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물체는 매우 작은 알갱이인 원자로 이뤄져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데모크리토스는 물체를 쪼개고 쪼개다보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를 만나게 된다고 주장했고, 이 입자를 ‘원자’라고 이름 붙였다.
이후 많은 가설과 실험을 거쳐 1920년대 ‘전자는 파동’이라는 양자역학이 확립됐고, 많은 과학자들은 원자 내부에 원자핵과 주위를 둘러싼 구름 모양의 전자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이처럼 원자는 모든 무게를 함유하는 원자핵과 그 주변을 구름모양으로 둘러싼 상대적으로 매우 가벼운 전자로 구성돼 있다. 이를 일컬어 ‘전자구름’이라고 칭한다.
원자수준 제벡효과 상온에서 발생시켜
“전자구름의 존재는 1920년대 양자역학의 탄생 이후 과학자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개념입니다. 하지만 전자구름을 직접 관찰한 것은 60여 년 뒤인 1981년 스위스 IBM의 비니히와 로러 박사에 의해서예요. 그들의 주사터널링현미경 이미지가 최초였죠.
이후 주사터널링현미경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아주 미세한 터널링에 의한 전류를 측정해야 하기 때문에 응용에 많은 제약이 있었어요. 이번 저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여호기 박사님이 공동으로 진행한 연구는 전자구름을 직접적으로 관측할 수 있는, 이전과는 완전히 새로운 원리를 밝혀낸 것입니다. 이 원리에 기반을 둬 상온에서 전자구름이 결함주변에서 산란하는 현상을 최초로 관측했습니다.”
김용현 교수와 여호기 박사가 전자구름 관측에 사용한 원리는 흔히 ‘열전효과’로 불린다. 물질에 온도 차이를 가해 전기를 발생시키는 ‘제벡효과’라는, 매우 기초적인 물리현상을 이용한 것이다. 김용현 교수는 “제벡효과가 열과 관련이 있으므로 그동안 제벡효과로부터 전자구름 이미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며 “하지만 저희는 원자수준의 제벡효과를 상온에서 발생시킴으로써 전자구름 관측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용현 교수팀의 전자구름 관측은 이를 최초로 관찰했던 주사터널링현미경 기술 이후 33년만의 쾌거다. 때문에 현 관련 학계의 연구자들은 김용현 교수팀의 연구에 주목하고 있다. 그 성과 역시 인정받아 미국 물리학회가 발행하는 물리학분야 권위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 온라인 판에 게재되었다.
1981년 스위스에서 세계 최초로 전자구름 모양을 관측한 기술인 주사터널링현미경은 현재까지 전자구름을 관측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었다. 발명의 공로로 비니히와 로러 박사는 1986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기도 했을 만큼 세계적인 과학성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 기술은 아주 작은 전기신호를 감지하기 위해 초정밀·극저온·무진동 환경이 요구되는 등 응용에 많은 제약이 있었다. 또 전압을 가해 전류를 측정하는 기존 방식은 전류가 흐르면서 원자핵을 둘러싸고 있는 전자구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실제로는 왜곡된 형태를 보여줬다.
“주사제벡현미경과 주사터널링현미경은 유사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습니다. 유사점은 두 기술 모두 주사탐침현미경 기술에 기반 한다는 것이죠. 뾰족한 탐침이 관측하고자 하는 샘플 표면 근처로 접근하면서 전기신호를 읽고 전자구름을 관측하는 방식입니다. 단, 주사터널링현미경이 전기신호를 발생시키기 위해 외부전압을 가한다면 주사제벡현미경은 온도차이를 가하죠.
어떻게 보면 온도차이를 가하는 기술이 이미지 해상도가 더 떨어질 것 같은데 실제로는 그 반대에요. 주사터널링현미경은 이미지 해상도를 높이기 위해 전자 터널링 효과가 큰 비접촉 상태를 추구하는데 이 경우 전기신호가 작아질 수밖에 없다는 단점이 있어요. 반면 주사제벡현미경은 두 물질 간의 직접적 접촉을 통해 열교환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때 이미지 해상도는 국소화 된 열접촉이 주로 담당하게 되고, 전기신호는 접촉상황이기 때문에 비교적 높게 나타납니다.”
