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에는 방송국이 있다. 부글거리는 플라스크들과 두꺼운 안경을 낀 엔지니어들만 잔뜩 있을 것 같은 곳에 웬 방송국이 있을까 싶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지금까지 무려 30회가 넘는 방송이 만들어졌다고 하니 생각보다 꽤 건실한 방송국인 것만 같다.
그런데 30회가 넘게 제작되었다고 하는 규모보다 더 놀라운 것은 방송의 내용이다. 제작하는 곳이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라니 딱딱하고 어려운 과학, 공학 얘기나 교육방송, 인터넷 강의에서 나올법한 내용을 떠올리기 쉬울 것이다. 하지만 사실 이들의 방송 내용은 이런 것과 매우 거리가 멀다. 분명 출연진은 공대생과 교수님을 비롯한 ‘과학자’들이 맞다. 하지만, 정작 공대생이랍시고 방송에 나온 출연자는 실험이나 과학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전자레인지로 치즈 쿠키를 만들거나, 수준급의 요가를 보여준다.
왜 대학 학과에서 팟 캐스트 제작할까?
이 방송의 정체는 학과에서 자체적으로 제작하고 있는 ‘팟 캐스트’다.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는 2015년 4월부터 시작해서 33회가 넘게 팟 캐스트를 제작해오고 있다. 매 회 20여분 정도 지속되는 이 방송은 학과의 지원을 받으며 제작된다는 점에서 조금 특별하다. 팟 캐스트나 인터넷 방송이 기존의 라디오나 공중파 방송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 바로 특정 단체나 기관에 의해 제작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제작하고 제공하는 매체라는 점이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대학의 학과가 나서서 공익적인 내용이나 연구 성과를 홍보하는 목적이 아닌 팟 캐스트를 제작하게 된 걸까? 팟 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는 현석원 신희원(생명화학공학과 대학원생, 아래 사진) 씨를 만나봤다.
처음 팟 캐스트가 제작될 때부터 함께 했다는 현석원 씨는 "학과에서 지원을 받아 제작하는 방송이라서 내용의 방향을 정하는 데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놓는다. 이 방송의 시작은 사실 새로운 강의의 형태로 팟 캐스트를 이용해보면 어떨까 하는 한 교수님의 제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동영상 형태의 온라인 강의는 기존에도 많이 제공되고 있고, 시험기간에 단기적으로 학과 소속 학생들에게만 유용할 것이라는 게 마음에 걸렸다고 한다. 좀 더 재미있으면서 학과 외부의 사람들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내용을 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더 유익하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좀 더 재미있고 실용적인 내용 위주로 팟 캐스트를 제작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신희원 씨는 사실 진행자이기 이전에 팟 캐스트에 게스트로 출연한 적이 있다. 게스트로 출연한 것이 인연이 되어 뒤늦게 두 번째 진행자로 합류하게 된 것인데, 이 때 본인 스스로도 연구하고 있는 내용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유학 생활에 관한 조언을 전했다.
요리 운동 여행 유학 등 다양한 방송 내용 담아
방송에 출연하는 사람들은 신 씨의 경우처럼 대학원생을 비롯해서 교수님, 연구소의 연구원, 학과에 세미나를 하러 방문한 유명인사까지 다양하다. 이렇게 출연자의 범위가 넓은 만큼 방송에서 전하는 내용도 매우 다양하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요리, 운동, 여행과 같은 취미생활이나 유학, 학교생활과 같은 정보를 전하는 경우도 많고, 연구와 관련된 내용을 방송에 담을 때도 있다. 재미있는 연구 주제를 출연자가 스스로 소개하는 경우도 있고, 학과에서 세미나가 열리는 경우 강연을 통해 전하지 못한 내용을 추가적으로 팟 캐스트 방송을 통해 소개하는 경우가 그렇다.
이들의 방송은 분명 ‘팟 캐스트’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사실 ‘인터넷 방송’에 더 가깝다. 음성만 녹음하면 되는 팟 캐스트보다 영상 작업을 하려면 시간이나 노력이 좀 더 들 수도 있겠지만, 두 사람은 다른 곳에서 듣기 어려운 이야기, 만나기 어려운 분들을 소개하는데 음성으로만 전달하는 건 너무 아깝다고 얘기한다. 이들은 모두 바쁜 대학원 생활 중에 시간을 쪼개어 방송을 촬영하는 것이 힘들기도 하지만, 주변에서 방송을 보고 재미있다, 방송에서 전한 내용이 유용했다는 말을 들으면 정말 뿌듯하다고 말한다.
신희원 씨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공대생, 특히 카이스트 학생이라고 하면 사회성이 떨어지는 천재, 혹은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nerd’의 이미지를 떠올리는데 사람들의 이런 편견을 깨는 데 우리 방송이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녀의 말처럼, 이들은 산발한 머리에 얼룩진 실험복을 입은 모습이 아닌, 분리수거 하러 나온 옆집 사는 오빠, 언니 혹은 형, 누나로서의 과학자, 공학자를 보여주고 있다. 과학자가 먼저 나서서 누구나 과학을 할 수 있고 과학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목소리를 낸 것이다. 이들이 소개시켜 줄 다양한 과학자와 공학자들의 모습을 계속 기대해봐도 좋을 것 같다.
카이스트 생명화학공학과 팟캐스트는 학과 홈페이지(http://cbe.kaist.ac.kr/ab-1169)와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channel/UCYXbKd-Av3_mU48TnNruFqg)을 통해 볼 수 있다.
- 박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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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6-02-0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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