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을 건너기 위해 수영의 모든 자세를 익힐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먼저 물에 들어가고 손발을 휘저으면서 개선할 부분을 찾는 것이 중요하지요. 코로나19 이후 향후 의료현장이 나아갈 바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언 가천대학교 의과대학교수는 대한민국 의료 혁신의 산증인이다. 이미 2000년대 초반 기획실 업무를 담당하며 병원 업무 전산화에 앞장서고, 얼마 전에는 AI 의사로 불리는 ‘닥터 왓슨(IBM 왓슨 포 온콜로지)’ 국내 도입을 주도하는 등 의료 현장 선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현재는 가천대 길병원에서 인공지능병원 추진단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런 그가 코로나19 이후, 대한민국 의료계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입을 열었다. AI와 ICT 기술을 적극 활용한 새로운 의료 시스템을 제시하면서다.
“AI 도입, 의료 3요소 확보에 결정적 기여할 것”
“보건 의료에 있어 철의 삼각형(Iron Triangle)이라는 중요한 개념이 있습니다. 의료의 질(Quality), 접근성(Access), 비용(Cost)이 서로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죠. 문제는 한 가지를 만족시키기 위해선 보통 다른 두 가지를 희생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특히 코로나19로 많은 의료인과 의료 시스템이 고통을 겪고 있는 시기, 이러한 3요소를 모두 확보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 교수는 바로 이 지점에서 AI를 비롯한 첨단 ICT 기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설파한다.
그에 따르면 최근 의료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데이터다. 환자의 유전자 정보, 라이프로그데이터 등 다양한 정보를 짧은 시간 안에 분석하는 것이 핵심.
“환자 1명을 보기 위해 다뤄야 하는 정보량이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그에 비해 의사 수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죠. 하지만 AI의 도움을 받으면 이 문제를 보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AI를 활용해 데이터 분석에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을 줄이는 것이 전반적인 의료 서비스의 향상으로 이어진다는 의견이다.
특히 비용에 대한 부담 없이 의료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그는 “지난 2017년 분석한 결과 닥터 왓슨 진료로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7500원 수준인 반면, 환자들의 만족도는 그 이상이었다”고 부연했다.
“집 앞 의원에서도 고퀄리티 진료 가능”
이 교수는 AI가 의사들의 실력 향상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측했다.
“AI의 도움을 통해 의사들이 좀 더 여유를 갖는 한편,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실력 향상에 더욱 힘쓸 것이라 봐요. 특히 전문가(Expert)의 경지에 오른 이들은 AI 활용으로 빠르게 자리 잡아가는 젊은 의사들과의 경쟁에서 앞서기 위해 자신만의 필살기를 만들지 않을까요.”
하지만 무엇보다 AI가 주는 가치는 바로 ‘신뢰’다. 현재 기형적으로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의료과밀을 해소시키며 전국적으로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얘기.
“소위 말하는 빅5 병원에 전국 암 환자의 70%가 몰리는 것이 현실입니다. 거기서 생기는 비효율을 사회 전체적으로 계산하면 어마어마하겠죠.”
이 교수는 “이를 해소시키기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믿음”이라며 “AI를 통해 전반적인 의료의 질을 높여, 집 근처 의원에 가더라도 유명 병원과 같은 수준의 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용과 접근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주장이다.
“의료 서비스에도 공유 개념 도입해야”
코로나 19 사태로 최근 주목받고 있는 온라인 진료도 한국 의료계가 주목해 봐야할 지점이다.
“공간이라는 제약을 뛰어넘는 온라인 진료를 잘 활용하면 접근성과 비용 측면에서 획기적으로 의료 서비스를 개선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 교수는 그 대표적인 사례로 차량을 활용한 원격의료 서비스를 꼽았다.
“이미 미국에서는 관련 시범사업을 진행 중입니다. 환자의 집 앞까지 차량을 보내 온라인으로 진료를 하고, 큰 이상이 없을 경우 바로 처방전을 발행하는 것이죠.”
한편 SNS의 적극적인 활용과 공유 서비스 도입 역시 미래 의료를 이끄는 핵심 엔진이 될 수 있다고.
“‘카카오톡’, ‘페이스톡’ 등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SNS만 잘 활용해도 접근성을 크게 강화할 수 있습니다. 지금과 같이 환자가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의사를 일방적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의사와 외부에서 약속을 잡아 미팅을 하거나 간단한 온라인 진료를 수행할 수도 있는 거죠. ‘우버’, ‘위워크’ 등 기존의 공유 서비스 개념을 의료에 접목시킨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나아가 이러한 공유 의료가 확산되면 고정된 지출로 인한 낭비 역시 줄어들 것이란 판단이다.
“결과적으로 의사들도 개원에 들어가는 비용을 절약하는 한편 공간의 제약을 넘어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됩니다. 또한 환자들은 높은 퀄리티의 진료를 보다 편리하고 저렴하게 받을 수 있으니 의료의 3요소가 모두 갖춰지는 셈이죠.”
이 교수는 이어 “데이터의 무결성(integrity)을 보장하는 블록체인, 환자의 임상정보를 어디서나 다운받을 수 있는 클라우드 등 제반기술은 다 갖춰져 있는 상태”라며 “AI의 활용,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융합 등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정년 퇴임 후에도 공유 차량을 개조한, ‘찾아가는 이언 의원’을 운영하고 싶다”며 의료 혁신의 현장에 계속 머물 것을 다짐했다. 아프리카 TV에 출연해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한편 토론회 발표 준비에도 한창이라는, 선구자의 광폭 행보는 여전히 미래를 향하고 있다.
- 김청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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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0-06-0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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