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타임즈 로고

기초·응용과학
황정은 객원기자
2014-03-21

진공은 정말 비어있을까?…진공의 비밀을 풀다 [인터뷰] 안경원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 콘텐츠 폰트 사이즈 조절

    글자크기 설정

  • 프린트출력하기

공간에 물질이 없는 상태, 진공. 우리는 진공을 어떤 물질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알고 있다. 하지만 양자역학에 따르면 진공은 완전히 비어있는 것이 아닌, 영점 에너지(zero-point energy)로 불리는 미약한 에너지로 채워져 있다. 영점 에너지 혹은 진공에너지에 의해 입자와 반입자가 순간적으로 끊임없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진공요동(vacuum fluctuations) 상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진공상태’가 실은 ‘진공상태’ 가 아니라는 사실이 대중에게 놀랄 정보일 수 있지만 이미 이러한 사실은 1927년 영국의 이론 물리학자 디락(Paul Dirac)에 의해 제안된 바 있다. 디락은 진공에너지가 만드는 전자기장에 의해 여기상태(excited state)의 원자가 바닥상태(ground state)가 되면서 광자를 방출한다고 제안한 것이다.

이후 진공에너지 및 진공에너지가 만드는 전자기장의 존재는 여러 실험결과에 의해 간접적으로 확인됐지만 기술적인 한계로 인해 진공 에너지를 직접 형상화하는 방법으로 존재를 입증한 적은 없었다.

‘진공’ 이 아닌 ‘진공’

▲ 안경원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교수 ⓒ안경원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진공이 실제로 진공 상태가 아님을 밝혀 주목을 받고 있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안경원 교수팀이 진공이 미약한 에너지로 채워져 있음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는 이러한 주장이 제안된 지 약 90년 만에 형상화해 입증한 것으로 향후 이러한 형상화 기술이 양자정보처리에 응용될 경우 보다 효율적이고 안전한 정보처리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진공에너지는 우주의 모든 공간 어디에나 있습니다. 진공에너지에 의해 진공전자기장(vacuum field)이 만들어지는데 이 전자기장이 모든 주파수에 걸쳐 존재하고 있죠. 진공에너지가 우주 전 공간에 퍼져 존재할 뿐 아니라 모든 주파수에 대해 각각 존재하므로 결국 측정 가능한 양은 진공에너지의 밀도입니다. 이 밀도는 우주 스케일에서는 변화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 주위의 작은 공간에서는 변화가 없습니다. 즉 일정하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우리 주위의 자유공간에서 진공에너지 밀도의 변화를 측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자유공간이 아닌 아주 작은 부피의 밀폐된 공간에서는 진공에너지 밀도가 아주 커질 수 있다. 진공에너지는 일정한데 부피가 작아지니까 밀도가 커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론적으로는 이러한 작은 공간에서 진공에너지는 마치 기타 줄이 진동하는 패턴처럼 산과 골의 분포를 갖는다고 이론적으로 예측된다. 때문에 과학자들은 아주 작은 부피의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진공에너지 밀도 분포를 측정하려고 노력을 해 왔다. 그렇다면 진공에너지의 분포 측정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1927년 영국 물리학자 디락은 여기상태(excited state)의 원자가 진공전자기장에 반응해 빛을 방출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이 때 원자가 빛을 방출하는 확률은 진공에너지 밀도에 비례해요. 따라서 디락의 아이디어를 실험으로 구현할 수 있다면 아주 작은 공간 안에 존재하는 진공에너지 분포를 측정할 수 있을 겁니다.

