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어째서 저토록 아름답고 오묘한 색깔을 만들어 낼까? 날개를 활짝 편 공작새의 그 빛나는 색깔은 사람들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고, 얼룩말의 기하학적인 무늬 역시 눈길을 사로잡는다. 동물의 그 현란한 색깔을 모두 다 열거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 동물이 어떻게 색을 만드는가 하는 ‘동물체색’(動物體色 animal coloration)연구는 눈부시게 발전해왔다.
지난 4일 사이언스(Science) 저널에는 이런 색깔 연구가 이제 새로운 문지방을 넘고 있음을 선언했다. 논문의 제목은 ‘색깔의 생물학’(The biology of color)으로 최근 색깔과학 연구에 대해 종합적인 내용을 담았다.
이 논문은 미국 미시건 대학 생물학자인 엘리자베스 티베츠(Elizabeth Tibbetts)를 포함, 국제적으로 색깔을 연구하는 27명의 연구자들의 연구내용을 망라한 것이 특징이다.
어느 특정한 연구팀의 한 두 가지 연구내용을 담은 것이 아니라, 색깔과학의 연구내용을 종합하면서 “색깔 연구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선언한 것이다.
사람처럼 안면 패턴으로 인식하는 말벌
논문에는 동물의 행동생태학, 광물리학, 심리학, 생리학, 유전공학, 인류학 및 진화생물학 등 다양한 분야의 최신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동물은 색깔로 자기 몸을 위장해서 포식자의 공격을 피해가면서 새끼를 낳고, 주변동물에게 경고를 보내고, 짝을 찾을 뿐 아니라 사회적 신호를 보내면서 열을 조절하는 등 매우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동물의 색깔은 엄청나게 중요하다.
이제 과학자들은 동식물이 사람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본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동물들이 색을 만들어내는 메커니즘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번 논문의 교신저자인 캘리포니아 대학(University of California) 데이비스 캠퍼스의 팀 카로(Tim Caro)는 “색깔의 기능과 생산에 대한 지식은 의학, 안전, 의류 및 군사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시건 대학의 티베츠는 대학원생 때 말벌이 다양한 안면 패턴을 가진 것에 주목한 이후 동물체색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말벌 중 한 종류(Polistes fuscatus)는 사람처럼 얼굴이 다 다른데, 그녀는 이들이 더듬이와 무늬, 색깔의 미묘한 차이를 잘 구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티베츠는 2011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에서 이 말벌이 얼굴패턴을 파악해서, 누가 누구인지 구분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 말벌들은 사람이 사람을 알아볼 때 각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는 것과 유사한 방법으로 다른 말벌을 인식한다.
또 다른 말벌(Polistes dominula)은 전투능력에 대한 정보를 소통하는 얼굴패턴을 가지고 있다. 두 마리의 말벌이 만나면 상대방의 얼굴에 있는 검은 점들을 보고 상대방의 전투력을 파악, 싸우지 않고 우위를 가린다. 마치 태권도에서 검은띠가 가장 전투력이 높고, 초록띠 노란띠 흰띠는 실력이 낮은 것과 유사하다.
전투력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칼라 패턴을 가지고 있는 새, 물고기, 곤충, 도마뱀, 포유동물 등은 동물판 태권도 띠를 착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사이언스에 실린 기사 중에는 미시건 대학 생물학자인 앨리슨 데이비스 라보스키(Alison Davis Rabosky)가 연구한 산호뱀과 그 산호뱀을 모방한 가짜 산호뱀에 대한 내용도 흥미롭다.
그녀는 독성이 강한 산호뱀과, 독성은 강하지 않지만 산호뱀을 모방해서 강한 척 변장하는 무독성 가짜 산호뱀을 연구했다. 그녀는 150개 종류가 넘는 가짜 산호뱀을 파악했는데, 이들은 독성이 있는 산호뱀과 같이 붉고 검은 띠로 변장하고 있다.
데이비스 라보스키는 지리적, 계통발생적, 생태적 데이터와 색깔을‘시공적 분석법’을 사용해서 통합적으로 분석했다.
