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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생명 혹은 기억의 입자 ‘프리온’ 광우병을 넘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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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에 대한 좀더 정확한 사실과 정보를 전달하고자 사이언스타임즈는 ‘광우병을 넘어’를 기획했다. 학술적 관점에서 광우병과 관련된 이야기를 총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이를 통해 프리온과 분자생물학, 멘덴유전학, 다윈 진화론의 관계, 단백질과 핵산의 세계 등 좀더 전문적인 내용의 과학정보를 접할 수 있다.

광우병을 넘어 자기 복제하는 단백질이라는 이슈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명제에 재미있는 문제를 제공한다는 점은 이미 살펴보았다. 하지만 프리온의 자기복제성은 자연선택이라는 진화의 메커니즘 외에도 최초의 생명이 무엇이었는가에 관한 문제를 제기한다.

최초의 세포가 등장하기 전까지 지구는 자기 복제하는 RNA에 의해 지배되었을 것이 ‘RNA 월드 가설(RNA world hypothesis)’의 핵심이다. 이는 정보를 저장한다는 점 이외에는 특별한 기능이 없는 DNA와는 달리 RNA가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고 효소의 기능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기된 가설이다. 1986년 월터 길버트(Walter Gilbert)에 의해 제기된 이 가설은 생물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지구상 생명 탄생의 가장 가능성 높은 이론이다.

단백질과 핵산의 세계

실험실에서 재현이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과학자들이 최초의 생명이 가진 형태에 관한 많은 가설을 제시했다. 2000년에는 ‘펩타이드 우선 가설(peptide first hypothesis)’이 등장했다.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RNA 분자가 화학적으로 불안정하고 매우 깨지기 쉽다는 약점 때문에 최초의 생명으로는 부적절하다는 것이 이 가설의 출발점이다. 펩타이드 가설에서는 효소기능을 지닌 펩타이드들의 세계가 RNA에 의해 대체되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최초의 지구는 더웠을 것이고 펩타이드도 열에 약하다는 점은 해결되지 않았다. 또한 스스로를 복제하는 기능이 단백질 조각인 펩티드에 부여되기 어렵다는 게 이 가설의 약점이다.

1986년 등장한 프루시너의 프리온 가설은 논쟁을 거듭하고 있던 무대에 전환점을 마련했다. 프리온은 자기복제가 가능한 단백질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외선이나 열에 강한 프리온의 특징은 최초의 생명이 자기 복제하는 프리온이었을 가능성에 무게를 더해준다. 정보의 저장에 탁월한 기능을 보여주는 핵산(DNA와 RNA)에 자리를 내어주기 전까지 과연 지구가 프리온에 의해 지배되었는지 아닌지 확신을 할 수는 없지만, 많은 이론 생물학자들은 그럴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억의 입자

기억이 생성되기 위해서는 새로운 단백질의 합성이 필요하다. 이렇게 새로 합성된 단백질은 시냅스를 구성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기억은 장기기억과 단기기억으로 구분된다. 장기기억과 관련된 난제가 하나 있다. 지속적으로 생성되고 사라지는 단백질의 성질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수년 동안 기억이 유지되는가 하는 점이다. 이에 관한 많은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그 중 일부는 실험으로 증명되고 있다.

현재까지 기억의 유지를 설명하는 많은 이론들이 기대고 있는 것은 되먹임 고리(feedback loop)를 이용한 네트워크 이론이다. 실제로 전사인자(transcription factor)들 간의 네트워크는 오랜 기간 동안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프리온의 자기복제성은 장기기억의 분자적 메커니즘을 설명하는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군소(Aplysia)라 불리는 바다달팽이는 기억을 연구하는 모델동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연체동물인 군소는 2000년 에릭 켄들(Eric R. Kendel) 교수에게 기억에 관한 연구로 노벨상을 받게 해준 동물이기도 하다. 군소의 신경계는 매우 단순하다. 단순하다고 해서 군소에게 기억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캔들은 군소를 이용해 세로토닌과 같은 중요한 기억과 관련된 단백질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2003년 캔들 교수는 CPEB라는 단백질이 세로토닌에 의해 조절되며 장기기억에 매우 중요하다는 논문을 셀(Cell)지에 발표한다. 이 논문은 린드퀴스트 교수가 참여한 또 다른 논문과 함께 발표되는데 린드퀴스트가 참여한 논문은 CPEB가 프리온 단백질과 비슷한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CPEB의 자기복제성이 장기기억의 유지에 매우 중요할 것이라는 점을 다루고 있다.

CPEB의 아미노 말단 부위는 프리온과 같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효모를 이용한 실험에서 CPEB가 프리온처럼 행동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아직까지 실제로 뉴런에서 CPEB가 스스로를 복제한다는 실험적 증거는 불충분하지만 가능성은 매우 크다. 특히 기억과 프리온에 관한 연구는 대부분의 퇴행성신경계 질환과 관련 있는 아밀로이드에 대한 연구와 맞물려 더욱 흥미롭다.

아밀로이드(Amyloid)란 물에 잘 녹지 않는 성질을 지니고 산이나 알칼리에 저항이 센 단백질을 일컫는 말이지만 주로 치매나 파킨슨씨 병의 원인으로 우리에게 친숙하다. 아밀로이드를 만드는 단백질들은 섬유상으로 복합체를 형성하는 경향이 강하다. 변형프리온은 정상적인 단백질을 변형시켜 아밀로이드의 특징을 나타낸다. 왜 유독 신경성 질환에서 프리온의 특징인 아밀로이드성 질환이 나타나는지는 흥미로운 주제다. 또한 프리온을 비롯한 신경성 질환의 유발 단백질들이 섬유중합체를 이룬다는 것도 재미있다. DNA의 이중나선은 DNA분자들의 섬유중합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닮은 점이 우연일지 아니면 정보의 저장이라는 측면에서 필수적인지는 현재 활발하게 연구 중인 분야다.

단백질의 기능은 다양하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그 어떤 물질도 단백질의 기능적 다양성을 따라올 수 없다. 항체, 근육, 호르몬, 산소의 운반을 비롯한 모든 생명의 주요 활동은 단백질에 의해 수행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백질이 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기능이 하나 있었다. 그것이 바로 유전정보를 전달하는 핵산의 주요 기능이다.

만약 RNA와 DNA라는 핵산 짝꿍에 의해 대체되기 전까지 자기 복제하는 단백질들에 의해 지구가 지배되었다면, 그래서 정보의 저장과 복제를 핵산에 넘겨주며 그 기능을 잃었던 것이라면, 프리온은 우리에게 그 흔적을 보여주는 물질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고등생물이 신경계를 진화시켜야하는 압력에 직면했을 때 프리온의 복제능력을 이용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의 수명이 증가하면서 겪고 있는 퇴행성 질환들은 그 진화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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