최근까지 진공에너지 형상화에 근접한 연구는 약 10년 전 독일 인스부르크 대학 연구팀이 진행한 연구입니다. 이들은 칼슘 이온 원자 하나를 두 거울 사이에서 전자석으로 붙잡고 계속 여기 시키면서 위치에 따라 칼슘 이온원자가 방출하는 빛을 측정했죠. 여기서 두 거울의 역할은 빛에 대해 작은 밀폐된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겁니다. 그런데 이온을 붙잡는 데 필요한 전자석의 크기, 그리고 이온 원자가 거울표면에 유도하는 전하의 문제 등으로 공간의 부피를 작게 만들 수 없었어요. 따라서 진공에너지 밀도가 자유공간의 밀도보다 그리 높지 않아 위치변화에 따른 진공에너지 밀도변화가 크지 않았습니다. 또 이온의 위치를 한 방향으로 밖에는 측정하지 못해 진정한 형상화라고는 말할 수 없었죠.”

진정한 형상화 작업을 위해 안경원 교수팀은 중성원자(바륨)를 이용하고 두 개의 거울로 매우 작은 공진기를 형성해 진공에너지 밀도를 매우 크게 만들었다. 중성원자를 사용하면 전자석도 필요 없고 이온원자가 만드는 표면전하유도 현상도 없기 때문에 공진기를 원하는 만큼 작게 만들 수 있었다.

“그 결과 진공에너지의 밀도도 커지고 위치에 따라 산과 골의 형태로 밀도변화가 크게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중성원자의 경우 원자의 위치를 제어하는 것이 매우 어려워요. 우리는 나노격자기술을 도입해 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나노격자를 통해 원자를 하나하나 공진기 안에 넣는 방법으로 원자의 위치를 상하좌우 두 방향에 대해 정교하게 제어할 수 있었던 거죠.

다른 방향, 즉 원자가 진행하는 방향으로 진공에너지가 변화하는 것은 원자가 방출하는 빛의 스펙트럼으로 알아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공진기 안에 갇힌 진공에너지의 3차원 분포를 처음으로 측정했어요. 측정된 진공에너지의 분포는 거울 안에 갇혀있는 전자기파가 보여주는 분포, 즉 공진 모드와 같았습니다. 이것은 우리 연구에서 측정한 진공에너지가 공진모드의 바닥상태의 에너지인 영점에너지에 해당한다는 것을 의미하죠.”

진공에너지에 대한 이해를 넓히다

▲ 두 거울 사이에 존재하는 진공 에너지의 3차원 분포도 ⓒ한국연구재단

사실 진공 에너지는 물리학 이론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한 예로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을 보자. 일반상대론에 의하면 우주상수(cosmological constant)에 의해 우주의 팽창속도가 결정되며 이 우주상수는 다름 아닌 진공 에너지의 밀도에 해당한다. 가깝게 마주보고 있는 두 금속판 사이에 작용하는 캐시미어(Casimir) 힘도 진공 에너지 때문에 발생한다.

“비록 진공으로부터 에너지를 끄집어 낼 수 있는 방법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우주 전체에 존재하는 진공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인류는 무한한 에너지 자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로 진공에너지의 존재를 직접적인 방법으로 확실히 입증할 필요가 있었죠.”

해당 연구는 양자정보 연구의 초기단계라고 볼 수 있다. 해당 연구를 위해서는 원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제어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안경원 교수팀은 나노격자를 생각했다. 실제로 원자의 위치가 제대로 제어되는지 조사하려다보니 디락이 제시한 아이디어를 적용하게 된 것이다. 즉, 나노격자의 실효성을 조사하려다가 진공에너지의 분포를 측정하게 된 셈이다.

