표기를 태양을 기준으로 하느냐 달을 기준으로 하느냐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양력은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도는 시간이 365.2422일이므로 이 날 수를 12개월로 나누어 배열한 것이다. 그래서 30일과 31일을 번갈아 주면서 1년의 총 날수가 365일이 되도록 맞추었다. 그렇지만 마지막에 남는 우수리 0.2422일은 맞출 수가 없어서 4년간 모았다가 그 해의 2월에 하루를 더 해준다. 이런 해는 총 날짜수가 366일이 되며 이를 윤년이라고 부른다. 윤년은 음력이 아니라 양력에서 날짜가 366일인 해인 것이다. 그런데 실은 우수리가 0.25가 아니라 0.2422이므로 4년에 하루를 더 주면 조금 남게 되어 100년째에는 하루를 더 주지 않는다.
음력은 달이 지구를 한바퀴 돌면서 초승달에서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다시 그믐달로 변하는 주기를 날짜 표기에 사용한 것이다. 이 주기는 29.53일이므로 음력에서는 29일인 달과 30일인 달을 번갈아 두어 날짜와 달의 모양이 잘 맞도록 한다. 물론 이렇게 해도 우수리 0.03일이 남으므로 33개월간 이를 모았다가 하루가 쌓이면 29일인 달에 하루를 더 주어 30일을 만들어 주는데, 이 때문에 30일 짜리 달이 연이어 있게 된다. 음력에서는 1년에 12달을 두는데, 총 날짜수가 354일밖에 되지 않아 양력보다 11일 정도 짧다. 때문에 음력을 사용하는 이슬람교도들은 33년이면 양력을 사용하는 사람들보다 나이를 한 살 더 먹게 된다.
음력과 양력 모두 생활의 편의에 맞게 날짜를 나타내는 것이므로 어느 것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농경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순수한 음력만 사용하면 계절의 변화를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매년 11일씩이나 양력과 차이가 나므로 4월이 겨울이 되고, 12월이 여름이 되어 달의 이름과 계절이 뒤죽박죽 된다. 이런 데 신경 쓰지 않고 음력을 지키려는 종교적 신념이나 문화의 뿌리가 깊은 곳에서는 음력만을 쓰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달의 움직임을 생활에 반영시킴과 함께 농사를 짓는 생활에도 큰 의미를 부여해 어떻게든 음력과 양력을 결합시키고자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윤달과 절기이다.
앞서 말했듯이 음력이 양력보다 11일이 적으므로 3년이면 33일이 모자란다. 이에 3년만에 한번씩 윤달 하나를 두면 음력과 양력의 날짜가 거의 비슷해진다. 윤달이 두어진 해는 한 달이 더 있으므로 13개월이 있고, 총 날수는 383일(혹은 384일)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달이 바로 윤달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옛날 달력에서 날짜 표기는 모두 음력으로 했으므로 옛날 달력을 지금 만들면 큰 글씨가 음력이고 작은 글씨를 양력으로 해야 할 것이다.
옛날 달력에서 양력은 무엇이었을까? 경칩, 춘분, 청명 등 24절기는 양력 날짜를 의미한다. 매일을 양력 몇 월 몇 일로 표기하지 않고 일년 중 24개의 기준날짜만 만들어 준 것이다. 실제로 옛날 달력에서는 ‘갑신년 윤2월 15일’을 나타내는 칸에 조그맣게 ‘청명’이라고 표기했다. 즉 원숭이해 윤달인 2월15일이 양력으로 ‘청명(4월 4일)’에 해당한다는 것을 표시해준 것이다. 흔히 절기를 음력으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음력에 덧붙여 표기된 양력날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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