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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황정은 객원기자
2014-07-24

단백질의 새로운 상호작용을 밝히다 [인터뷰] 서정용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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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널리 사용되는 항체. 이는 질병과 관련한 단백질 등에 높은 친화력을 보이기 때문에 단백질에 특이적으로 결합하곤 한다. 그러나 단백질 복합체인 만큼 크기가 비교적 크고 조직 투과 효율이 다소 낮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외부항원처럼 작용할 수 있다는 단점이 지적되곤 했다. 항체 생산과정이 복잡할 뿐 아니라 생산과정과 비용도 높다는 것도 한계 중 하나였다.

이로 인해 항체를 대신할 수 있는 작은 크기의 항체 대용 단백질과 펩타이드가 연구진들 사이에서는 주목을 받았다. 펩타이드는 생산단가가 낮고 면역반응을 잘 일으키지 않으며 합성을 통해 생산되므로 변형이 쉽고 높은 순도의 제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쉬운 활용을 위해서는 낮은 친화력과 특이성, 단백질 가수분해 효소에 의한 불안정성 등의 한계점을 극복해야 한다는 과제가 놓여 있었다.

펩타이드 중에서도 앱타이드(Aptide, APT)는 다양한 표적인자에 대해 높은 친화력과 선택성을 보이고 있어 질병 마커 및 치료제로 개발 중에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펩타이드가 어떻게 표적에 대한 높은 친화력을 얻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3차 구조 무너뜨리면 결합하는 단백질

서정용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교수 ⓒ 서정용
서정용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교수 ⓒ 서정용

국내 연구진이 단백질의 새로운 결합방식을 찾아냈다. 서정용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교수팀이 해당 연구를 진행, 단백질이 변형되면서 내부에 숨겨져 있는 부위를 인식해 서로 상호작용하는 모습을 포착했다.

“단백질은 통상 3차원 구조상 표면에 드러난 특정 부위를 서로 인식하는 방식으로 결합합니다. 하지만 정교한 3차원 구조의 단백질은 대사활동과 호흡, 신경전달 등 생명현상을 위한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기 위해 특정한 단백질하고만 복합체를 형성해요. 이 때 단백질은 상대의 3차원 구조를 인식하기 때문에 통상 기존구조를 이용하거나 또는 결합하면서 새로운 3차원 구조를 형성하는 사례가 많이 보고되고 있습니다. 저희 팀의 연구는 단백질이 서로 결합하는 과정에서 기존에 알려져 있지 않던 새로운 방식을 사용하는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그 결합 방식의 구조적 특성을 규명했죠. 즉, 이미 잘 만들어져 있는 단백질의 3차 구조를 일부 무너뜨리고 그로 인해 노출된 단백질 내부를 인식했습니다.”

서정용 교수에 따르면 단백질은 자신의 아미노산 서열에 따라 고유의 3차원 구조로 접히도록 프로그래밍 돼 있고 이렇게 접힌 구조를 선택적으로 인식해 기능을 수행한다. “단백질이 상호작용해 결합한다 말은, 3차원 구조상에서 겉으로 드러난 표면을 인식하고 서로 들어맞는 방향으로 결합한다는 뜻입니다. 저희 팀의 연구에서 단백질은 결합하며 3차구조의 한 쪽 벽이 무너지고 이 붕괴로 인해 단백질 내부의 소수성 부위가 노출됐어요. 헌데 특이하게도 새롭게 노출된 부위를 인식하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서정용 교수팀은 종양마커 EDB와 앱타이드 복합체의 입체구조를 분석한 결과 특이하게 접혀진 단백질의 3차 구조가 일부 풀어지면서 노출된 내부부위를 인식해 서로 결합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종양마커 EDB란 암의 전이 등을 진단하는 마커로 이용되는 단백질이다.

“단백질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자신의 구조를 흩트리지 않고 생긴 그대로를 인식하는 방식(rigid body docking)을 말할 수 있어요. 이 경우 매우 빠르게 상대방을 인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구조 변화에는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이에요. 두 번째로 자신의 구조가 변화하며 결합하는 방식(conformational change)이 있습니다. 여기서 구조 변화란 정해진 구조에서 다른 구조로 바뀐다는 뜻으로 단백질 구조의 변화는 서로 멀리 떨어져 있는 활성부위를 가까이 가져오기 때문에 이전에 나타나지 않던 새로운 효소반응이 가능해집니다. 세 번째로 없던 구조가 새로 생겨나는 방식이 있어요. 이는 단백질이 혼자 있을 때는 3차원 구조 없이 풀어져 있다가 결합하면서 새로운 구조가 나타나는 방식(coupled folding and binding) 입니다.”

