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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임동욱 기자
2010-10-26

요리사와 과학자가 함께 만드는 요리 하버드가 개설한 ‘사이언스 앤드 쿠킹’ 수업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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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맛있는 식당을 찾고 싶다면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까? 각국 전문가들의 입에서 동시에 나오는 단어가 있다. “기드 미슐랭(Guide Michelin)!”

영어로 ‘미셸린 가이드’라 불리는 이 책은 한국인들에게도 이름이 친숙한 프랑스 타이어 회사가 만든 레스토랑 안내 책자다. 맛집을 소개하고 여행을 장려하면 타이어 소비가 증대될 것이라는 단순한 예상에서 출발했지만, 이 책에 이름이 올라간 식당은 그 즉시 1년 예약이 꽉 찰 정도다. 미셸린 가이드는 별의 개수로 맛을 평가한다. 최고 점수는 별 3개인데 미식가의 고향이라 불리는 프랑스에서도 별 3개를 받은 식당은 20곳도 되지 않는다.

프랑스 국경에 가까운 스페인 동북부 해안에 위치한 레스토랑 ‘엘 불리(El Bulli)’도 미슐랭에서 별 3개를 받았다. 그러나 다른 별 3개짜리 식당과는 두 가지 면에서 다르다. 첫째로, 예약을 하기가 로또 당첨보다 어렵다. 매년 3백만 명이 예약 문의를 해오지만 그 중에서 오직 8천명만을 받아들인다. 한 끼 식사가 무려 250유로(한화 약 40만원)에 달하지만 연중 7개월만 문을 여는 데다가 2012년 이후로는 영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둘째로 특이한 점은 수석셰프인 페란 아드리아(Ferran Adria)가 하버드대에서 과학 수업을 가르친다는 것이다. 2년 전 하버드대는 학부 커리큘럼을 개편해서 과학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고민 중이었다. 그러다 ‘요리의 소재로 쓰이는 음식을 과학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아드리아 셰프가 흔쾌히 수락하면서 ‘과학과 요리(Science & Cooking)’라는 수업이 준비됐다. 재료열역학과 화학을 이용해 물질의 변형을 연구하는 수업이다.

요리 재료로 과학을 공부한다는 소문에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그 중 대다수는 본격적인 과학 전공수업을 들어본 적 없는 역사학도나 정치학도 등 인문과학 출신들이었다. 700명의 학생이 수강신청을 했지만 인원 제한 때문에 추첨으로 300명만을 선발해야 했다. 학생들의 항의에 응용수학과 마이클 브레너(Michael P. Brenner) 교수는 “당첨 확률 43퍼센트는 엘 불리 레스토랑의 예약석을 얻어낼 수 있는 확률인 0.25퍼센트보다는 훨씬 높다”는 공고문을 붙여야 했다. 미국 뉴욕타임즈(NYT)도 지난주 ‘하버드에서는 부엌이 곧 실험실(At Haravard, the Kitchen as Lab)’이라는 기사를 통해 새로운 방식의 과학 수업을 조명했다.

‘부엌 과학’ 통해 물리학과 화학 이해해

하버드가 개설한 새로운 과학수업 ‘과학과 요리’는 ‘최고급 요리에서 연성물질 과학까지(From Haute Cuisine to Soft Matter Science)’라는 특이한 부제를 달고 있다. 부엌과 식재료를 활용해 물리학과 화학의 기본 원리를 가르치는 방식이다. 하버드대의 교수들뿐만 아니라 유명 요리사들도 수업을 진행한다.

이 수업은 ‘부엌 과학(kitchen technology)’이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요리에나 쓰일 법한 음식 재료들이 실험도구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애슐리 프린스(Ashley Prince) 연구원과 앨런 젠법티스트(Allan Jean-Baptiste) 연구원이 진행하는 수업에서는 과일주스를 113도까지 가열한 후 설탕과 펙틴을 첨가해 쫄깃쫄깃한 과일 젤리를 만든다. 젤라틴을 이용해서 쥐어짜거나 당겨도 멀쩡한 ‘탄성’과 액체가 빠르게 또는 느리게 흐르는 ‘점성’을 공부하는 것이다.

