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도시대의 오토마타
일본에서는 오토마타를 기계장치라는 뜻의 ‘가라쿠리(Karakuri, からくり)’라고 부르는데, 일본의 봉건시대와 근세시대에 해당하는 과학기술의 융성기(隆盛期) 에도시대(江戶時代, 1603~1867) 때 본격적으로 등장하여 널리 제작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본의 가라쿠리 인형은 주로 태엽과 톱니바퀴로 작동되는데, 중국 고대 발명품 지남차(指南車)와 물시계, 그리고 우리나라 백제와 신라의 물시계 제작기술의 영향을 받아 그 기계장치들이 점차 발전되어 ‘움직이는 인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다케다 이즈모의 문학작품 '주신구라(忠臣蔵)'는 우리나라의 '춘향전'에 비견되는 일본의 대표적인 국민문학으로 ‘아코 사건’을 토대로 만든 작품으로 영화, TV 드라마, 만화, 인형극, 가부키 등 수많은 관련 작품을 낳았으며, 충(忠)과 의(義)에 대한 일본인의 정서를 담은 작품이다.
일본 에도시대의 대표적인 가라쿠리 장인으로는 호소카와 한조(細川半蔵, 1741∼1796), 다나카 히사시게(田中久重, 1799-1880), 오노 벤케치(大野弁吉, 1801- 1870) 등이 있는데, 그중 호소카와 한조가 저술한 '기교도휘(機巧圖彙, 1796)'는 일본 최고의 과학기술 서적으로 손꼽히고 있다.
특히 '기교도휘'에는 ‘차 나르는 인형’ 설계도 이외에도 계단 내려오는 인형, 자동 태엽시계, 낚시하는 인형, 악기 연주하는 인형, 움직이는 물고기 인형, 각종 톱니바퀴 등 80여 점의 가라쿠리 설계도가 수록되어 있다.
'기교도휘'는 2014년에 '완역 가라쿠리 도휘(完訳 からくり 圖彙)'라는 제목의 책으로 다시 편역되어 출간되었으며, 'Japanese Automata, Karakuri Zui - An Eighteenth Century Japanese Manual of Automatic Mechanical Devices'라는 제목의 영문판으로도 함께 출간된 바 있다.
일본 로봇의 원조, 가라쿠리
일본 가라쿠리는 주로 극장 공연에서 사용된 ‘부타이 가라쿠리(舞台 からくり)’, 방 안에서 놀이할 때 사용된 ‘자시키 가라쿠리(座敷 からく)’, 전통적인 종교 및 축제 행사에서 사용된 ‘다시 가라쿠리(山車 からくり)’ 등 크게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다.
현재 일본 가라쿠리는 다카야마 축제, 나고야 축제, 교토 지온 축제 등 각 지역의 전통 축제에서 다양하게 전시 · 공연되고 있으며, 이시카와현 가나자와 시에는 오노 카라쿠리 기념 박물관(Ohno Karakuri Memorial Museum)이 운영되고 있다. 이렇게 일본은 생활과 문화, 그리고 축제 및 놀이와 함께 오랫동안 기계장치로 움직이는 인형, 즉 오토마타를 널리 만들고 즐겨왔다.
2009년 일본문화원에서 개최되었던 '가라쿠리 아트 체험전'에 소개된 가라쿠리 연표에 따르면, 에도시대 1645년 처음으로 ‘차 나르는 인형’이 제작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1662년에는 다케다 이즈모(竹田出雲)에 의해 '닌교조루리(人形淨瑠璃)'라는 가라쿠리 인형극이 공연되었다고 한다.
에도시대 오토마타 장인 중 한 사람으로 가라쿠리 ‘활 쏘는 인형’을 만든 다나카 히사시게는 1875년 도쿄에 각종 기계장치를 제작하여 판매하는 ‘다나카 제작소(田中製作所)’를 설립했는데, 이곳은 1978년 도시바(株式会社 東芝, Toshiba Corporation)로 발전되었다. 2014년에 출간된 과학서 '가라쿠리 의우위문(からくり 儀右衛門)'이 바로 도시바의 원조, 일본의 기계장치 발명왕 다나카 히사시게의 과학기술 업적을 소개하는 서적이다.
또한 가라쿠리 ‘차 나르는 인형’의 조립키트가 들어있는 '대인의 과학(大人の科学) 16호'는 일본의 다양한 로봇 문화와 함께 호소카와 한조의 '기교도휘', 그리고 다나카 히사시게, 오노 벤케치의 에도시대 각종 과학 발명품들을 소개하였다.
일본의 기계장치로 움직이는 인형, 에도시대 가라쿠리는 지난 2000년 혼다(Honda)에서 개발, 발표한 세계 최초의 2족 보행 휴머노이드 로봇 ‘아시모(アシモ, ASIMO : Advanced Step in Innovative Mobility)’의 원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로봇 ‘아시모’는 첨단 과학기술이 인간을 풍요롭게 하는 문화의 하나로 공유하기 위해 2001년 도쿄에 설립된 일본과학미래관(National Museum of Emerging Science and Innovation)에서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전시되어 활동하고 있다.
‘아시모’는 일본 만화 속 상상의 로봇 ‘우주소년 아톰(鉄腕アトム)’을 실제화하기 위한 인류의 과학기술 연구, 개발에 획기적인 전망을 제시한 로봇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AI 기술과 함께 더욱 확장된 개념의 로보틱스 연구와 개발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전승일 계원예술대학교 공간연출과 겸임교수
- 저작권자 2019-03-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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