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 바이러스에 관해 많은 것이 알려져 있으나, 사람 숙주 세포 안에서 어떻게 복제돼 감염이 확산되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미국 마운트 사이나이 의대팀이 이끄는 연구진은 가장 치명적인 독감 바이러스군의 하나인 인플루엔자A가 증식을 위해 인체 세포의 복제 기구를 가로채는 메커니즘을 처음으로 밝혀냈다.
생명과학 저널 ‘셀’(Cell) 5일자 온라인판에 발표된 이 연구는 또한 해당 세포 기구인 RNA 엑소좀의 선천적 결함이 희귀 돌연변이를 가진 사람에게서 신경변성을 일으킨다는 점도 확인했다.
숙주와 병원체 사이의 공생관계 관찰
엑소좀(exosome)은 세포 사이의 정보교환을 위해 세포가 분비하는 나노 소포체로, 단백질과 핵산, 지질 등 여러 생리활성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 ‘세포의 분신’으로 알려지는 엑소좀은 암과 알츠하이머병 등의 조기 진단에 유용한 단서로 알려져 과학자들이 많은 관심을 보여왔다.
연구팀은 6개의 협력 의료센터가 기증한 RNA 엑소좀 돌연변이 환자의 세포를 연구한 결과 인플루엔자A가 인체의 세포 핵 안에서 어떻게 RNA 엑소좀을 하이재킹 하는지를 확인했다.
논문의 시니어 저자인 이반 마라치(Ivan Marazzi) 마운트 사이나이의대 미생물학과 조교수는 “이번 연구는 숙주와 병원체 사이의 자연적인 공생관계를 관찰함으로써 질병(이번 경우에는 신경변성) 관련 유전자를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인간도 미생물과 공동으로 진화”
인플루엔자A는 부분적으로 계절성 독감뿐만 아니라 돼지 같은 포유동물과 조류로부터 사람에게 전파되는 H1N1 및 다른 독감으로 인한 대규모 유행성 질환을 일으킨다.
마라치 교수는 “우리는 모두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및 기타 미생물과 공동으로 진화해 왔다”며, “이 과정이 중단되면 대칭이 깨어져(the broken symmetry hypothesis) 질병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천성 RNA 엑소좀 변이로 야기되는 이 같은 희귀 신경퇴행 질환에 영향을 미치는 유전자를 연구하면 알츠하이머병이나 파킨슨병과 같은 일반적인 뇌 질환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플루엔자A에서 RNA 엑소좀의 활성이 상실되면 바이러스 감염성이 심하게 손상되지만, 사람에게서는 신경변성으로 나타난다. 이것은 바이러스가 지속적으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희귀 신경질환과 관련된 필수 단백질을 표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대부분의 바이러스가 세포 핵 밖의 세포질에서 복제되는 것에 비해 RNA 바이러스인 인플루엔자A는 세포 핵 안에서 자가 복제를 한다.
“숙주가 병원체의 RNA 절취 용인”
연구팀은 인플루엔자A가 세포 핵 안에서 RNA를 분해하는 필수 단백질 복합체인 RNA 엑소좀을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가로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마라치 교수는 이 독감 병원체가 복제를 시작하기 위해 여분의 RNA가 필요하며, 가로챈 엑소좀에서 이들 분자를 훔쳐낸다고 설명했다.
마라치 교수는 “바이러스는 인체를 크게 망가뜨리지 않는 매우 지능적인 방법을 가지고 있다”며, “인체의 부산물을 이용하는 방법으로서, 엑소좀이 과도한 RNA를 분해하도록 하는 대신 엑소좀에 표지를 하고 필요한 RNA가 파괴되기 전에 이를 훔치는 방법을 쓴다”고 말했다.
논문 제1저자인 알렉스 리알디(Alex Rialdi) 마라치 랩 조교는 “RNA 엑소좀이 없으면 바이러스가 자랄 수 없기 때문에 숙주와 바이러스 사이에는 바이러스가 숙주의 RNA를 얼마 정도 사용할 수 있도록 합의가 돼 있는 것 같다”며, “숙주는 복제된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가지고 있어서 견제와 공생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김병희 객원기자
- kna@live.co.kr
- 저작권자 2017-05-08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