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교통사고가 발생한 현장. 혈관을 다쳐 피를 많이 흘리는 바람에 목숨이 위태로워진 환자를 의사가 사고현장에서 바로 인공혈관 이식을 하여 구조한다.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나올 만한 장면이 아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만나게 될 응급구조 현장의 모습이다.
의료과학 전문매체인 메드페이지투데이(medpagetoday)는 미 듀크대와 의료벤처기업 휴마사이트(Humacyte)의 공동 연구진이 최근 바이오엔지니어링 기술을 적용하여 개발한 인공혈관이 환자에게 성공적으로 이식되었다고 보도했다.
메드페이지투데이는 이번에 이식된 인공혈관이 혈관의 종류 중에서도 가장 개발하기 쉬운 구조로 이루어진 정맥이었다고 보도하면서, 기증 받은 혈관 세포를 배양해서 만든 인공혈관으로부터 면역거부 반응을 유발할 수 있는 물질을 제거한 뒤 환자에게 이식되었다고 밝혔다.
인공혈관이 꼭 필요한 신부전증 질환
이 같은 연구결과에 대해 현재 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환자와 이를 치료하는 의료진들이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부전증은 고통스러운 신장투석을 지속적으로 해야만 생명을 연장시킬 수 있는 만성 질환이다.
신장투석은 병든 신장을 대신하여 몸 안에 쌓인 노폐물을 몸 밖으로 제거하는 치료법으로서, 노폐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환자의 혈액을 뽑아내어 여과시킨 다음 이를 다시 환자에게 주입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투석의 과정에는 혈류를 용이하게 흐르도록 하기 위해 동맥과 정맥을 연결하는 혈관이식이 필요하다. 이때 가능하면 환자의 혈관을 이용하는 것이 좋지만 이런 천연 혈관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기능을 상실하게 된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의사들은 그동안 플라스틱이나 기타 합성재료로 만든 인공혈관을 사용하여 왔다. 인공혈관은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면역거부 반응을 일으키거나 혈액순환이 원활하지 않는 등의 또 다른 문제를 유발시켰다.
반면에 새로 개발된 인공혈관은 임상실험에서 별다른 면역거부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새로운 인공혈관이 지금까지 발표된 다른 인공혈관들과는 달리 1년 정도의 기간까지는 충분히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병원에서 환자들이 필요할 때 바로 이식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바이오엔지니어링 기술로 탄생한 인공혈관
휴마사이트사의 조직공학자인 셰논 달(Shannon Dahl) 박사와 공동 연구진은 기증받은 시신으로부터 얻은 인간근육 세포들을 생분해성 고분자인 폴리글리콜릭산(ployglycolic acid)으로 만들어진 관 모양의 틀 위에 이식하여 배양했다.
특히 세포를 배양하는 동안에는 영양분을 심장의 박동처럼 튜브 속으로 제공하여 자연적 혈관과 더욱 비슷한 특성을 지니도록 조성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혈관은 특수용액으로 세척하여 세포가 가진 생체특성을 없애면서 면역반응을 유발하지 않는 콜라겐 골격만 남겨졌다.
이어서 연구진은 새로 만들어진 인공혈관을 8마리의 원숭이에게 대체이식을 했는데, 그 결과 6개월 동안 아무런 막힘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인간의 콜라겐과 세포외 기질로 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면역거부 반응을 일으키지 않은 것이다.
이밖에 연구진은 원숭이에게 이식한 혈관보다 좀 더 가는 혈관을 제작하여 5마리의 개들에게 이식하는 실험도 병행하였는데, 이 역시 1년 동안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원숭이와 개를 이용한 두 이식 실험에 사용된 인공혈관에서 천연의 혈관에서만 존재하던 세포들이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결과는 인공혈관이 이식된 동물 체내에서 제대로 적응하고 있음을 시사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 같은 임상결과에 대해 달 박사는 “인공혈관은 다른 장기에 거부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생물학적 특성이 제거되었기 때문에 인간세포를 기반으로 한 범용 제품이라 볼 수 있다”며 “이런 특성 때문에 혈관을 수개월 동안 저장할 수 있고, 이식받은 환자도 면역거부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공혈관을 넘어 장기개발까지 시도
현재 의료 전문가들은 이번 연구를 통해 인공혈관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확신했기 때문에, 정맥보다 두꺼운 동맥도 바이오엔지니어링 기술로 제작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미래에는 환자 자신의 세포를 배양해서 면역 반응에 대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없애는 자가 인공혈관의 개발까지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공동 연구진은 인공혈관의 개발은 시작일 뿐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신장이나 간 같은 복잡한 구조의 인체 내 장기까지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통해 연구진은 전 세계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과제인 장기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편 이보다 앞서 바이오엔지니어링 기술을 이용한 인공혈관의 개발 사례가 있다. 미국의 의료 벤처기업인 사이토크래프트 티슈 엔지니어링(Cytograft Tissue Engineering) 사에서 환자의 피부세포를 이용해 인공혈관을 만든 것이 그 예다.
사이토크래프사 연구진의 발표에 따르면 새로 개발된 인공혈관은 환자 자신의 조직에서 유래하는 최초의 혈관인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에 따라 유해한 면역반응의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킨 것이 특징이다.
사이토크래프사의 연구진은 보다 자연에 가까운 대체혈관을 만들기 위해 먼저 피부의 섬유모세포를 채취해 시트에서 배양했다. 그 다음 시트를 동그랗게 말아 세포들로 하여금 상호침투하는 구조·지지단백질의 혼합물을 생성하도록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어서 연구진은 10명의 말기 신장질환 환자들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진행했다. 이 중 5명의 환자들이 인공혈관 이식 후 약 6개월에서 20개월 동안 정상적으로 신장투석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신장투석 환자에게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인공혈관인 것으로 나타났다.
- 김준래 객원기자
- joonrae@naver.com
- 저작권자 2013-06-2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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