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서 전기파가 온다는 의미를 가진 질환, 뇌전증. 뇌에서 발생한 비정상적인 전기파가 뇌조직 전체에 갑자기 퍼지며 경련성 발작을 일으키는 이 질환은 알츠하이머와 비슷한 환자수를 갖고 있다. 하지만 알츠하이머의 경우 65세 이상의 노년층이 대부분이라면 뇌전증은 다양한 연령대에 퍼져 있다.
국내 연구진이 뇌전증과 지적장애의 원인유전자를 발견해 주목을 받고 있다. 김철희 충남대 교수팀이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뇌전증의 원인을 밝힌 것이다.
뇌전증 기전, 유전자 수준에서 세계 최초 밝혀
“뇌전증을 앓는 경우 가족 및 사회경제적 손실이 막대합니다. 언제 경련성 발작을 일으킬지 모르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소아성 뇌전증의 경우 평생을 약물치료에 의존해야 하므로 문제가 더욱 심각합니다. 저희 연구팀은 X염색체 연관인 소아성 뇌전증 및 지적장애를 갖는 희귀유전질환, ‘Miles-Carpenter syndrome(MCS)’ 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를 발견했습니다. 생물학적으로 뇌전증이 어떻게 발생하는 지, 그 기전을 유전자 수준에서 세계 최초로 밝혀냈죠.”
뇌전증은 현재 원인 치료가 불가능해 대안으로써 항경련제, 근육이완제 등이 처방되고 있었다. 뇌전증의 원인은 막연히 선천적인 발달장애나 유전적 요인, 혹은 뇌 손상이나 뇌종양 등 후천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모두 정확한 원인은 아니었다.
김철희 교수팀은 감마 아미노뷰티르산(GABA, γ-Aminobutyric acid) 연합 신경의 조절 기능에 이상이 생기면서 중추신경계가 지나친 신경흥분상태(뇌성마비)가 되고, 이에 따라 뇌전증 같은 운동장애 증상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감마 아미노뷰티르산은 중추신경계에서 신경흥분을 조정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신경의 종류는 크게 감각신경, 운동신경, 연합신경 세 가지로 나뉩니다. 인간 뇌의 진화는 연합신경의 진화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오감을 통해 들어오는 외부의 다양한 신호는 감각신경을 통해 중추신경계로 들어오고, 운동신경을 통해 근육을 움직여 외부자극에 최종적으로 반응합니다. 연합신경은 감각신경과 운동신경 사이에서 필요해요. 흥분 혹은 억제 등 적절한 조절작용이 필요한 거죠. 저희팀은 GABA 연합신경의 이상으로 인해 억제조절이 없는 상태에서 운동신경에 흥분조절만 작용하고, 그 결과 발작이 일어난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특히 MCS 환자에게서 보이는 지적장애, 운동장애, 그리고 관절만곡증 등 다양한 신드롬의 근본적인 원인이 억제성 GABA 신경신호전달의 부재에 따른 초기의 소아성 뇌전증에서 시작됐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오픈 마인드, 오픈 사이언스(open mind, open science)
김철희 교수에 따르면 GABA 신경조절 이상은 운동신경에도 영향을 미쳐 근력저하증, 관절구축, 척추측만증 등의 발달장애를 동반한다. 눈 운동신경 조절에도 문제가 생겨 안구운동실행증 및 외사시를 일으키킬 수 있으며, 입과 턱관절의 비정상적으로 운동으로 인해 침을 많이 흘리는 상태가 되기도 한다. 최종적으로는 지적장애로 이어질 수도 있다.
김 교수는 “환자의 고통이 큰 질환이기에 치료를 위한 연구는 절실했다”며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던 것은 ‘삼박자’의 조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여기서 삼박자란, 질환유전체정보분석기술(NGS/GWAS) 이용한 질병의 원인유전자 발굴, 유전자가위기술을 이용한 녹아웃 동물모델의 제작기술, 간단하고 편리한 척추동물모델 제브라피쉬를 이용한 질병 원인유전자의 신속한 생체 기능분석이다.
“이는 질병 연구를 위한 세계적인 패러다임입니다. 하지만 국내의 실정은 이와 달라요. 각각의 분야에서는 세계적인 수준이지만 서로 다른 전문연구집단들 사이의 연계 연구가 매우 부족하죠. 변화하는 세계 연구 패러다임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서는 타 연구집단들이 연결되는 ‘오픈 마인드, 오픈 사이언스(open mind, open science)’ 인식을 갖는 게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뇌전증 동물모델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 비춰보면 이번 연구는 새로운 뇌전증 원인유전자를 검증하고 동물모델까지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김철희 교수는 “뇌전증의 상당 부분이 연합신경의 GABA 신호전달과 관련 있다는 것을 밝혔으므로 이를 표적으로 하는 새로운 개념의 치료제가 개발될 것”이라며 “뇌전증 연구모델로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제브라피쉬 동물모델도 이미 확보했기에 새로운 뇌전증 치료제 발굴을 위한 대단위, 초고속, 저비용 스크리닝이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연구팀은 이미 국내 뇌전증 개발 전문회사와의 공동연구 협약을 체결한 상태로 조만간 상업화를 위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될 예정이다.
“뇌전증은 자폐증 환자의 1/3이 앓고 있습니다. 때문에 전 세계가 자폐증과 관련된 연구를 시도하고 있어요. 미국자폐증협회(Autism Speaks)와 구글은 1만 명의 자폐증 환자에 대한 게놈프로젝트를 진행 중입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사기업이 엄청난 자본을 투자해 자폐증 연구 과학자들에게 오픈 사이언스를 제안하고 나선 것입니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자폐증 연구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40여 명의 연구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자폐프리즘연구회’를 결성했습니다. 이들과 함께 더욱 발전된 연구를 진행하고 싶습니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5-07-0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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