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두뇌에서 어떻게 사물을 인식하는지에 대한 메커니즘은 오랫동안 궁금증과 함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그 중 가장 특이한 논란은 ‘할머니 신경세포’ 주장이다. 두뇌의 뉴런(신경세포)중에 예컨대 할머니를 알아보는 ‘할머니 세포’ 같은 뉴런이 있다는 주장이다.
처음 이 가설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말도 안되는 우스운 가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근 이 가설을 뒷받침하는 듯한 연구가 나와서 인간의 사물인식과 기억력 연구에 새로운 도전을 던져 준다.
이스라엘과 프랑스 연구원들은 사상 처음으로 인간의 두뇌에 있는 시각피질(visual cortex)에서 사람의 얼굴에 선택적으로 반응하는 신경세포를 발견했다고 최근 발표했다.
이스라엘 바일란대학교 (Bar-Ilan University)의 의식 및 인지실험실의 바딤 악셀로드(Vadim Axelrod)박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얼굴을 인식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많이 이뤄졌지만, 시각피질에 있는 신경세포가 얼굴에 반응한다는 것은 처음으로 발견됐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인간의 두뇌가 얼굴을 인식할 때 세포수준에서 어떻게 처리되는지 메커니즘을 더 잘 이해하는데 중요한 진전을 보여준다. 프랑스 파리의 뇌연구소 연구팀과 함께 한 이번 연구는 뉴롤로지(Neurology) 저널에 발표됐다.
사람얼굴과 사물에 대한 반응의 정도 달라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은 인간의 인지기능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이다. 인간의 사회 활동은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고 차이를 인식하는 능력에서 나온다.
그런데 사람들은 수십년 만나지 못했던 사람도 쉽게 알아본다. 특히 유명한 사람들은 얼굴의 일부만 잠깐 봐도 알아볼 정도로 인간의 얼굴인식 기능은 특별하다.
이번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사람 두뇌의 시각피질에 있는 신경세포가 도시의 풍경이나 어떤 물건보다 더 사람 얼굴에 강력하게 반응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 신경세포는 시각피질 중에서 방추형 얼굴영역(FFA Fusiform face area) 옆에 위치하고 있다. 간질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니콜라스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이나 여배우 카트린 드뇌브 같은 유명한 사람의 사진을 보면 신경세포의 반응이 강했다.
특히 신경세포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 ‘서커스’에 나오는 사람의 얼굴과 동물의 얼굴을 분간할 수 있었다.
1970년대 초 찰스 그로스(Charles Gross) 프린스턴 대학교수는 마카크 원숭이의 시각피질에 있는 신경세포에서 얼굴에 반응하는 신경세포를 발견한 적이 있다.
사람이 얼굴을 어떻게 분간하는지에 대한 연구가 이뤄진 적은 있으나 주로 기능성 자기공명장치(fMRI)나 뇌파검사 같은 비접촉식 장치를 이용한 것이었다.
사람의 시각피질에 있는 얼굴인식 신경세포는 발견된 적이 없다. 연구팀은 간질 환자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환자의 FFA영역에 가까운 곳에 전극을 꽂았다가 우연히 얼굴인식 신경세포를 발견했다.
사람의 얼굴에 반응하는 신경세포가 있다는 주장은 2005년에도 나왔다.
영국 레스터 대학교(University of Leicester)의 로드리고 퀴로가(Rodrigo Quiroga)박사는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인간 두뇌의 중앙측두엽 (medial temporal lobe)에 있는 신경세포가 유명인의 다양한 사진에 반응하는 것을 발견했다.
당시 퀴로가 박사는 미국의 유명 여배우인 제니퍼 애니스턴의 사진을 이용해서 실험을 했다. 이 때문에 ‘제니퍼 애니스턴 세포’라는 이름을 얻었다.
당시 퀴로가 연구팀은 두뇌에100개의 작은 전극을 꽂았다. 대부분의 전극은 장기기억을 저장하는 역할을 하는 두뇌의 해마에 설치됐다.
그리고 유명한 사람들을 비롯해서 장소, 음식 등의 사진을 71개에서 114개씩 보여줬다. 각 사진에 대해 전극에 연결된 신경세포의 전기적인 활동, 다시 말해서 발화상태를 측정했다. 그랬더니 993개의 신경세포 중 조금이라도 발화한 신경세포는 132개였다.
그 중 한 여성에게는 제니퍼 애니스턴 사진7장을 보여줬다. 다른 동물이나 빌딩 혹은 줄리아 로버츠 사진 80장도 같이 보여줬다.
그랬더니 그 여인의 신경세포는 다른 모든 사진에 대해서는 거의 무시했지만, 제니퍼 애니스턴의 사진이 나타날 때마다 지속적으로 발화했다.
다른 여인은 할 베리(Halle Berry)의 사진을 보고 유사한 결과가 나타났다. 특정 신경세포가 특정 인물에만 반응을 보인 것이다.결국 2005년 연구는 두뇌의 어떤 특정한 신경세포는 특정한 인물을 알아보는 특별한 관계를 갖는 것임을 보여줬다.
이번에 발견한 얼굴인식 신경세포는 제니퍼 애니스턴 세포와는 다르다. 우선 시각피질에서 얼굴인식 세포가 발견됐다. 또 이 세포는 유명인이든 무명인이든 사람의 얼굴에는 모두 강렬하게 반응했다.
두번째로 제니퍼 애니스턴 세포에 비해서 이번에 발견된 신경세포의 반응속도는 훨씬 빨랐다. 이번 연구에서 사진을 보여주면 0.150초 안에 반응이 나타났지만, 제니퍼 애니스턴 세포는 0.3초나 그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할머니 세포’가 있다는 가설은 1960년대에 신경과학자인 제리 레트빈(Jerry Lettvin)이 처음 주장했다.
- 심재율 객원기자
- kosinova@hanmail.net
- 저작권자 2019-02-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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