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행만 객원기자] 21세기 들어 모든 영역의 패러다임을 바꿔놓고 있는 디지털 혁명은 영화의 판도마저 크게 바꿔놓고 있다. 디지털영화는 단순히 디지털캠코더로 만든 영화가 아니라 디지털미학이라는 새로운 매체미학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의 마지막날 나비아트센터에서는 2004년 디지털 미디어 세미나 두 번째 강의가 있었다. 연사는 한국 해양대학교 유럽학부 교수이자 철학자인 박성수 교수.
영화평론가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박교수는 ‘디지털 영화의 시간과 공간’이라는 제목의 강연으로 미디어테크놀로지에 기반해 새로운 미학적 지평을 열고 있는 디지털영화의 세계에 대한 열띤 강연을 했다. 그는 “디지털이 인간의 상상력을 훨씬 초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간은 디지털에게 상상력을 위임한다. ”고 말했다. 다시 말해, 기존의 필름영화가 보여주지 못하는 상상의 세계를 디지털영화가 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디지털영화는 과학의 세계를 훨씬 초월한다.
첨단 과학이 아직도 3차원의 세계라면 디지털영화는 이미 4차원의 세계를 영상화한다. 공룡시대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 ‘쥐라기 공원’은 4차원 공룡의 세계를 스크린에 담아낸 작품이다. 물론, 디지털 기법 덕분이다. 조잡하고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기존의 공룡영화에 이미 식상해있는 관객들의 욕구불만을 디지털로 제작된 쥐라기공원은 시원하게 해소시켜줬다. 박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디지털 이미지는 다른 시각적 장르들처럼 관객의 지각을 강화시켜주는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강화시켜주는 것이 된다. 이에 따라 디지털 이미지는 기존의 상상력을 깨뜨리는 동시에 이미지를 만드는 능력으로서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하지만 디지털 영화가 많은 비판에 직면해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판론자들은 디지털 영화가 보여주는 상상력의 확장은 기존의 영화가 갖는 깊이감을 사라지게 하고, 전자이미지를 코드화해 디지털이미지로 변화시켜 놓음으로 해서 사실적 이미지 모사인 진정성은 오히려 약화시킨다고 주장한다.
디지털 영화는 아무리 사실적으로 묘사되더라도 왠지 모르게 실제 촬영장면보다는 리얼리티면에서 떨어지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화질 이다. 화질의 기준이 되는 기준이 해상도라고 할 때, 기존의 필름영화의 해상도가 5k인 데 비해서 디지털영화의 기본 해상도는 0.7k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또 상상의 세계를 다루는 디지털영화는 과학계의 심한 반발에 부딪히기도 한다.
쥬라기공원의 원작자 마이클 크라이튼은 영화 내용 중에 나오는 공룡의 DNA복원 과정을 놓고 과학계의 혹독한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그런데 올해 2월 개봉된 영화 ‘타임라인’에서 그의 과학적 상상력은 다시 한번 논쟁의 불씨를 제공했다. 전문가들 역시 이 영화가 과학적 결함을 내포하고 있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영화가 미래 영화산업의 대세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과학이 미처 도달하지 못한 미래의 세계로 관객들을 데리고 가는 디지털영화는 최근 관객들의 욕구에 부응하고 있다. 미학적 요소이외에도 디지털 영화는 시간과 비용 면에서 기존 영화보다 매우 효율적이다. 감독들 역시 편집을 포함, 여러 가지 후반 디지털 작업들을 통해서 원하는 장면들을 언제, 어디서든 쉽게 얻을 수 있어 호의적이다. 또 무엇보다도 요즈음 관객들이 영화 속의 디지털 요소를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디지털 영화의 탄탄한 미래를 보장한다.
“아날로그 이미지에서 전자이미지로, 전자이미지에서 디지털이미지로 발전하면서 기술적 장치나 도구들은 점점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디지털시대에는 이미지의 생산자나 소비자나 기술적 장치가 필요하므로 예술적 노동 대신 테크놀로지의 개입이 전면에 부각된다”며 박교수는 디지털영화나 디지털이미지 시대에는 디지털미학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고 강조했다. 또한 중요한 것은 디지털이미지는 더 많은 인간의 상상력을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디지털미학이라는 테마로 디지털미디어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 다루는 ‘2004 디지털 미디어 세미나’는 KAIST 가상현실연구센터와 나비아트센터의 주관으로 4월 23일부터 6월 4일까지 매주 종로구 나비아트센터 극장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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