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은 주로 위생과 에너지 분야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서는 경제 사정이 여의치 않는 나라들의 과학 교육에 도움이 되는 장비의 제작에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그 적용범위를 넓혀가고 있다.
디지털 기술 전문 매체인 디지털트렌즈(Digitaltrends)는 미국의 과학자들이 과학 교육 장비가 부족한 나라의 학생들을 위해 아주 저렴한 현미경을 개발했다고 최근 보도하면서, 이 현미경 가격은 단돈 1달러에 불과하지만 성능 면에서는 기존의 현미경에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저렴하지만 제 기능을 가진 종이로 된 현미경
현미경은 의료나 생물학 연구에 꼭 필요한 장비다. 특히 각종 병원성 세균이 옮기는 전염병으로 수백 만 명이 죽어가는 가난한 국가의 경우는 더욱 절실한 장비다. 그러나 괜찮은 수준의 현미경을 사려면 그 가격이 만만치 않다. 더군다나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려운 나라에서는 한낱 사치품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들을 위해 추진되고 있는 ‘폴드스코프 프로젝트(www.foldscope.com)'는 특별하다. 폴드스코프 프로젝트는 종이로 만든 현미경을 개발도상국이나 제 3세계 등에 보급하는 캠페인을 말한다.
현미경이라고 하면 흔히 금속 재질과 렌즈를 떠올리게 된다. 하지만 폴드스코프는 종이를 접어 만드는 현미경이다. 제작하는 방법도 간단하다. 도면을 인쇄한 다음 선에 따라 접기만 하면 된다.
종이로 만든 현미경이라고 해서 장난감과 같은 현미경일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배율이 2000배 이상이나 되는 진짜 현미경이다. 이 정도 배율의 현미경이면 관찰하려는 시료에 말라리아균이 있는지 없는지 정도는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수준이다.
폴드스코프는 납작한 종이 모양을 하고 있다. 종이로 된 스캐폴드(scaffold), 즉 지지대 안에 렌즈와 배터리, 그리고 LED 전등이 정렬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현미경의 슬라이드는 그 사이로 들어간다.
관찰한 대상이 병원성 세균일 경우도 있기 때문에, 폴드스코프는 모두 1회용으로 만들어져 있다. 따라서 비용도 그만큼 저렴하다. 렌즈는 0.56달러이고, 배터리는 0.06달러다. 또한 LED 전등도 0.21달러이기 때문에 모두 합해봐야 0.97달러에 불과하다.
작동 방법도 매우 간단하다. 눈썹이 렌즈에 닿을 정도의 거리로 눈을 폴드스코프에 대고 관찰하고 싶은 물체를 보면 된다. 초점이 맞지 않으면 두 손으로 폴드스코프를 잡고, 양쪽 검지와 중지로 슬라이드를 상하좌우로 밀면서 맞추면 된다. 그러면 이내 눈앞에 초미세의 세계가 펼쳐지게 된다.
특히 유치원 학생들도 손쉽게 조립할 수 있는 덕분에, 아이들이 생물이나 물질의 구조 등을 공부할 때, 흥미를 유발시키기에 적합하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런 장점 때문에 최근 테드(TED)와 페이스북 등에서는 아이들을 위해 마련한 과학 행사에서 폴드스코프를 쓰기도 했다.
폴드스코프는 관찰 용도에 맞게 여러 형태로 개발되어져 있다. 밝은 장소는 물론, 어두운 곳에서도 관찰할 수 있다. 이 뿐만이 아니다. 다양한 용도로 구성되어 있는 기존 현미경들처럼 형광·편광 현미경 및 투사형 현미경 등 제대로 구색이 갖추어져 있다.
또한 폴드스코프는 휴대성과 내구성 면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자랑한다. 종이가 주요 재질이기 때문에 폴드스코프의 무게는 연필 한 자루의 무게도 안 된다. 그래서 그냥 주머니에 넣고 다녀도 사용자는 전혀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내구성면에서도 폴드스코프는 발로 밟거나 높은 곳에서 떨어 뜨려도 여전히 현미경 역할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다.
과학교육의 민주화를 위한 도구로 활용
간단하지만 획기적인 발명품인 이 종이접기 방식의 현미경은 미 스탠포드대의 마누 프라카시(Manu Prakash) 교수와 그가 이끄는 연구진이 개발하였다. 연구진의 당초 개발 목표는 개발도상국이나 제 3세계 사람들의 질병 진단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저렴한 현미경의 개발이었다.
프라카시 교수는 “현미경이 부족해 병원성 세균의 감염 여부를 알 수 없다고 말하면 대부분 황당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하며 “그러나 아프리카 같은 지역에 1대의 현미경을 보낼 때 현미경 가격에 운송비용까지 합하면 적어도 1000 달러에서 많게는 1만 달러가 드는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만들어진 폴드스코프를 프라카시 교수와 연구진은 아프리카와 동남아 지역에서 질병 진단 도구로 쓰여질 수 있도록 열심히 보급하고 있다. 그런데 연구진이 폴드스코프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이 프로젝트에 관심을 갖는 대상이 경제적으로 낙후된 국가 외에 선진국의 학교 등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연구진은 곧 자신들의 발명품이 차세대 과학자로 성장할 어린이들을 고무시킬 수 있음을 깨달았다. 프라카시 교수는 “조잡해 보였던 현미경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 속에서 나타나는 초미세의 놀라운 세계가 어린이들을 폴드스코프의 고객으로 이끈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프라카시 교수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폴드스코프는 과학 교육용으로 적합한 발명품이다. 종이접기 놀이하듯 수업 시간에 재미있게 만들 수 있고, 장난치다 망가뜨리거나 깨뜨릴 염려도 없기 때문에 일석이조인 교재다.
또한 폴드스코프는 경제적이고도 친환경적이다. 학교에서는 비싼 돈을 들여 현미경을 대량으로 구입할 필요가 없고, 사용한 종이 현미경은 재료를 별도로 분리하여 재활용하면 되기 때문에 환경에도 이로운 제품이다.
한편 스탠포드대학은 폴드스코프를 해마다 10억 개 이상 생산하겠다는 계획을 최근 밝혔다. 그리고 이를 위해 ‘현미경 1만개 가입(Ten Thousand Microscopes signup) 프로젝트’를 추진 중에 있다. 현미경 1만개 가입 프로젝트란 폴드스코프를 테스트하고 성능을 함께 개선해 나가는 개방형 연구 프로젝트를 의미한다.
또한 이 대학은 과학자와 교사, 그리고 학생들을 모아서 폴드스코프를 이용한 과학 실험을 진행하며, 폴드스코프 제작에 사용될 새 프로토콜도 함께 개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계획에 대하여 프라카시 교수는 “글로벌 의료 문제와 함께 과학교육의 고른 혜택을 해결할 수 있는 과학의 민주화에 폴드스코프가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과학교육의 민주화를 위해 스탠포드대 연구진이 바라는 사항은 모든 생물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부록으로 폴드스코프를 제공하는 것이다. 즉 종이 현미경이 달려 있는 생물책이 제작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그렇게 되면 지식을 전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지식을 얻는 방법도 전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 김준래 객원기자
- stimes@naver.com
- 저작권자 2014-10-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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