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 주변 환경이 마침내 그 베일을 벗었다.
미국 메릴랜드대와 천문학 협동연구팀은 태양 질량의 10배 정도 되는, 비교적 작은 ‘항성(stellar) 질량’을 가진 한 블랙홀을 둘러싼 환경을 도표화하는데 성공했다.
이번 관측은 이 같은 작은 블랙홀들이 어떻게 물질을 소비하고 에너지를 방출하는가에 대한 가장 명확한 그림을 보여준다.
이 연구는 1월 9일 시애틀에서 열린 제233차 미국천문학회 기자회견에서 발표됐고,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10일자 표지논문으로 실렸다.
1만년 광년 떨어진 항성-질량의 블랙홀 대상 연구
연구팀은 국제우주정거장(ISS)에 탑재된 미 항공우주국(NASA)의 ‘중성자별 내부 구조 탐색기(NICER)’를 사용해 최근 발견된 블랙홀인 ‘MAXI J1820+070 ’(약어 J1820)이 동반자 별의 물질들을 소비할 때 나오는 X선 빛을 탐지했다.
X선 파동은 블랙홀 근처의 소용돌이 치는 가스로부터 반사돼 주변 환경의 크기와 모양 변화를 나타내는 ‘빛의 메아리(light echoes)’를 형성했다.
논문 제1저자로 연구를 이끈 에린 카라(Erin Kara) 천문학 박사후 연구원(NASA 고다드 우주비행센터 및 합동 우주과학 연구소 허블 펠로우)은 “나이서(NICER)를 통해 그 어느 때보다도 항성-질량의 블랙홀에 더욱 가까운 빛 에코를 측정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전에는 내부 부착 원반으로부터 나오는 가벼운 빛 에코를 태양질량보다 수백만~수십억배 더 크고 변화가 느린 초거대질량 블랙홀들에서만 볼 수 있었다”고 말하고, “J1820과 같은 항성 블랙홀은 질량이 훨씬 작고 빨리 진화해 인간의 시간 척도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성자별 탐색기 NICER로 추적 관찰
J1820은 지구에서 약 1만 광년 떨어진 사자자리 방향에 위치해 있다. 이 블랙홀의 동반 별은 유럽우주국(ESA)의 가이아(Gaia) 미션 탐사로 확인됐고, 이 별을 통해 지구로부터의 거리를 추정할 수 있다.
천문학자들은 국제우주정거장에 탑재된 일본 항공우주 탐사국의 ‘전우주 X선 이미지 모니터[Monitor of All-sky X-ray Image (MAXI)]’가 블랙홀에서 나오는 작은 분출을 감지하고 나서야 이 블랙홀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에 따라 J1820은 단 며칠 만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블랙홀 중 하나’에서 ‘X선 하늘 상에서는 가장 밝게 빛나는 소스의 하나’로 떠올랐다. 나이서(NICER)는 이 극적인 전환을 포착하기 위해 재빨리 움직였고, 블랙홀의 사라져 가는 분출 꼬리를 계속 추적했다.
NASA 고다드 우주물리학자로 나이서 운영을 이끌고 있는 제이븐 아주매니언(Zaven Arzoumanian) 박사는 “나이서는 중성자별이라고 불리는, 엄청나게 밀도가 높으면서도 희미하게 보이는 물체를 탐구하기에 충분한 민감도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하고, “나이서가 X선으로 빛나는 항성 질량의 이 블랙홀 연구에 유용하다는 사실이 입증돼 기쁘다”고 말했다.
고온 가열된 블랙홀 원반과 코로나에서 X선 방출
블랙홀은 가까운 동반자 별에서 가스를 빨아들여 부착 원반(accretion disk)이라 불리는 물질의 고리로 보낼 수 있다. 중력과 자기력은 이 원반을 섭씨 수백만도까지 가열해 블랙홀 근처에 있는 원반 내부에서 X선을 생성할 수 있을 만큼 뜨거워진다.
이러한 분출은 원반의 불안정성으로 인해 갑자기 가스 홍수가 블랙홀 안쪽으로 쇄도해 들어갈 때 발생한다. 천문학자들은 이 디스크의 불안정성이 무엇 때문에 생기는지 아직 이해하지 못 하고 있다.
원반 위에는 코로나가 있다. 이 구역은 섭씨 10억도까지 가열된 아원자 입자 영역으로 고에너지 X선이 빛을 낸다.
블랙홀 코로나의 기원과 진화에 대해서는 많은 것이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일부 이론들은 이 구조에 대해 ‘이런 종류의 시스템이 종종 방출하는 고속 입자 제트의 초기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추정한다.