김용현 교수와 여호기 박사의 이번 관측은 세계 최초로 성공시킨 사례다. 기존에는 열로 전자구름을 관측하는 것을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여겼기 때문에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더불어 실제로도, 열로 관측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열은 주변으로 매우 빠르게 퍼지기 때문에 전자구름을 관측할 수 있는 0.01 nm 수준의 분해능을 가지도록 하는 게 굉장히 힘들어요. 아주 작은 영역에서 발생하는 온도를 정밀하게 측정하는 방법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합니다. 더불어 열은 지저분하다는 편견이 있어요. 열역학적으로는 잘 정의되는 개념이지만 원자수준에서는 깔끔한 정의가 어렵다 보니 많은 물리학자들의 관심대상 밖에 있었습니다. 제어와 측정이 어렵고 개념도 모호하다보니 해당 분야가 심각하게 뒤쳐진 면이 있는 거죠.”
전자구름 관측… 국내 과학기술의 진보
김용현 교수와 여호기 박사는 모두 열에 관심이 많은 물리학자다. 때문에 원자수준에서도 열이 아주 잘 정의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런 신념하에 아주 작은 영역에서 온도 차이에 의해 전기가 발생하는 ‘원자수준 제벡효과’ 라는 현상을 주사탐침현미경 기술에 이용하고자 했다.
그 결과 각각 다른 온도에 있는 탐침과 샘플을 좁은 영역에서 접촉시킴으로써 0.01 nm 수준의 분해능을 가진 열평형을 완성시켰다. 탐침 위치에 따른 전기신호를 읽음으로써 상온의 전자구름 이미지를 완성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해당 현미경을 주사제벡현미경으로 부르기로 했다. 김용현 교수는 “주사제벡현미경의 동작원리는 개념적으로 매우 깔끔하게 정립됐어요. 앞으로 나노열물리 현상 연구의 중요한 기초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질간의 온도차이로 전자구름을 관측한 것은, 과학적으로 여러 의미를 갖는다. 먼저 기술적 관점에서 전자구름을 관측할 수 있는 기술이 다양해졌다. 지금까지 주사터널링현미경 기술이 유일했지만 이번 연구를 통해 다른 방법을 제안한 셈이다.
더불어 과학적 관점에서 전자구름을 관측할 수 있는 전혀 새로운 원리가 발견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질에 온도 차이를 가해 전자구름을 관측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매우 놀랍고 신기한 일입니다. 이것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것이 이론과 실험으로 국내에서 저희 공동연구진에 의해 증명된 것이죠.”
연구팀이 이번 연구를 진행한 것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용현 교수는 “여호기 박사님의 초청이 결정적이다”며 “당시 전자구름 이미지를 손에 쥐었지만 이론적 설명 없이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열전물질 연구에 관심이 있어 실험파트너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고 말했다.
“아는 분의 소개로 여호기 박사님을 만났어요. 같은 물리학 전공자로서 열전연구를 바라보는 시각이 거의 같다는 것을 깨닫고 바로 의기투합했습니다. 하지만 주사탐침현미경의 전자구름 이미지는 저의 일반적 전문분야가 아니어서 망설였죠. 그날 늦은 오후, 제 연구실에 방문하신 여 박사님과 6시간 동안 대화를 하면서 제가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후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방향을 심하게 잃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장시간의 대화를 통해 연구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과정이 쉽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어떻게 온도 차이에 의해 전자구름이 관측될 수 있는지 이해하는 과정이 힘겨웠다. 아무도 탐험해 보지 않은 영역이었기에 많은 이론적 시행착오를 겪은 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던 것이다.
“앞으로 해당 기술은 표면분석기술로서 전자구름을 관측하는 데 매우 광범위하게 사용될 것 같습니다. 기존 주사터널링현미경 기술에 비해 매우 우수한 동작특성을 보이기 때문이죠. 주사제벡현미경 기술의 원리를 잘 활용한다면 우수한 열전소재를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4-04-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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