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이 비늘로 덮인 파충류나 털이 있는 포유류, 그리고 하늘을 날 수 있는 깃털이 있는 조류는 모두 어류에서 진화했다. 그럼 비늘이나 털, 깃털은 과연 어디에서 진화한 것일까. 정답은 바로 어류의 비늘이다.
어류는 생물계통학적으로 크게 조기(條鰭, Ray-finned)어류와 육기(肉鰭, Lobe-finned)어류로 나눈다. 조기어류는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고등어, 도미, 붕어 같은 것으로서, 빗살형 지느러미를 지니고 있다. 이에 비해 육기어류는 지느러미가 두꺼운 살덩어리로 되어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실러캔스와 폐어다. 또한 조기어류의 비늘은 주성분이 콜라겐이며, 육기어류의 비늘은 케라틴이다.
양서류를 비롯해 파충류, 포유류, 조류 같은 육상 척추동물의 선조는 바로 육기어류다. 따라서 양서류나 파충류의 비늘, 포유류의 털, 조류의 깃털도 그 주성분이 모두 케라틴이다. 파충류의 비늘 한 개가 포유류의 털 수십 개로 변했으며, 조류의 깃털은 파충류의 비늘이 점점 길어지면서 빳빳하고 단단한 깃으로 발전한 뒤 잔가지가 나온 것이다.
즉, 우리의 머리카락은 비늘에서 유래했으며, 멋진 비행을 가능하게 해주는 새의 깃털도 비늘이 변한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가설은 수십 년 동안 논쟁거리였다. 특히 비늘이 깃털로 변했을 것이란 가설은 직격탄을 맞았다.
시조새가 처음 하늘을 날기 훨씬 전부터 파충류인 공룡이 깃털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공룡은 약 2억4000만년 전 지구상에 처음 등장할 때부터 깃털을 갖고 있었다는 연구결과까지 발표됐다.
하늘을 날지 못했던 공룡이 왜 처음부터 깃털을 지니고 있었을까. 이에 대해 과학자들은 공룡이 짝짓기를 위한 멋내기용과 체온의 효과적인 보온을 위해 깃털을 갖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파충류의 비늘과 새의 깃털은 진화적으로 연관성을 지닌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별도의 발생구조를 지녔다는 가설이 힘을 얻었다.
스위스 연구진, 구체적 증거 담은 연구결과 발표
그런데 최근 들어 비늘과 털, 깃털이 동일한 진화적 기원을 가진다는 연구결과들이 잇달아 발표되면서 화제가 되고 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지난해 발표된 미국 예일대학 연구팀의 논문이었다.
연구진은 이 논문에서 비늘과 털, 깃털이 발생과정에서 분자지표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이 연구결과는 오히려 오랫동안 이어진 논쟁을 더욱 촉발시키는 역할을 했다. 한쪽은 피부부속지들의 이러한 분자 특성이 공통의 진화적 기원을 가진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주장한 반면, 다른 쪽은 서로 다른 피부부속지의 발생에 동일한 유전자들이 재사용되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이에 대해 스위스 제네바대학과 스위스생명정보학연구소의 연구자들은 좀 더 구체적인 증거를 담은 연구결과를 지난달에 발표했다. 파충류의 비늘과 조류의 깃털, 포유류의 털이 모두 파충류와 비슷한 공동 조상의 비늘로부터 진화한 것이라는 해부학적, 분자적 데이터를 찾아낸 것이다.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에 게재된 이들의 논문에 의하면, 악어나 도마뱀 같은 파충류도 배아 발생과정에서 포유류 및 조류와 해부학적으로 동일한 플라코드를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했다.
포유류의 털과 조류의 깃털은 ‘플라코드’라고 불리는 유사한 원시적 구조로부터 발생한다. 즉, 포유류나 조류의 배아에서 외배엽의 특정 부위인 플라코드가 두꺼워지면서 털이나 날개로 발달하는 것이다. 이전 연구들에 의하면 파충류의 비늘은 해부학적으로 플라코드에서 발생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었다. 또한 포유류와 조류도 진화 과정에서 독립적으로 플라코드를 발명했을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스위스 연구진은 파충류의 배아 발생과정에서 피부의 형태학적, 분자적 지표를 분석하고 세세히 관찰한 결과, 포유류 및 조류에서 볼 수 있는 것과 해부학적으로 동일한 플라코드의 존재를 확인했다. 그동안 파충류에서 플라코드가 발견되지 않았던 것은 외배엽에서 단지 12시간만 유지되다 비늘로 변하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공통의 기원을 가진다는 또 다른 증거
‘사이언스 데일리’에 의하면 스위스 연구진은 비늘과 털, 깃털이 공통의 기원을 가진다는 또 다른 증거도 찾아냈다. 이들은 연구과정에서 일반적인 야생 형태, 자연적으로 생긴 유전자 변이를 하나 지니고 있어 비늘의 크기가 작은 것, 그리고 이 유전자 변이를 2개 지니고 있어 비늘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것 등 턱수염도마뱀의 세 가지 변종의 유전체를 비교했다.
그 결과 해당 변이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EDA’라는 유전자를 발견한 것. 즉, 비늘이 없는 턱수염도마뱀의 독특한 외모는 EDA가 파괴되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유전자는 변이가 일어날 경우 포유류의 손발톱 및 털의 발생에서 상당한 비정상성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포유류나 조류에서 EDA 유전자에 유사한 변이가 있을 때 그 영향으로 털이나 깃털의 플라코드가 정상적으로 발생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도마뱀에서 EDA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비늘을 만들어내는 플라코드가 정상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즉, 비늘과 털, 깃털에서 이 유전자는 동일한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 연구결과가 비늘과 깃털, 털의 진화적 연관성에 얽힌 오랜 논쟁을 종식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 이성규 객원기자
- yess01@hanmail.net
- 저작권자 2016-07-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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