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하버드 의대 조지 처치(George Church) 교수 연구팀은 ‘크리스퍼(CRISPR)’란 이름의 효소(유전자 가위)를 사용해 인간 세포 속의 DNA를 자르고 짜맞출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이 기술에 주목한 과학자들은 생태계에도 이를 적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제초제에 강한 내성을 제거한 잡초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어 말라리아에 강한 내성을 지닌 모기를 퍼뜨리기 시작했다. 이른바 ‘유전자 드라이브(gene drive)’ 기술을 말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기술을 적용해 실험실에서 양육한 새로운 곤충들이 잇따라 등장했다. 대부분의 연구는 모기 같은 해충 내에 치사유전자(lethal genes)를 효율적으로 배치해 정상적인 수명 이전의 개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데 집중됐다.
“쥐를 박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종 개발”
그리고 지금 연구 흐름이 포유류로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농작물 등을 훼손하는 토끼, 쥐 등 설치류 등을 박멸하는 것이 아니라 해가 없는 새로운 혈통을 개발하는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3일 ‘사이언스’ 지에 따르면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 대학(UCSD) 연구팀은 지난 7월 4일 생물학 분야 아카이브인 ‘바이오 아카이브(bioRxiv)’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그동안 설치류에 ‘유전자 드라이브’ 기술을 적용, 새로운 혈통을 개발해왔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야생 토끼, 야생 쥐와 같은 농작물을 훼손하는 설치류를 박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혈통을 개발해 인간과 공생 관계를 이루는데 초점을 두고 연구를 진행해왔다”고 전했다. 그러나 곤충과 비교해 충분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는 발표다.
유전학자인 킴블리 쿠퍼(Kimberly Cooper) 교수가 이끈 이번 연구 논문 제목은 ‘Super-Mendelian inheritance mediated by CRISPR/Cas9 in the female mouse germline’이다.
특히 이번 연구에는 3년 전 초파리에 ‘유전자 드라이브’ 기술을 적용해 큰 성과를 거둔 에탄 비어(Ethan Bier) 교수, 발렌티노 간츠(Valentino Gantz) 교수 등이 참가했다. 이들은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데 반대했지만 최종 협의를 거쳐 논문 게재에 동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UCSD 연구팀은 과거 ‘유전자 드라이브’ 기술이 유전자의 임의배열(random assortment)보다는 특정한 대립형질(particular allele)을 전달하는데 더 큰 관심을 기울여왔기 때문에 기술 전반에 많은 오류가 발생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대립형질이란 쌍이 되는 유전자를 말한다. 나팔꽃 빛깔의 붉은색과 흰색, 초파리 날개의 정상 모양과 흔적날개는 쌍이 되는 대립형질이다. 각각 정상을 의미하는 우성과 비정상을 의미하는 열성으로 구분한다.
진화생물학계 크게 반발 ‘규제 촉구’
임의배열이란 동물의 난자·정자 등 생식세포 형성과정에서 일어나는 염색체대합 과정 중 발생한다. 모든 염색체가 각각 세포핵으로부터 이동하면서 특별한 쌍을 형성하지 않고 무작위로 양쪽으로 분리되는 것을 말한다.
연구팀은 그동안 성공을 거둔 곤충을 대상으로 한 ‘유전자 드라이브’와는 달리 포유류를 대상으로 한 이번 연구에서는 대립형질보다 임의배열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쥐를 통해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실험이 성공을 거둘 경우 다른 동물, 더 나아가 사람의 유전형질에 변화를 줄 수 있을 전망이다. 연구팀은 또한 향후 요구되는 새로운 유전자형(genotype)에 대한 요구에 충족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수의 형질을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현재 멜라닌 색소와 관련이 있는 티로신 (tyrosine) 유전자를 복제한 후 다른 흰색 쥐에 이식해 털 색소를 변화시키는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CRISPR/Cas9 유전자 드라이브’ 시스템이 완성된 단계는 아니다.
연구팀은 또한 새로운 임의배열 방식을 통해 돌연변이 유전자를 만들고 있다. 이를 통해 농작물을 해치는 등의 사람과 불화를 일으키는 야생 쥐의 형질을 순화시켜 인간과 공존할 수 있는 쥐의 유전인자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번 연구와 관련, 동물질환 연구기관 미국 ‘잭슨 연구소(Jackson Laboratory)의 수석 연구원인 마이클 와일즈(Michael Wiles) 박사는 “UCSD의 연구가 향후 동물질환 연구에 매우 유용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또 “향후 연구를 통해 적어도 6개 유형의 새로운 쥐를 만들 수 있다”며 “최종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까지 5년이 채 안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이와 함께 “사람의 질병 역시 이 쥐 실험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무분별한 ‘유전자 드라이브’가 지구 생태계를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MIT 미디어랩의 진화생물학자 케빈 에스벨트(Kevin Esvelt) 박사는 “새로운 종이 생태계를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새로운 종이 자연에 유포될 경우 당초 의도와는 다른 혼란을 생태계에 초래할 수 있다”며 “관계 당국을 통해 ‘유전자 드라이브’에 대한 규제 조치가 서둘러 실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UCSD 측은 “새로운 종이 번식할 수 있는 기간을 수 세대로 단축해 생태계에 피해를 주지 않고 적응할 수 있는 방법 등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농업계는 UCSD의 입장을 적극 옹호하고 있는 중이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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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7-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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