단순히 과학적 원리만을 주입시키려 하면 학생들은 지루해한다. 그러나 요리라는 매혹적인 소재와 결합시키면 집중력이 몇 배나 높아진다. 지난주에는 해물 애피타이저인 세비체(ceviche)를 만들었고, 다음 주에는 뜨거운 아이스크림이 기다리고 있다.

데이비드 위츠(David Weitz) 물리학과 교수는 스테이크를 이용해 탄성의 원리를 가르친다. 생고기를 레어(rare), 미디움(medium), 웰던(well-done) 등으로 익히고, 단계마다 스테이크에 압력을 가해서 두께가 얼마나 줄어드는지 측정하는 것이다. 위츠 교수는 “스테이크는 스프링과 동일한 원리로 탄성을 발휘한다”며 “다음 번에는 두부로 실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과일 젤리 수업에서는 구아검(guar gum)을 섞어 여러 가지의 젤라틴 벽돌을 만들고 그 질감과 탄성을 측정한다. 이러한 수업은 요리사들이 육즙과 소스를 뻑뻑하게 만들기 위해 밀가루와 옥수수녹말을 뿌려서 점성을 높이는 행동의 원리를 밝혀준다.

과학자, 요리사, 학생 모두에게 이로운 과학수업

부엌 과학은 물리학적, 화학적 원리를 이해함으로써 서로 다른 재료의 특성도 이해할 수 있게 도와준다. 위츠 교수는 냄비를 거꾸로 들어 삶은 스파게티를 그릇 안으로 떨어뜨리며 점성에 대해 설명하곤 한다. 면이 얽히면서 표면이 서로 비벼지고, 이에 따라 표면의 액체가 젤로 변해 점성이 증가하면서 마찰력이 커지는 바람에 냄비에서 그릇으로 떨어지는 속도가 점점 느려진다는 식이다.

이 수업은 다른 수업을 맡은 와일리 더프렌(Wylie Dufresne) 셰프가 “가을 신메뉴로 스파게티를 내놓으려 하는데, 삶은 후에 질감이 너무 빨리 나빠진다”고 하소연하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학생들도 과학자와 요리사의 수업을 마냥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연구팀을 조직해 해답을 찾아낸다. 오는 12월에 열릴 사이언스 페어(Science Fair)에서는 학생들이 지도교수와 유명 요리사들의 지도 아래 과학과 요리를 결합한 출품작들을 직접 심사할 예정이다.

요리사들도 배우는 것이 많다. ‘디저트 기하학(dessert geometry)’이라는 특이한 과목을 진행하는 그랜트 애커츠(Grant Achatz)는 시카고의 유명 레스토랑인 알리니아(Alinea)의 수석셰프다. 알리니아에서는 탁자에 고무 식탁보를 씌운 뒤 크림과 초콜렛을 부어 사각형과 원형의 디저트를 손님 앞에서 직접 만들어 보이는데, 애커츠 셰프는 그 과학적 원리를 더 정확히 알아내 다음 요리에 써먹고 싶어 한다.

최근에는 분자역학에 관심을 가지는 요리사들이 많아지면서 기존의 재료와 첨가물을 대체할 새로운 방식을 찾아내는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스페인에 위치한 레스토랑 비아 베네토(Via Veneto)의 카를레스 테헤도르(Carles Tejedor) 셰프는 올리브유로 만든 젤리를 개발 중이다. 물과 올리브유를 섞어도 특성이 크게 변하지 않지만 소량의 잔탄검(xanthan gum)을 넣은 물에 올리브유를 섞으면 젤리가 된다. 그러나 잔탄검은 고농축 상태에서는 설명 불가능한 특성으로 변한다. 테헤도르 셰프는 교수들의 제안에 따라 하버드 수업에서 처음으로 잔탄검 대신 구아검을 섞어보았는데 효과가 기대 이상이었다.

과학자에게도 좋은 경험이 된다. 전문 과학자라 해도 물질의 모든 특성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아니며, 왜 꿀은 점성이 높고 설탕물은 점성이 낮은지를 일반인 수준에서 명쾌하게 설명하기도 쉽지 않다. 위츠 박사는 “과학자들도 사물의 원리를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대신에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동안 오히려 많은 것을 배웠다”고 수업의 가치를 평가했다.

임동욱 기자
duim@kofac.or.kr
저작권자 2010-10-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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