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유전자검사기관인 ‘23andme’의 가정용 유전자 테스트를 최초로 승인했다. 이에 따라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과 같은 유전질환에 대해 DTC(Direct-to-Consumer)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FDA가 유전자 분석을 승인한 질환은 파킨슨, 알츠하이머, 셀리악, 알파-1 항트립신 결핍증, 조발성 1차성 근긴장이상증, XI 혈액응고인자 결핍증, 제1형 고셔병, 포도당-6-인산탈수소효소(G6PD) 결핍증, 유전성 혈색소침착증, 유전적 혈전 기호증 등이다.
유전자 검사 절차는 매우 간단하다. 온라인, 편의점 등에서 판매하는 ‘Personal Genome Service Genetic Health Risk test’를 구입한 다음 타액 샘플을 ‘23andMe’에 보내면 50만개 이상의 유전 변이와 대조해 10가지 질환 유무를 확인할 수 있다.
“예기치 못한 검사 결과에 직면해”
유전자 검사에 드는 비용은 149달러(한화 15만6653원). 큰 부담이 없는 금액이다. 그러나 시행 4개월이 지난 지금 또 다른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알츠하이머와 같은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 유전인자를 발견한 사람들의 가족이 심각한 심리적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는 것.
17일 ‘가디언’ 지에 따르면 부작용은 이뿐만이 아니다. 유전자 검사를 한 사람들이 자신의 선조가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발견할 수 있다. 특별한 경우에 바이킹, 아시아, 혹은 고대 그리스 인의 유전자가 섞여 있을 수 있는데 이런 사실이 심한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
영국 웰컴유전체캠퍼스(Wellcome Genome Campus)에서 사회윤리 문제를 연구하고 있는 케이트 미들턴(Kate Middleton) 박사는 “유전자 검사가 대중화하면서 예기치 못한 검사 결과에 직면한 검사 대상자들에게 심한 압박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사는 “유전자 검사를 수행하는 기업들이 검사 영역을 확대하겠지만 검사 전후에 검사 대상자를 대상으로 세부적인 심리상담을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들턴 박사팀의 연구 보고서는 의학 저널 ‘퓨처 메디신(Future Medicine)’에 게재됐다.
유전자 검사로 인한 심리적 부작용에 대해 여러 사람이 우려를 제기했었다. 영국의 치매 환자를 위한 사회단체 ‘알츠하이머 소사이어티(Alzheimer’s Society)’의 루이스 워커(Louise Walker) 박사는 소비자 권리를 주장한 바 있다.
“모든 검사 대상자들이 유전자 검사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risk)에 대해 사전에 알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또 “기업들은 검사 대상자들에게 유전자 검사로 인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등에 대해 이해시켜야 할 도덕적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유전자 검사 결과로 인해 예기치 못했던 일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츠하이머를 예로 들 수 있다. 이 불치병은 단백질의 일종인 병적 아밀로이드(amyloid)가 뇌에 축적돼 발생하는 병이다.
“필요한 유전자 정보만 공개해야”
보통 65세 이후에 시작되지만, 치매 원인이 되는 아밀로이드 침착은 이보다 앞선 40-50대에 시작된다. 아밀로이드 외에 아포리포단백질E군인 E2, E3, E4가 존재하는데 E4를 가진 사람은 70세 이전에 약 50%가, 90세에 달하면 약 99%가 치매 증상을 보인다.
반면 E4가 없고 E2나 E3를 가진 사람은 90세가 돼도 약 50%에서만 치매가 나타났다.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의 존 하디(John Hardy) 교수는 “전체 영국인 가운데 약 3%가 두 가지 유형의 E4 변종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모 중 한 명이라도 E4를 지니고 있으면 그로 인해 E4가 전달된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알츠하이머로 인한 공포 속에 살아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E4를 지닌 사람의 경우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조상의 유전적 특성을 추적해나갈 수 있다. 이미 수십 개의 기업들이 유전자 검사를 통해 조상들의 유전자 역사를 알 수 있다는 광고를 내보내고 있는 중이다. 검사 대상자가 원한다면 오래 전 자신의 뿌리가 어디였는지 알아볼 수 있다.
실제로 런던 출신의 켈리 보트플라워(Kelly Boughtflower)란 여성은 자신의 어머니의 혈통이 스페인계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23andMe’를 통해 유전자 검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그녀에게 통보된 검사 결과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유전자 안에 스페인 혈통이라는 정보는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았다. 대신 알츠하이머의 원인이 되는 E4가 발견됐다. 그녀는 사회단체인 ‘알츠하이머 소사이어티’를 찾아갔고, 그곳에서 자신이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후 갖가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E4가 어머니로부터 유래됐는지, 자신의 유전자가 자녀에게 전달됐는지, 이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정말 없는 것인지, 자신이 가입하고 있는 건강보험에 가서 상담을 해야 할 지 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현재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의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중이다. ‘ApoE4 Info’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보면 유전자 검사를 통해 자신이 E4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충격에 빠졌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어떤 사람은 “50달러의 기프트 카드로 유전자 검사를 했는데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됐다.”며 “(자신이) 이런 사실을 접할 수 있는 준비가 전혀 안 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치료가 불가능한 알츠하이머가 유전자 검사 대상자들의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는 중이다.
문제는 알츠하이머뿐만 아니라 파킨슨 등 또 다른 질환 정보가 밝혀지고, 검사자 들이 예기치 못한 사실에 직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검사 대상자에게 정말 필요한 정보만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가장 우려되고 있는 상황은 유전자 검사가 상업화하는 것이다. 의사이면서 ‘Patient Paradox'의 저자인 마거릿 매카트니(Margaret McCartney) 박사는 “기업들이 도발적으로 유전자 검사를 확산시킬 수 있다”며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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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8-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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