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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김준래 객원기자
2014-09-03

몸 속 박테리아가 식성을 결정한다? 식습관에 영향··· 비만 등 질병 치료의 길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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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7년에 제작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공상과학 영화인 ‘인베이젼(The Invasion)’은 외계 생명체의 신체강탈을 소재로 하고 있다. 외계 어딘가로 부터 날아온 미지의 생명체가 사람들이 잠든 사이에 몸으로 침투하여 겉모습은 그대로 둔 채 정신세계만 변화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신체강탈을 소재로 한 영화 인베이젼 ⓒ 인베이젼홈페이지
신체강탈을 소재로 한 영화 인베이젼 ⓒ 공식 홈페이지

영화 상영 당시만 하더라도 상상 속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라 치부되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허구가 아닌 현실에서도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영화 속 외계 생명체처럼 체내에 서식하는 박테리아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미국에서 발표된 것이다.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사이언스데일리(Sciencedaily)는 체내의 박테리아가 영화 속 외계 생명체처럼 자유자재로 사람을 조종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인간의 식습관에 영향을 미쳐 음식에 대한 갈망을 좌우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고 최근 보도했다. (관련 링크)

그러면서 비만 증상을 가지고 있거나 식습관이 나쁜 사람의 경우 그 사람의 의지력이 약해 절제를 하지 못한 결과일 수도 있지만, 체내 박테리아 때문에 그 사람의 식습관이 결정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체내 박테리아, 식습관에 영향 미쳐

박테리아를 연구하는 공동 연구진은 미국의 캘리포니아대(UCSF)와 애리조나주립대, 그리고 뉴멕시코대의 과학자들로 이루어졌다. 그들은 박테리아가 인간의 식습관 및 음식 선택에 영향을 주어, 자신들의 성장에 가장 좋은 특정 영양분을 소비하도록 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생물 중에서도 가장 하찮은 존재라 여겼던 박테리아가 단순히 수동적으로 인간이 선택한 음식으로부터 영양분을 취하는 미물(微物)이 아니라는 점을 파악한 것이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연구의 공동 책임자인 캘리포니아대의 아테나 액티피스(Athena Aktipis) 박사는 “박테리아의 종류에 따라 각자가 선호하는 영양성분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위장관의 미생물군집들이 인간의 식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  ⓒ UCSF
위장관의 미생물군집들이 인간의 식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방식 ⓒ UCSF

액티피스 박사의 설명에 따르면 어떤 박테리아는 지방 함량이 높은 음식을 먹도록 만드는 반면, 어떤 박테리아는 당분 섭취를 증가시키도록 유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는 것은 물론, 때로는 숙주인 인간의 행동에 반하는 목표를 갖는 수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와 관련하여 연구팀의 일원인 캘리포니아대의 까를로 말리(Carlo Maley) 박사도 “내장에서 서식하는 박테리아는 사람을 조종하는데 능숙하다”고 표현하며 “박테리아 군집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다양하지만, 그 중에서도 인간의 식이요법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대표적일 것”이라고 밝혔다.

말리 박사는 “사람들이 섭취하는 음식은 위장관에 서식하는 박테리아 개체군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고 전하며 “위장관은 미생물이 서식하기에 더없이 알맞은 완벽한 장소이며, 거의 분 단위로 진화가 이루어지는 생태계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각종 질병에 대한 치료 가능성도 열려

박테리아가 어떻게 사람의 식습관에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태다. 다만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인간의 내장에 신호전달물질을 방출하여 식욕에 대한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연구진은 추측하고 있다.

사람의 내장은 면역계와 내분비계, 그리고 신경계와 연결돼 있기 때문에, 만약 박테리아로부터 신호전달물질이 분비되면 생리적인 면과 행동적인 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이 같은 설명에 대해 액티피스 박사도 “박테리아는 미주신경에 있는 신경 신호를 바꿔 인간의 행동과 기분을 조절하는 능력을 발휘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언급하며 “따라서 미각수용기를 조절하거나, 독소를 생산하여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공동 연구진이 실험용 쥐를 대상으로 특정 박테리아를 적용한 결과 평상 시와는 다른 불안한 행동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 실험에서도 젖산균(Lactobacillus casei)이 함유된 생균 드링크제를 마시게 하자, 기분이 최악이었던 사람이 이내 상당히 기분을 회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외에도 연구진은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 만한 새로운 연구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를 들어서 평소에 해조를 먹지 않는 사람의 위에 해초로부터 양분을 흡수하는 장 박테리아를 이식할 경우에 해조류를 먹게 되는지를 확인하는 실험 등이다.

이런 실험은 일본인을 대상으로 하면 보다 정확한 결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일본인들의 체내에는 해조류를 소화시키는 특별한 박테리아들이 서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일본 음식에 해조류가 많이 사용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크라스파지 바이러스의 염기서열
크라스파지 바이러스의 염기서열  ⓒ Wikipedia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만을 놓고 볼 때, 체내의 박테리아를 변화시켜 건강을 개선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희망적이라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체내 박테리아가 선호하는 음식이나 영양 보조제의 선택을 통해서 체질을 개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생균제 형태로 특정 박테리아 종류를 섭취할 수 있고, 또는 항생제를 써서 원치 않는 박테리아를 죽일 수도 있다. 또한 체내 박테리아들이 종류 별로 균형을 이뤄 체질이 최적화하면, 비만을 줄일 수 있고 보다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액티피스 교수는 “만약 박테리아 균체를 목표로 연구한다면 비만이나 당뇨, 그리고 암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종류의 질병에 대한 예방 가능성을 열게 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지금까지의 연구는 박테리아 군체의 중요성을 그냥 피상적으로 훑어본 정도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한편 사람의 생각을 조종하는 박테리아와는 반대로, 이번에는 박테리아를 조종할 수 있는 바이러스가 최근 발견되어 과학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뉴사이언티스트(Newscientist)는 미 샌디에이고대의 연구진이 인간의 장 내부에 서식하는 박테리아에 영향을 미치는 바이러스를 찾아내는데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크라스파지(crAssphage)라는 이름의 이 바이러스는 인간의 장 내부에서 활동하며, 장에서 가장 흔한 박테리아에 영향을 미쳐 마치 장 내 박테리아를 인형 조종하듯 조종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샌디에이고대의 로버트 에드워드(Robert Edward) 박사는 “이 바이러스는 박테리아를 더 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동시에, 장 내부 환경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전하면서 “이 바이러스가 매우 오래 전부터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현재 연구진은 실험실 내부에서 크라스파지를 인위적으로 키우는 실험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러스를 키우는 목적에 대해 에드워드 박사는 “이 바이러스가 인간의 장내 박테리아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밝혀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준래 객원기자
stimes@naver.com
저작권자 2014-09-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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