“그렇게 시작한 연구였지만 어려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어요. 나노격자에 관련해 어려운 점들이 많았습니다. 이번 연구 전에는 저희 연구실에서 나노격자에 대한 경험이 없었어요. 나노격자는 매우 얇은 반도체를 가공해서 만드는 것입니다. 집속된 이온빔 장치를 사용해 두께가 75 나노미터에 불과한 실리콘 나이트라이드 판에 약 400 나노미터 간격으로 170 나노미터 직경의 구멍을 격자모양으로 뚫은 것이지요. 반도체 공정하는 분들에게 사용법을 배우고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결국 원하는 모양의 격자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어려움은 계속 됐다. 나노격자를 통해 원자를 공진기 안으로 넣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안경원 교수는 “바륨 원자빔을 나노격자에 쏘여주면 극히 일부의 원자들만이 작은 구멍을 빠져 나가고 대부분은 판에 부딪힌다”며 “부딪히는 원자들의 상당수는 판에 붙어버립니다. 그것이 점점 쌓이다 보면 나노격자의 구멍들을 막게 되죠. 실제로 10분정도 실험을 하다보면 나노구멍들이 막혀 실험을 계속할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하지만 해당 문제는 5개의 나노격자를 교대로 사용하는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모든 실험이 진공 상자 안에서 이뤄져야 하므로 진공상자 안에 5개의 나노격자를 권총의 리볼버 형태 틀에 고정해놓고 하나가 막히면 리볼버를 돌려 새것을 사용하는 식으로 해결한 것이다. 그렇게 실험시간을 대폭 늘릴 수 있었고 실험을 최적화할 수 있었다.

“나노격자가 막히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다음으로는 나노격자를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진공에너지 구조가 약 400 나노미터마다 산과 골이 반복되는 것이어서 나노격자를 수 나노미터 수준으로 제어해야만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진동을 차단해서 나노격자가 정지상태에서는 수 나노미터 이내로 움직이지 않도록 해야 하죠. 또 나노격자의 위치를 좌우로 스캔할 때 얼마만큼 이동했는지를 수 나노미터 정확도로 알아야 합니다.

결국 마이켈슨 간섭계를 구성해 이러한 요구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었습니다. 간섭계의 거울 하나가 나노격자 마운트에 붙어있고 다른 거울은 진공상자 바깥에 놓여 있어 간섭무늬를 통해 나노격자의 위치를 수 나노미터 정확도로 알아낼 수 있었던 거죠.”

이렇게 성공한 해당 연구는 지금껏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던 진공에너지의 형상화를 처음으로 가능케 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진공에너지가 우주 전체에 퍼져있다는 지금까지의 막연한 인식을 넘어 아주 작은 공간에서 진공에너지 밀도를 매우 크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안 교수는 “구체적인 생김새를 보여줌으로써 진공에너지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고 할 수 있다”며 “이번 기술은 양자정보처리 등 다른 연구에도 응용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연구를 이용해 새로운 양자정보처리를 할 수 있습니다. 양자정보처리에서는 한 종류의 객체로 실용적인 정보처리가 어렵기 때문에 서로 다른 종류의 객체를 결합해야 하고 이들 사이에서 양자정보를 효율적으로 전달해야 해요. 특히 양자물질과 빛 사이의 정보교환이 중요합니다. 나노 구멍 격자 기술을 사용하면 다수의 원자를 동일한 위상을 갖는 중첩상태로 만들 수 있어요. 이렇게 준비된 원자들은 공진기와 상호작용해 위상 정보를 공진기장에 전달할 수 있고 그 반대 과정도 가능하죠. 양자물질과 빛 사이의 가역적 정보교환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황정은 객원기자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4-03-21 ⓒ ScienceTimes

태그(Tag)

관련기사

목록으로
연재 보러가기 사이언스 타임즈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주제의 이야기들을 확인해보세요!

인기 뉴스 TOP 10

속보 뉴스

ADD : 06130 서울특별시 강남구 테헤란로7길 22, 4~5층(역삼동, 과학기술회관 2관) 한국과학창의재단
TEL : (02)555 - 0701 / 시스템 문의 : (02) 6671 - 9304 / FAX : (02)555 - 2355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서울아00340 / 등록일 : 2007년 3월 26일 / 발행인 : 정우성 / 편집인 : 윤승재 / 청소년보호책임자 : 윤승재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운영하는 모든 사이트의 콘텐츠는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과학기술진흥기금 및 복권기금의 지원으로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발전과 사회적 가치 증진에 기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