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은 미생물(Microbe)과 생물군계(Biome)의 합성어로 '미생물 생태계'를 뜻한다. 혹은 미생물의 군집을 뜻하는 마이크로바이오타(Microbiota)와 그 미생물들의 유전체 전체를 뜻하는 메타게놈(Metagenome)을 합친 용어라고도 한다. 우리 몸(피부, 입 속, 위, 장, 호흡기, 생식기 등)에는 100조 마리 이상의 미생물이 살고 있는데, 이 모든 미생물과 이 미생물들의 유전정보 전체가 바로 마이크로바이옴이다.
왜 주목받기 시작했나
1990년 인간게놈프로젝트를 통해 인간 유전체 분석을 완성했을 때 노화와 질병에 대한 궁금증이 다 풀릴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인간게놈은 단순했다. 초파리와 비슷한 2만개 정도의 유전자만 갖고 있었던 것이다. 과학자들은 게놈만으로는 인체의 복잡성을 설명하는 데 부족할 것이라 생각하였고, 인체 내에 존재하는 미생물과 그 미생물의 유전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2001년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의 데이비스 교수는 인체에 살고 있는 1,000여 종의 균들과 이 균들의 400만개에 이르는 유전자 정보를 통해 사람의 건강과 질병을 이해할 수 있다고 사이언스지에 기고했다. 그 외에도 마이크로바이옴과 질병 간의 관련성을 보이는 연구들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을 예로 들어 보자. 우리 몸에 존재하는 미생물 중 95%가 장을 포함한 소화기관에 밀집되어 있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은 유전적 요인, 식단, 약물복용 등 다양한 요인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데, 이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불균형이 질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대표적인 질환으로는 염증성 장질환, 과민성 장 증후군과 같은 소화기 질환이 있고 비만, 당뇨병, 자폐증, 파킨슨병 등이 있다. 이 병들은 모두 현대 의학 기술로도 완치가 어려운 질환들이다. 마이크로바이옴의 균형을 맞춰줌으로서 이 병들을 치료할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마이크로바이옴에 주목하는 이유다. 또한 관련 논문에 따르면,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질병의 90% 이상이 장내 마이크로바이옴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마이크로바이옴의 역할
마이크로바이옴은 우리 몸에서 영양분 흡수, 약물대사 조절, 면역작용 조절, 뇌 및 행동 발달 조절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떻게 가능한 걸까? 예를 들어 장내에 서식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은 우리가 갖고 있는 유전자보다 150배 이상 많은 유전자를 품고 있다. 덕분에 사람이 생산할 수 없는 다양한 효소들을 생산하여 우리가 스스로 분해할 수 없는 영양소를 분해하여 흡수할 수 있게 도와준다. 영양소뿐만 아니라 약물이나 발암물질도 분해시켜준다. 이러한 중요성으로 마이크로바이옴을 ‘제2의 장기(forgotten organ)’라고 말하기도 한다.
마이크로바이옴의 균형을 잘 유지하려면
외부적 요인들로 인해 마이크로바이옴의 균형이 깨질 수 있다. 예를 들어, 항생제를 오랜 기간 복용하게 되면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균형을 파괴한다. 이로 인해 클로스트리디움(Clostridium difficile)과 같은 병원균이 과다하게 성장하게 되면 염증반응을 증가시키고 장염에 걸리게 된다.
약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도 영향을 미친다. 패스트푸드, 짠 음식, 인공 감미료, 탄산 음료, 술과 같은 특정한 음식도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을 변화시켜 균형을 잃게 한다. 요즘 설탕 대신 인공 감미료를 첨가하여 칼로리를 대폭 낮춘 제로 음료, 제로 과자, 제로 술, 제로 탕후루 등이 인기를 끌고 있어 필자는 개인적으로 걱정이 많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의 균형을 잘 유지하려면 프리바이오틱스가 함유된 음식을 먹고 규칙적인 배변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프리바이오틱스는 유익균의 먹이가 되는 영양분이다. 프리바이오틱스가 함유된 식품으로는 바나나, 사과, 고구마, 양파가 대표적이다. 또한 발효식품에도 프리바이오틱스가 자연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다. 김치, 된장, 요거트를 꼽을 수 있다. 규칙적인 배변을 위해서는 대변을 부드럽게 하는 섬유질이 포함된 콩, 귀리, 통곡물이 도움이 된다.
마이크로바이옴의 활용
마이크로바이옴을 이용한 대표적인 제품은 우리 장에 존재하는 유익균에서 유래한 ‘프로바이오틱스’와 프로바이오틱스의 먹이인 '프리바이오틱스'이다. 장 건강 뿐만 아니라 비만, 아토피, 탈모 등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제품들도 있다. 지금은 주로 소비자가 유산균을 선택해서 섭취하지만 앞으로는 개인의 마이크로바이옴 상태(균총 다양성, 균총 균형, 유익균과 유해균 분포도 등)를 측정하여 그에 맞는 유산균을 추천 받아 섭취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도 있다. 피부 층에 존재하는 마이크로마이옴 균주를 활용하여 피부 건강에 도움을 주는 원리이다. 유수의 화장품 회사에서 개인 피부 상태를 측정하여 이에 맞는 맞춤형 마이크로바이옴 화장품을 개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치료제이다. 2023년 6월, 세계 최초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가 미국에서 출시되었다. 세레스 테라퓨틱스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먹는 마이크로바이옴 치료제 ‘보우스트’이다. 재발성 크로스트리디움 디피실 감염증(CDI, Clostridium Difficile Infection)이라는 난치성 질환 치료제로, 출시 4개월 만에 100억원 매출을 돌파했다.
국내외 굴지의 제약사, 바이오벤처들이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과민성 대장 증후군, 크론병, 대장염과 같은 소화기 질환 뿐만 아니라 감염성 질환, 당뇨병, 간질환, 아토피 피부염, 자폐증 등 현재 의약기술로 속시원히 해결되지 않은 질병을 타겟으로 하는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다. 어떤 새로운 약물을 몸에 투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이크로바이옴 생태계 불균형을 완화시키는 새로운 개념의 치료제에 기대를 아니 할 수가 없다.
- 젠엑시스 투자본부 이지현 팀장
- 저작권자 2023-12-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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