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가 낭비되고 있는 현장에 있으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의례히 듣는 말이 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반도에서 이렇게 에너지를 낭비해도 되느냐 하는 취지의 말들이다.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는 의미에서 보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한반도’라는 문구의 사실 여부만을 놓고 따진다면 틀린 말이다. 생산량이 많지는 않지만 우리나라도 엄연한 산유국(産油國)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 말을 믿기 어렵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울산시에서 동쪽으로 58km 정도 떨어진 바다를 찾아가서 확인하면 된다. 가까이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물 위에 우뚝 솟아오른 거대한 ‘해상 원유 생산기지’의 위용을 직접 눈으로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전 세계에서 95번째 산유국으로 등록된 대한민국
우리나라가 산유국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국민들이 대다수지만,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서 95번째 산유국으로 등록되어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동해의 해상 원유 생산기지에서는 하루 900톤 정도의 가스와 원유가 끊임없이 생산되고 있다.
해상 원유 생산기지는 무게 1만 2000톤에, 높이와 길이는 각각 47m와 93m인 거대한 철골 구조물이자, 바다 위에 올라와 있는 인공섬이다. 형태는 해상 위로 보이는 플랫폼과 이를 바다 아래에서 지탱해주는 4개의 다리로 이루어져 있다.
강철 소재의 다리가 해저에 견고하게 박혀 있기 때문에 17m 이하 높이의 파도와 초속 51m의 바람, 그리고 진도 6에도 견딜 수 있다. 또한 보유장비로는 지하 수천m를 뚫고 들어가는 시추파이프와 기지의 안전을 지키는 폭팔방지시스템(BOP) 등이 대표적이다.
시추파이프를 통해 채굴한 가스와 원유는 해상 파이프라인을 통해 울산에 위치한 육상 생산시설로 직접 수송되고 있는데, 하루 생산량인 900여 톤 중 가스는 34만 가구에 제공되고 있고 원유는 승용차 2만대의 연료로 활용되고 있다.
지난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해상 원유 생산기지의 채굴 실적을 살펴보면, 에너지 대부분을 수입해야 하는 우리나라의 입장에서 볼 때 가히 눈부시다고 할 수 있다. 2015년을 기준으로 11년 동안 2조 3000억 원의 매출에 약 19억 달러의 수입 대체 효과를 얻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3년 뒤면 제 2원유가스전도 고갈 예상
현재 해상 원유 생산기지가 위치하고 있는 동해 유전(油田)은 크게 제 1원유가스전과 제 2원유가스전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 1원유가스전이 해상 원유 생산기지의 바로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반면에 제 2원유가스전은 이곳에서 약 6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독특한 점은 제 2원유가스전의 경우 별도의 해상 원유 생산기지가 없다는 점이다. 해저에서 원유와 가스를 채굴하면 파이프가 연결되어 있는 제 1원유가스전의 해상 원유 생산기지로 보내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생산기지를 별도로 건설하지 않은 이유는 제 2원유가스전의 매장량이 제 1원유가스전에 비해 현저히 적었기 때문이다. 새로 짓자니 3천억 원에 달하는 비용이 부담스럽고, 그냥 버리자니 아까운 그런 유전이었던 것.
그때 사업의 주체인 한국석유공사 소속 엔지니어가 해저에서 가스를 뽑아낸 뒤 이를 제 1원유가스전에 위치한 해상 원유 생산기지로 보내는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다양한 검토 끝에 아이디어가 채택되자, 석유공사는 지난 2015년 약 1천억 원의 비용을 들여 제 1원유가스전과 제 2원유가스전을 연결하는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해상 원유 생산기지 건설을 비롯하여 나뉘어 있는 원유가스전들의 운영 시스템 모두가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되었다는 점이다.
한국석유공사의 관계자는 “2개의 원유가스전을 포함한 해상 원유 생산기지는 탐사 및 생산, 그리고 운영과 관련된 국내 기술이 총망라된 테스트베드인 만큼, 우리의 기술이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교두보로 삼아야한다”고 주장하면서 “이와 함께 국내 유일의 해저 에너지 자원 관련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교육의 장으로도 발전시켜야한다”고 강조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우리나라가 산유국으로서의 위치를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의 견해도 현재로서는 비관적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제 1원유가스전이 갖고 있는 매장량이 한계에 다다랐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제 2원유가스전의 매장량이 제 1원유가스전에 비해 10% 정도밖에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현재로서는 제 2원유가스전에서 약 3년 정도 기간 동안 원유 및 가스를 시추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지만, 그 이후는 아예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국내 다른 지역을 대상으로 한 탐사작업이 시급하다는 것이 에너지업계의 시각이다.
이에 대해 석유공사의 관계자는 “해외유전 개발은 해당국가에 이익의 50%를 지불하고 생산과 개발비를 고스란히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 75~80%가량의 비용이 발생하여 이익이 현저히 낮다”라고 설명하며 “자국 내에서 독자기술로 생산하는 자원개발이 국가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훨씬 큰 만큼, 하루속히 우리 국토에서 또 다른 유전을 찾는 일이 시급하다”라고 밝혔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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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2-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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