X선 잔향 매핑으로 블랙홀 변화 도표화
천체물리학자들은 블랙홀이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과정을 통해 ‘블랙홀 부착 원반의 안쪽 가장자리와 그 위에 있는 코로나가 크기와 모양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더 잘 알고 싶어한다.
항성-질량의 블랙홀에서 이런 변화들이 어떻게, 왜 일어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면, 초거대질량 블랙홀들이 수백만년 동안에 걸쳐 어떻게 진화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들이 속해 있는 은하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큰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이러한 변화를 도표화하는 한 가지 방법은 X선 잔향 매핑이라고 불리는 방법이다. 이는 음향을 탐지하는 소나가 음파를 사용해 해저지형을 지도로 나타내는 것과 거의 같은 방법으로, X선 반사를 이용하는 방식이다.
코로나에서 나오는 일부 X선은 우리 쪽으로 곧바로 이동하고, 다른 것들은 원반을 비추다 다른 각도로 되돌아간다.
초거대질량 블랙홀의 X선 잔향 매핑 결과, 부착 원반 내부 가장자리가 ‘어떤 물질이나 에너지도 빠져나올 수 없는 지점인 블랙홀의 이벤트 지평선(event horizon)과 매우 가깝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과학자들은 또한 코로나가 부착 원반의 많은 부분보다 블랙홀에 더 가깝게 놓여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블랙홀 코로나 구조, 진화 계속돼”
항성 질량 블랙홀의 X선 에코에 대한 이전 관측에 따르면, 부착 원반의 안쪽 가장자리는 이벤트 지평선 크기의 수백배에 이르는 먼 곳에 위치해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J1820은 마치 초거대질량 블랙홀처럼 행동했다.
연구팀이 나이서의 J1820 관찰 자료를 검토한 결과, 코로나에서 직접 나오는 X선 초기 플레어와 원반의 플레어 에코 사이에는 지연 시간이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X선이 반사되기 전 더욱 더 짧은 거리를 여행했다는 것을 가리킨다.
현지에서 1만 광년 떨어져 있는 연구팀은 코로나가 대략 100마일에서 10마일까지 수직으로 수축되었다고 추정했다. 이것을 원근법 차원으로 보면, 지구와 명왕성 사이의 거리에서 블루베리 크기 정도의 어떤 물체가 양귀비 씨앗 크기로 축소되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논문 공저자인 MIT 우주물리학자 잭 스타이너(Jack Steiner) 박사는 “이것은 폭발 진화의 특별한 단계에서 코로나가 줄어들고 있는 증거를 관찰한 최초 사례”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는 여전히 매우 신비로우며 우리는 아직도 그에 대해 어렴풋이만 알고 있다”고 말하고, “그러나 이제 코로나 자체의 구조가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를 갖게 됐다”고 밝혔다.
“X선 천문학의 개가”
연구팀은 지연 시간 감소가 원반이 아닌 코로나의 변화 때문이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철 K라인’이라는 신호를 사용했다. 이 신호는 코로나로부터 나오는 X선이 디스크에 있는 철 원자들과 충돌할 때 생기며 이때 형광이 발생한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강한 중력장과 빠른 속도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블랙홀에 가장 가까운 철 원자들이 코로나 코어에서 나오는 빛의 포격을 받게 되면, 시간이 관찰자에서보다 원자들쪽에서 더 느리게 흐르기 때문에 철 원자들이 방출하는 X선 파장은 늘어난다.
카라 박사팀은 J1820의 늘어난 철 K라인이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초거대질량 블랙홀에서와 유사하게 원반의 안쪽 가장자리가 블랙홀과 가깝게 유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감소된 지연 시간이 더욱 더 안쪽을 향해 움직이는 원반 안쪽 가장자리에 의해 발생했다면 철 K라인은 훨씬 더 늘어났을지도 모른다.
이 같은 관찰 결과들은 ‘물질들이 어떻게 깔대기처럼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지’,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어떻게 에너지가 방출되는지’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논문 공저자인 암스테르담대 우주물리학자인 필립 어틀리(Philip Uttley) 박사는 “나이서의 J1820 관찰은 우리에게 항성-질량 블랙홀에 대한 새로운 사실과, 이를 유사형으로 활용해 초거대질량 블랙홀과 이들이 은하 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말했다.
어틀리 박사는 “우리는 나이서가 도입된 첫 해에 네 가지 주목할 만한 비슷한 사건을 경험했으며, 이는 우리가 X선 천문학에서의 거대한 돌파구 끝에 서 있다는 느낌을 준다”고 연구 소감을 밝혔다.
- 김병희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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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9-01-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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