지난해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실린 데이비스 라보스키의 논문은 모방 산호뱀은 산호뱀의 진화 이후 발생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미국에서는 가짜 ‘검은 과부 거미’에 속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이 거미는 독성이 강한 진짜 ‘검은 과부 거미’와 유사하게 생겼지만, 독성이 많지 않다. 가짜 ‘검은 과부 거미’나 가짜 산호뱀들은 포식자들로부터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위장하면서 나타난 변종이다.
갯가재는 색깔인식 수용체가 인간의 4배
공동저자인 퀸즈랜드 대학(University of Queensland)의 저스틴 마샬(Justin Marshall)은 갯가재는 사람에 비해 4배나 많은 색채수용체가 있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빨강, 초록, 파랑 등 3개의 색체 수용체를 가지고 있지만, 갯가재는 12개나 된다고 마샬은 주장했다.
이번 논문의 주저자인 브리스톨 대학(University of Bristol)의 인네스 커딜(Innes Cuthill)은 “갯가재는 이렇게 풍부한 색채채널을 이용해서 인간이나 다른 동물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물체에서 오는 빛을 분석한다”고 밝혔다.
커딜은 “갯가재는 물리학자들이 사용하는 분광기처럼 빛을 분석한다”고 말했다.
동물들은 사람과는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 예를 들어 사람에게는 새가 인식하는 ‘버드 화이트’를 보는 눈이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흰색은 새에게는 아마도 전혀 다른 그 무엇일 것이다.
커딜은 “사람들이 모두 희게 보는 물체가 새에게는 그 흰색 안에 얼마나 많은 자외선 광선이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어느 색에 파랑 초롱 빨강 만큼 많은 자외선이 있다면, 새들은 그 색을 흰색으로 인식할 것이다. 자외선이 없다면 사람은 상상할 수 없는 다른 색으로 보일 것이라고 커딜은 말했다.
식물과 동물의 색깔이 인간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연구는 또 있다. 보는 각도에 따라 색깔이 변하는 공작새의 꼬리털은 구조적인 채색의 결과로 나타난 것으로, 벌새의 목털과 유사한 성격을 갖는다.
팀 카로는 “미묘한 색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해하는 것은 의약품과 보안산업에서 센서를 생산하는데 도움을 줄 지 모른다”고 전망했다
식물에서 색깔이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것을 감안할 때, 색채연구는 인간의 식생활을 개선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 중 하나로 최근 pH에 따라 빨강, 자주나 파랑색으로 나타나는 ‘안토시아닌 색소’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많은 연구들이 안토시아닌 색소와 결합된 플라보노이드(flavonoid)가 여러 질병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플라보노이드는 식품에 널리 분포하는 노란색 계통의 색소로, 산성에서는 색이 더욱 선명해지지만, 강한 알칼리에서는 그 구조가 변하여 짙은 노란색이나 갈색으로 변한다.
그렇다면 과연 지구상에 색채가 언제 처음 나타났을까? 이에 대해서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유사한 질문이 생긴다. 색깔이 먼저 나타났을까, 아니면 색깔을 볼 수 있는 어떤 종이 나타났을까?
최근 연구결과는 고고학적 기록에 담긴 색소를 볼 때, 색깔이 나타난 것은 공룡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학자들은 몇몇 공룡에게 있었던 색채를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마니랍토란(maniraptoran)공룡은 색깔이 현란하지만, 갑옷공룡( armored dinosaur)은 부드러운 적갈색을 띤다.
고생물학자들은 그러나 이 같은 색깔의 차이와 패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살아있는 동물에게 있어서 색깔의 패턴은 커다란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예를 들어 팀 카로는 ‘어째서 쇠파리가 흑백 줄이 난 표면에 내리는 것은 망설이는지’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것이 미래에는 인간을 귀찮게 하는 어떤 곤충을 막아주는 옷을 만드는데 필요한 지식을 줄지 모른다.
팀 카로는 씨커(SEEKER)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색깔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생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팬더는 어째서 흑백색이고 기린은 줄이 쳐 있는지 아직 해답을 모른다.
카로는 “색채의 기능을 이해하는 것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데 새로운 문을 열어줄 수 있으며, 사람들이 자연과 환경을 즐기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 심재율 객원기자
- kosinova@hanmail.net
- 저작권자 2017-08-0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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