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역사를 이렇게도 조명할 수 있구나 싶은 책이 바로 ‘산소’이다.
원제목도 역시 한 단어 OXYGEN이다. 부제는 '세상을 만든 분자' (The Molecule that made the world)이다.
그러니까 산소가 지구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 이 책은 실감나고 재미있으며 매우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굳이 과학적인 설명을 하지 않아도 우리들은 산소가 동물이나 식물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안다. 식물은 산소가 있어야 광합성을 한다. 동물은 수 분 동안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뇌는 마비가 된다. 숨을 쉬지 않아 산소공급이 끊기면 불과 수 분 만에 사람들은 목숨을 잃는다.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 호흡이 가빠지는 것도 산소부족이다.
대기중 산소 비율 35%일때 공룡 번성
지구가 형성되는 초창기에는 산소가 존재하지 않았다. 산소는 지구 공기 중에 21%를 차지하지만, 이 책은 과거에는 35%를 차지했다는 흥미로운 내용도 자세히 설명했다. 산소 농도가 이렇게 높았던 시기에는 더욱 더 생명은 활발하게 타 올랐고, 공룡 같이 덩치가 큰 동물을 비롯해서 울창한 삼림이 지구상에 존재했다고 저자는 과학자들의 논문을 통해서 잘 설명해준다.
공기 중 산소농도는 공룡의 멸종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1988년 사이언스에 발표된 논문에 따르면 지구상의 산소 농도는 백악기에 35% 정도로 높아졌다가 6,500만 년 전 쯤 현재수준인 21%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산소농도가 떨어진 시기는 공룡의 대멸종 시기와 너무나 딱 들어맞았다.
이 논문을 시작으로 다양한 반박과 재 반박이 일어났으나, 결국 산소농도가 줄어든 시기와 공룡멸망의 상관관계는 여러 학자들의 논문에 의해 밝혀졌다. 6,500만 년 전에 지구상에 떨어진 운석에 의해 화재가 발생했는데, 산소농도가 높다보니 전 지구적인 화재가 일어나면서 공룡이 멸절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잇따라 나왔다.
산소는 생명을 살리는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산소는 인간의 노화와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가 바로 ‘산소 자유 라디칼’이고 ‘노화’이며 ‘항산화’이다.
산소중독은 엑스레이 피폭과 같은 메커니즘
이 책은 곳곳에 그동안 세계적인 과학저널에 실린 논문들을 인용하면서 독자들을 과학적으로 설득한다. 산소가 생명을 살리는 역할을 하지만, 인간의 노화를 일으키는 주요 원인이면서 독성이 있다는 점도 조리있게 설명했다.
이 근거로 제시한 논문이 1954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발표된 ‘산소중독과 엑스레이 피폭의 공통메커니즘’이다. 방사선으로 입는 손상과 산소의 독성으로 입는 손상은 결과적으로 매우 비슷하다는 내용이다.
책의 후반부를 많이 차지하는 노화와 질병은 산소의 독성과 깊은 연관이 있음을 보여주면서 ‘항산화제를 다량 복용해도 건강에 이롭지 않으며 오히려 해로울 수 있다’는 과감한 주장은 최근 20년간 점점 더 분명해졌다.
산소를 중심으로 생명현상을 설명하다 보니 모든 생물의 공통조상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1996년 프랑스 남부 프로방스에서 모든 생물의 마지막 공통조상인 LUCA(루카) 세례식이 열렸다. 원시생물 연구자, 분자생물학자, 고온세균학자, 미생물학자 등이 모인 세례식의 주인공인 LUCA는 LUA(Last Universal Ancestor) LCA(Last Common Ancestor)를 합친 이름이다.
‘합동선조’나 ‘원시세포’라고 할 수 있는 단세포생물다. 대략 35억 년 전이나 40억 년 전에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루카는 멸종한 것까지 포함해서 현재 알려진 지구상의 모든 생물이 나눠지기 직전의 마지막 공통조상이다. 가장 큰 특징은 공기 중에 산소가 존재하기 전부터 산소를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 수 있었다는 점이다.
루카를 기준으로 보면 모든 생물은 산소를 필요로 하므로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똑같은 조상을 가지고 있다.
산소가 생명의 탄생과 유지 그리고 노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보니 결론도 건강한 노년을 위한 합리적인 길을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의외로 단순하고 잘 아는 내용이다.
골고루 먹되 과식은 피하고, 지나칠 정도로 깨끗하게 살거나 스트레스를 너무 받지 말 것이며 금연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며 활기찬 마음을 갖는 게 제일이라고 조언한다. 생물학과 의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론은 어른들의 지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매우 평범한 결론은 과학적 지식이 별로 없는 독자들에게 작은 위안을 준다.
“15년간 살아남아서 다행이다”라는 저자 닉 레인(Nick Lane www.nick-lane.net)의 한국어 개정판 서문처럼, 2003년에 한국어판이 나왔다가 올해 번역을 보완해서 다시 발간했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발견이 쏟아지는 과학계에서 살아남은 것은 그만큼 이 책의 완성도를 보여준다.
- 심재율 객원기자
- kosinova@hanmail.net
- 저작권자 2016-12-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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