하지만 서정용 교수팀은 3차 구조를 무너뜨리는 새로운 방식을 발견했다. 서정용 교수는 “앞서 단백질 결합에 3차원 구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듯, 단백질 결합이 생체 내 중요한 신호전달에서 의미를 가지려면 뚜렷한 결합 구조가 필요하다. 따라서 단백질은 기존의 접힌 구조를 그대로 사용하거나 조금 변형해 결합에 사용할 것으로 예상됐고, 또 그렇게 관측돼 왔다. 때문에 반대로 이미 잘 만들어진 구조를 풀어버리며 결합하는 방식은 예상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아무도 예상하거나 추측하지 못했던 방식이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해 서정용 교수는 어떻게 발견할 수 있던 걸까. 연구 초기, 서 교수는 단백질이 기존 구조를 유지하거나 일부 변형하며 결합하는 방식을 예상했고 그렇게 구조를 결정해 가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 실험 데이터가 기존 구조와 도저히 양립할 수 없게 나타나면서 이에 의심을 갖기 시작했고 결국 모든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처음 구조의 일부가 풀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정용 교수팀은 핵자기공명분광법을 이용, EDB 단백질 홀로는 병풍처럼 잘 접혀진 구조지만 앱타이드와 결합하면 끝부분의 병풍 같은 접힘이 풀어지는 것을 관측했다. 이 같이 접힘이 풀어지면서 내부의 소수성 잔기가 노출되면 이를 앱타이드가 특이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단백질 결합, 생각보다 다양성 가져

EDB와 APT의 결합방식 모식도(저널 속표지 그림). EDB의 C-말단 구조가 풀리고 안쪽의 소수성 부위가 노출되며 APT와 결합하는 방식을 마치 문이 열리며 안쪽을 바라보는 것처럼 표현한 그림이다. ⓒ 한국연구재단
EDB와 APT의 결합방식 모식도(저널 속표지 그림). EDB의 C-말단 구조가 풀리고 안쪽의 소수성 부위가 노출되며 APT와 결합하는 방식을 마치 문이 열리며 안쪽을 바라보는 것처럼 표현한 그림이다. ⓒ 한국연구재단

서정용 교수팀의 이번 연구는 높은 기술력을 요구한 연구라기보다 발상의 전환이 큰 역할을 차지한 사례다. 즉, 기존 연구의 한계를 상상력을 극복한 셈이다. 그는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단백질의 결합 방식이기에 사고의 틀을 깨고 오로지 실험 결과만 믿고 따라가며 새 모델을 만드는 방법으로 극복했다”고 언급했다.

“저희 팀의 연구는 단백질 결합이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한 것 보다 더욱 큰 다양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어요. 새로운 결합방식을 이해하면 기존에 설명되지 않던 현상에 대해 답을 구할 수도 있고 결합하며 구조가 풀리는 특성을 분자 스위치 등에 응용해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서정용 교수팀이 이번 연구를 진행한 것은 항체 대용으로 개발된 저분자 펩타이드인 앱타이드의 표적 인식 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시작했다. 앱타이드가 종양 마커 단백질인 EDB와 결합하는 방식을 알면 표적 단백질에 대한 친화력과 선택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더불어 이는 곧 장기적으로 암 진단과 치료제 개발을 앞당기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연구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상식을 깨는 일이었습니다. 단백질이 결합하는데 왜 구조가 파괴돼야 하는지 이성적인 저항이 많았어요. 실험결과를 설명하려면 구조를 무너뜨릴 수밖에 없었고 이 결합방식을 증명하기 위해 많은 추가 실험이 있었습니다. 전체 연구 기간에서 보자면 상식을 깨는 과정이 70% 걸렸고 이를 증명하기 위한 실험이 30% 걸린 것 같습니다.”

단백질 결합방식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를 한 층 넓힌 연구. 앞으로 연구진은 해당 연구에서 밝혀진 결합 방식이 다른 단백질에서도 관측되는지 조사할 계획이다. 단백질의 접힘과 결합 사이의 관련성이 활발히 밝혀지고 있는 만큼 기초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는 게 서정용 교수의 설명이었다.

“대학원생과 함께 한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어 기쁩니다. 추후 연구 후속으로 결합과정에 대해 더욱 자세한 메커니즘 연구를 진행하고 있어요. 구조가 무너지는 원인이 어디서 오는지 규명하고, 이 특성을 다른 단백질에 인공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면 더욱 넓게 응용할 계획입니다.”

황정은 객원기자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4-07-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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