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동작과 위치를 인식해 자동으로 기기를 작동시키는 기술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신발을 신으려고 현관으로 가면 저절로 불이 켜지기도 하고 움직이는 물체가 나타날 때부터 자동으로 녹화를 시작하는 CCTV도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동작 인식형 냉난방 시스템은 아직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 사람이 있든 없든 미리 정해진 숫자에 따라 온도를 유지하기 때문에 에너지 낭비가 심한 편이다. 더운 지역에 위치한 중동 국가들은 수증기를 내뿜는 장치를 통해 특정 지점만 냉방을 하는 방식을 선택해왔다.
여기에 동작 감지 기능을 덧붙여 에너지 효율을 더욱 높이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이탈리아 연구진이 개발한 ‘클라우드 캐스트(Cloud Cast)’라는 이름의 냉방 시스템이다.

기화열 이용한 중동의 증발식 냉방 시스템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잇는 중동은 덥고 건조한 사막 기후로 인해 독특한 방식의 냉방 시스템을 선호한다. 기화열을 이용한 ‘증발식 냉방’이 대표적이다.
대다수 국가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에어컨은 공기 중의 습기를 제거해 땀을 말려주고 쾌적성을 높인다. 그러나 에너지 낭비가 많고 환기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기화열을 이용하면 에너지를 크게 소모하지 않고도 냉방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증발식 냉방(evaporative cooling)은 말 그대로 물을 증발시켜서 온도를 낮추는 방법이다. 수천 년 전 고대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증발식 냉방 장치 ‘야크찰(Yakhchal)’은 지하로 파내려간 대형 구덩이 위에 두텁고 높은 원형 탑을 세운 형태다.
그 옆으로 수로가 지나가게 해서 지하수를 흘려보내면 더운 기후에 의해 물이 증발된다. 그 에너지는 주변의 열을 흡수해서 충당하기 때문에 기화열이라 불린다. 여름 한낮에 바닥이나 얼굴에 물을 뿌릴 때 금세 시원함을 느끼는 것도 기화열 덕분이다.
증발에 의해 차가워진 공기는 야크찰로 연결되어 내부 지하공간으로 흘러들어간다. 이러한 자연적인 증발을 이용하면 건물 내부 온도를 10도 가까이 낮출 수 있다. 한겨울에 얻어낸 얼음을 일년 내내 보관하는 데도 쓰였다.
건물 지붕에 굴뚝처럼 높이 솟은 풍탑(wind tower)을 설치하는 것도 증발식 냉방의 일종이다. 굴뚝을 설치하면 대류현상에 의해 더운 공기가 위로 빠져나가게 된다. 통풍을 유도한 덕분에 바람이 불 듯이 공기가 순환하는데 굴뚝 내부에 물을 뿌려주면 기화열에 의해 서늘해진 공기가 집안으로 내려온다.
중세 페르시아에서 ‘바드기르(badgir)’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풍탑은 이제 ‘말카프(malqaf)’라는 아랍어 이름으로 변모했다. 중동 어디서나 종탑처럼 네모낳게 생긴 풍탑이 솟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동작 감지해 적절하게 수증기 쏴주는 ‘클라우드 캐스트’
중동에서 전통적으로 사용해온 증발식 냉방도 건물 내부의 온도를 낮출 뿐 바깥 활동에 큰 도움을 주지는 못한다. 이탈리아 토리노에 위치한 융합 연구소 ‘카를로 라티 아소치아티(Carlo Ratti Associati)’는 증발식 냉방을 이용해 어디서든 기온을 낮춰주는 장치를 개발해 최근 공개했다.
평평한 면에 수많은 파이프가 튀어나온 것처럼 생긴 이 장치는 천장에 설치해서 아래로 수증기를 쏘아준다. 시원한 비를 뿌려주는 구름을 만드는 것 같아서 ‘클라우드 캐스트(Cloud Cast)’라는 이름이 붙었다.
클라우드 캐스트는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제3차 거버먼트 서밋(Government Summit 2015)’과 함께 공개되어 인기를 끌었다. 양방향 학습과 가상현실 장치 등을 전시하는 ‘미래 정부서비스 박물관(MFGS)’에 설치되어 관람객들이 직접 체험하도록 했다.
일반적인 수증기 분사 장치와 다른 점은 초음파를 이용한 동작 감지 기능을 탑재하고 조명 역할도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지나가면 초음파를 발사해 되돌아오는 정보를 센서가 감지하고 적절한 위치에 수증기를 내뿜는다. 기화열에 의해 해당 장소의 온도만 급격하게 내려가는 것이다.
동시에 여러 명이 지나가도 문제 없이 감지해 수증기를 발사한다. 에어컨을 가동시켜 방 전체의 온도를 낮출 필요가 없어 에너지 소모량도 크지 않다.
야외에도 설치 가능한 이동식 냉방장치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두바이는 연중 기온이 40도에 육박하는 사막 기후에 위치해 있다. 밤에도 30도 가까이 유지되기 때문에 어느 곳이든 냉방 설비가 필수적이다.
건물 내부의 냉방은 해결할 수 있지만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야외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연구소 측은 홈페이지를 통해 “이동식 천막의 천장에도 클라우드 캐스트를 설치할 수 있어 언제 어디서든 냉방 효과를 누린다는 것이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만화영화에서처럼 머리 위로 구름을 몰고 다니는 셈이다.
클라우드 캐스트는 조명 기능도 겸비하고 있다. 초음파 센서가 사람의 이동 속도를 감지하면 방향과 시간을 예측해 필요한 위치에 LED 조명을 켜준다. 사람이 있을 때만 불을 켜고 온도를 낮춰서 쾌적함은 유지하되 에너지 낭비는 막는다.
카를로 라티 연구소장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동작을 감지하는 반응형 시스템이라서 에너지 절약에 큰 도움이 된다”고 소개하며 “중동에서 수백 년 동안 사용하던 전통적인 냉방법을 되살렸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기술 개발을 통해 일반용 제품까지 개발할 예정이다.
카를로 라티 아소치아티 융합 연구소는 최신 기술과 디자인을 결합시킨 새로운 개념의 제품과 건축물을 선보여왔다.
2012년에는 스마트 기기와 부엌 시스템을 연결시킨 ‘커넥티드 키친(Connected Kitchen)’을 개발했다. 2013년 행인들의 동작을 감지해 수많은 미세조명을 조절함으로써 도시의 야경을 만드는 ‘파사주 뤼미에르(Passage Lumière)’를 공개했다.
지난해에는 행인들이 찍은 셀카를 매직펜을 이용해 캐리커처 형태의 자화상으로 벽면에 그려주는 ‘파이브 미닛 셀피(5MinuteSelfie)’를 실제로 설치해 눈길을 끌었다. 태블릿 기기나 웨어러블 팔찌를 이용해 자신의 체질에 맞는 재료를 선택하면 로봇 팔이 칵테일을 제조해 서빙하는 ‘퀀텀 오브 더 시즈(Quantum of the Seas)’ 시스템을 개발하기도 했다.
- 임동욱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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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2-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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